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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에 반정부 시위 이어져도… 중남미서 좌우 ‘갈등의 정치’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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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1-17 17:13:57 수정 : 2019-11-17 17: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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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반정부 시위대가 지난 14일(현지시간) 수도 산티아고에서 경찰을 향해 초록색 레이저 포인터를 비추고 있다. AP연합뉴스

“단언컨대 우리의 형제를 겨냥한 쿠데타를 비판한다.”(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정부와 정당들이 협력해 권력 이양 과정을 보장해야 한다.”(콜롬비아 외무부 성명)

 

대선 부정 논란 끝에 좌파 지도자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전격 사퇴하자 중남미 정부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베네수엘라·쿠바·멕시코 등 좌파 성향의 중남미 정권은 ‘쿠데타’를 언급하며 모랄레스 전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브라질·콜롬비아·페루 등 우파 정부들은 평화와 안정을 촉구하는 절제된 입장을 전달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을 자리에서 몰아낸 기폭제가 된 것은 지난달 대선에서 벌어진 석연치 못한 개표 과정이다. 1차 투표 중간개표 결과에서는 결선투표가 유력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돌연 24시간 중단됐다 공개된 개표 결과에서는 격차가 10%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지며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당선을 확정 지었기 때문이다. 14년 장기집권한 중남미 현역 최장수 지도자가 헌법소원까지 동원해 4연임에 도전한 상황에서 일어난 부정 선거 논란은 극렬한 반정부 시위를 촉발했다.

 

최근 중남미에서는 볼리비아 사태와 같은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시위는 각기 다른 이유로 촉발됐지만 ‘경제 위기’라는 공통된 뿌리를 갖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중남미 정권들은 좌우로 나뉜 채 ‘갈등의 정치’를 이어나가고 있다.

 

◆중남미서 이어지는 반정부 시위

 

중남미에서는 최근 좌·우파·중도 등 정부의 성향과 관계없이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중도 우파 정권이 들어선 칠레에서는 지난달 18일부터 시작된 시위가 한 달가량 지속되고 있다. 칠레 정부가 유가 상승과 페소화 가치 하락 등을 이유로 지하철 요금을 출퇴근 피크 타임 기준 30페소(약 50원) 올렸기 때문이다. 격렬한 시위 속에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칠레 적십자에 따르면 부상자만 해도 2500명이 넘는다. 시위가 격화하자 칠레 정부는 이달과 다음 달로 예정됐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이펙) 정상회의와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5) 개최를 포기했다. 사퇴 의사는 없다며 강하게 나가던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결국 지하철 요금 인상 철회,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당근책을 꺼내들었다. 칠레 주요 정당들은 지난 15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 제정된 헌법 개정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내년 4월에 시행하는 데 합의했다. 시위대는 그동안 군부독재 시절 이뤄진 공공서비스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이 양극화를 부추겼다며 개헌을 요구해왔다.

 

중도를 표방하는 좌파 정권이 이끌고 있는 에콰도르에서는 정부의 유류 보조금 폐지 결정으로 반정부 시위가 11일간 이어졌다. 좌파 후보로 당선됐으나 취임 이후 우파 경제정책을 펼쳐온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지원을 받은 뒤 긴축 정책의 일환으로 지난달 초 경제개혁안 내놓으며 유류 보조금 폐지를 들고 나왔다. 경유와 휘발유 가격이 최대 두 배 이상 급등했고, 대중교통 노조에 이어 원주민 단체가 시위에 가세했다.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강경 대응을 고수하던 모레노 대통령은 격렬한 저항에 못 이겨 결국 지난달 13일 유류 보조금 폐지 정책을 철회하며 백기를 들었다. 11일간의 시위로 모두 7명이 숨지고 1349명이 다쳤으며, 1152명이 연행됐다고 에콰도르 당국은 밝혔다.

 

좌파 성향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는 극심한 경제 위기와 부정선거 의혹으로 촉발된 ‘한 나라 두 대통령’ 사태가 약 10개월간 지속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하며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이 주도해온 반정부 시위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베네수엘라 경제가 나락으로 빠져들며 국민들의 ‘탈출’(엑소더스)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미주기구(OAS)는 지난달 7일 베네수엘라를 떠난 이민자들의 수가 461만2000명(전체 인구 약 3180만명)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 모인 반정부 시위대가 지난 10일(현지시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사임 발표를 들은 뒤 주먹을 쥐고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경제 위기에 정권 교체도 활발

 

중남미 반정부 시위에는 ‘경제 위기’라는 공통분모가 자리잡고 있다. 볼리비아는 중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17년 볼리비아인 중 약 11.8%가 매일 3.2달러(약 3700원) 이하의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 집권 직전 해인 2005년 32.1%에서 상당히 감소한 수치다. 하지만 최근 세계 경제 불황과 함께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호황기가 끝나면서 볼리비아 경제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천연가스 수출이 침체되며 2014년 국내총생산(GDP)의 3.36%였던 볼리비아의 재정적자는 2017년 약 7.82%까지 치솟았다.

 

칠레는 남미에서 부국 반열에 올라 있지만 2017년 기준 상위 1%의 부자들이 부의 26.5%를 차지하는 등 양극화가 극심한 것으로 유엔 중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 조사 결과 나타났다. 잦은 공공요금 인상, 낮은 임금과 연금, 높은 교육·의료비 부담, 고질적 빈부격차에 대한 분노가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으로 폭발했다는 평가다.

 

산유국인 에콰도르는 십여년에 걸친 정부의 높은 재정 지출과 유가 하락으로 최근 국가부채가 급속히 치솟았다. 이에 에콰도르 정부는 올해 초 IMF로부터 42억달러(약 4조9000억원)의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긴축 정책을 펴기로 약속했다. 보조금 폐지 이후 휘발유 가격도 리터당 740원 정도로 매우 싼 값에 속했지만, 오랫동안 유지돼온 유가 보조금의 갑작스러운 폐지가 불경기에 지친 시민들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살인적 인플레이션이 이어지고 있다. 한때 물가 상승률이 100만%를 넘었으나 지난달 다소 진정돼 연 5만% 수준을 기록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슈퍼마켓에서 생닭 한 마리 가격은 8만 볼리바르로, 최저임금 월급으로는 닭 두 마리도 사지 못한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치솟는 물가에 올해에만 최저임금을 세 번 인상했다.

 

중남미에서는 경제 위기로 인한 정권 교체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중도우파가 장악하고 있던 아르헨티나에서는 지난달 중도좌파 성향의 대선 후보가 당선되며 4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우파 정권 하에서 경제 불황 이어지자 시민들이 다시 노선을 바꾼 것이다. 중도좌파 성향의 정부가 있는 우루과이에서는 같은 달 열린 대선 1차 투표에서 좌파 여당 후보가 선두를 달렸지만, 오는 24일로 예정된 결선에서 야권 표 결집이 예상돼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경제 성장 둔화와 범죄 증가로 집권당에 대한 지지가 흔들렸다는 분석이다. 좌파 성향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장기집권해온 보수정권 하에서의 부패와 경제불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불신을 등에 업고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해 89년 만에 멕시코 첫 좌파정권을 탄생시켰다.

 

◆좌우 대립으로 커져가는 ‘경제 위기’의 상처

 

어려운 때일수록 ‘협치’가 필요하지만 좌우로 나뉜 중남미는 ‘갈등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 볼리비아 ‘부정 선거 논란’에서 드러난 각국 정부의 태도가 단적인 예다. 좌파 성향의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각각 트위터에 “쿠데타를 강력히 규탄한다”, “폭력적이고 비열한 쿠데타가 볼리비아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강력한 유감을 표했다.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과, 부패 혐의로 실형을 살다 최근 석방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전 대통령도 ‘쿠데타’ 비난에 가세하며 쫓겨난 모랄레스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멕시코는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망명지를 자처했다. 이에 반해 콜롬비아, 칠레, 페루 등 우파 정부는 평화로운 해결책을 강조하며 대조적 모습을 보였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 퇴진 이후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자니네 아녜스 상원 부의장을 중심으로 임시 정부를 구성한 볼리비아 우파 야권 세력은 이웃 좌파 정권에 등 돌리고 있다. 카렌 롱가리치 볼리비아 임시 외교장관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베네수엘라 정권 외교관들에게 볼리비아를 떠나라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또한 볼리비아 내에 있는 쿠바인 725명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들이 국내 혼란을 부추겼다는 것이 추방의 이유다.

 

‘편 가르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지도자도 있다. 정권 교체에 성공하며 지난 1월 취임한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브라질 일간 에스타두 지 상파울루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우리 팀과 가까운 누군가가 승리하기를 바란다”며 우루과이 대선에 출마한 중도우파 야당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이틀 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좌파 후보가 승리하자 결선 투표를 앞둔 우루과이 우파 후보에게 공개적으로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에 따라 남미 인구의 70%(2억9000만명), GDP의 80%(2조8300억 달러)를 차지하는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붕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대선 직전 좌파 정권 재등장 가능성이 커지자 메르코수르를 탈퇴할 수 있다며 잇달아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후 아르헨티나 좌파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됐고,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시장 개방이 어려워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메르코수르 탈퇴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코수르는 1991년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우루과이 등 4개국으로 출범한 관세동맹이다.

 

여기에는 우루과이에도 좌파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우루과이 대선 결과에 따라 브라질이 고립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으며, 메르코수르 탈퇴도 이런 배경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난 6월 협상 개시 20년 만에 체결에 합의한 유럽연합(EU)·메르코수르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앞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임국정 기자 24hou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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