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각종 루머와 악플 등에 고통 받다 스물 다섯살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故 설리의 사망 사건 이후 40여일이 지나 망자의 절친한 친구였으며 생전 그와 같은 고통을 받았던 가수 구하라가 세상을 떠났다.
사회 일각에선 연예 기사와 악성 댓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불거지며 이들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 명명했으나. 현재까지도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망자의 죽음을 욕되게 하는 악플과 루머는 지속되고 있다.
앞서 24일 구하라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후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지난해 구하라의 전 남자친구 최종범씨가 유포를 예고하며 협박했던 불법 촬영물을 판매하겠다 글이 곳곳에서 올라왔다.
해당 불법 촬영물은 구하라의 사망과 직결됐단 분석 기사가 쏟아지던 시점이었다. 25일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는 ‘설리> 구하라 다음 타자는’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 내용은 온라인 게임을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망자의 죽음이 홍보의 대상이 됐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자 해당 글은 삭제됐다.
유튜브엔 ‘구하라의 이해되지 않는 죽음, 설리 사망 후 그에게 했던 말’, ‘너무나도 안쓰러운 구하라의 사주’, ‘설리와 구하라의, 악플때문에 죽은 것 아냐. 진짜 죽음의 이유는’, ‘구하라 사망 전 소름끼치는 사주분석’ 등의 영상이 올라왔다.
이에 그의 죽음에 대한 각종 의혹 및 음모론 등을 제기해 앞선 설리의 죽음 이후 논란이 됐던 ‘조회수 장사’로 비판의 대상이 됐던 현상이 그대로 반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설리의 죽음 이후 온라인 상 공인에 대한 악플과 추측성 루머에 대한 지탄의 목소리가 높아졌으나 자정 작용은 없는 모습이다.
앞서 설리가 사망한지 하루 만인 지난달 15일 한 유튜브 채널에는 ‘설리 남자친구입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이 유튜버는 자신을 설리의 전 남자친구라고 주장하며 “설리야 갈가라. 그곳에서는 행복해야 해 알겠지”라고 했다.
해당 영상이 공개 되자 마자 고인의 죽음을 자신의 SNS 홍보에 활용했단 비판 여론이 이어졌다. 이에 해당 유튜버는 ‘설리 남자친구 사건 해명하겠습니다’라는 글을 통해 “팬으로서 추모하는 영상을 올리려는 것이었고, 그만큼 애정을 담아 팬으로 사랑했다는 표현으로 남자친구라고 얘기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유튜버는 16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해 “저는 비방하거나 욕하거나 모욕할 목적은 전혀 없었다. 추모 목적이었다”면서 “남들과는 다르게 해보려 했다. 논란 커질 줄 몰랐다”고 사칭 논란에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악성 댓글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서 “솔직히 연예인들이 악성 댓글 갖고 상처받고 이런 거 솔직히 저는 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제 기준에서는 감내해야 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유튜버를 직접 취재한 PD는 20일 그알 공식 유튜브 계정에 출연해 해당 BJ에 대해 “유튜브 영상과, 자신의 얼굴을 노출해 달란 전제 조건 하에 만났다”면서 “유튜브 채널 홍보 수단으로 방송에도 출연하지 않았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또 다른 유튜버는 ‘무당에게 설리 영혼이 접신해, 자살 이유와 죽기 전 못다 한 심정을 말해주었습니다’라는 동영상을 올린 후 본인을 무속인이라고 밝햤다. 그는 눈을 감고 의식을 펼치더니 설리가 접신한 것 처럼 행동했다. 이후 이 무속인은 “내가 너무 막 죽을 것같이 힘들어도 나한테 진심으로 대해주지 않았어. 나는 혼자였어”라며 영혼이 들어온 듯 말을 뱉었다.
그는 “내가 힘들다고 주변에 말 안 한 거 아니다. 힘들다고 얘기했지만 누구 하나 진심으로 생각해주지 않았다”며 주변을 탓하는 듯한 말을 전했다. 이후 ‘망자의 죽음으로 조회수 장사를 하는 것’이라는 비판 여론이 불거지자 해당 영상은 삭제 됐다.
또 다른 한 유튜버는 “설리는 악플때문에 자신의 집 2층 방 XXX XX XX X XX XX아 밤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고 영상 설명에 자세한 사망 경위를 썼다. 제목에도 ‘가수 겸 연기자 설리 XXX 숨진 채 발견, 설리 XX’이라고 써놓은 영상도 있었다.
이와 같이 자정 현상이 없어 보이는 온라인상 공인에 대한 무분별한 루머, 음모, 의혹 제기와 악플 현상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 문화와 제도에 대한 본질적 개선이 필요하단 전문가 목소리도 이어졌다.
설리와 구하라의 사망에 대해 여성학자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KBS라디오 프로에 27일 ‘김경래의 최상시사’에 출연해 ‘(이 같은 온라인 상 고인에 대한 무분별한 콘텐츠 제작은) 연쇄살인’이라고 지적하며 “여러 사람에게 성적 공격과 모욕을 당하고 사생활이 찍힌 영상이 돌아다니는 일을 겪었다면 어떤 사람이 아프지 않겠나”라며 “(이들의 죽음을) 우울증이라고 환원시키려 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일상에서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가해행위에 대한 기본적인 성찰 행위도 없는 것”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피해를 입어도 (악플러에 의해) 낙인화가 되고, 판사나 형사 사법체계가 가해자에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니 결국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댓글 규제정책을 넘어서 여성혐오 문화를 바꾸는 본질적인 사회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29일 연합뉴스에 “여성 연예인이 주꾸미를 먹는 것까지 자극적으로 기사화하는 등 그들의 삶 전반이 너무나 쉽게 대중의 관심 대상이 되는 풍조나 문화에서 죽음까지 클릭 수를 올리기 위한 상업적 아이템으로 여겨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택광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학과 경희대 교수는 8일 한겨레 신문에 “댓글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포털과 언론이 댓글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혐오와 차별 발언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로 故설리의 죽음 이후 많은 대중들이 “악플 처벌을 강화해달라”, “댓글 실명제를 도입해달라”라며 적극적으로 개선책 모색에 나서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극적인 기사와 악플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강을 요청하는 청원글이 올라와 다수의 청원 참여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지난달 15일 시작되 14일 마감한 ‘인간다운 삶을 위해 최진리법을 만들어 달라’는 제목의 청원글은 종료 당시 기준 2만3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해당 청원인은 설리 사망의 1차 원인은 언론과 악플러들에게 있다고 보고 “사안에 대한 중립적 판단을 할 수 없게끔 사실확인도 없이 자극적으로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들도 설리 사망에 책임이 있다”면서도 “설리의 사망 원인을 무분별한 악성 댓글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사자가 없는 지금까지 주변인들에게까지 악성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라며 주요 포털 사이트에 댓글 실명제를 활용 할 것을 꼬집었다. 또한 “프라이버시 침해, 사실관계 불분명, 연예인 경쟁구도 만들기 등의 기사를 쓰는 기자에게 기사 작성 자격을 정지하는 처벌을 내릴 것”을 골자로 하는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장혜원 온라인 뉴스 기자 hoduj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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