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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간 쓸 수 있다면”… ‘살림 아웃소싱’에 지갑 여는 현대인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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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21 18:00:00 수정 : 2023-12-10 15: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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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서비스 시장 규모 12조원 추산 / 카드 결제건수·금액 2년새 3배 ‘쑥’ / 여성 전담으로 여겨졌던 가사 노동 / “남녀 같이 해야” 사회 인식 바뀌어 / 50대 이용률 크게 늘어 20대와 비슷 / 청소·세탁 이용경험 남성이 더 높아 / “가사 외주 서비스 산업 더 커질 것”

#1. 서울 성북구의 한 원룸에서 사는 직장인 최모(29)씨는 최근 주변 권유로 청소대행 서비스를 신청했다. 퇴근 후 매일 영어학원에 다니고, 수영을 다니느라 청소나 빨래 같은 가사일에 신경쓸 시간이 부족해서다. 회사일과 자기개발에 투자하느라 매일 늦은밤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 최씨가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은 ‘가사서비스의 외주화’다. 청소와 빨래를 미루다 주말에 몰아 해치우고는 했던 최씨는 “시간당 2만원이이만, 별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정해 청소도우미에게 집안 청소와 빨래를 맡기고 있다”면서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면서 시간에 대한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개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기꺼이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 서울에 사는 맞벌이 부부인 박모(41)씨와 강모(38·여)씨는 두 아이를 키우며 회사일과 가사를 병행하기가 버겁던 차에 가사대행 서비스를 통해 삶의 여유를 되찾았다. 박씨는 “가사 일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돈을 주고 맡기는 게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가사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편리함에 지금까지 애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청소만 대행 서비스를 맡겼지만, 이제는 세탁과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는 육아 영역까지 전문 업체에 맡기고 있다. 강씨는 “주변에서도 가사일을 전문 업체에 맡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육아나 가사가 여자의 전담으로 여겨졌던 과거와는 달리 이젠 직장일과 동일한 노동으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엄선된 전문업체 도우미들에게 비용을 주고 맡기니 회사일에도 더욱 집중할 수 있고, 육아나 가사가 짐처럼 느껴지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편리미엄’. ‘편리성’과 ‘프리미엄’을 결합한 신조어인 편리미엄은 편리한 것이 곧 프리미엄이라고 생각하는 현대 사회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단어다. 직장인은 아침 일찍 출근해 종일 회사에서 보내다 퇴근하면 녹초가 된다.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시행됐다곤 해도 시간이 넉넉한 게 아니다. 직장 생활 외에 운동이나 취미활동, 자기개발 시간도 직장인의 자아실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기기에 가사일은 성가시기만 하다. 맞벌이 부부에겐 직장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아침 저녁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기 위해 시간을 따로 내야한다. 퇴근하면 어김없이 육아 노동이 기다린다. 주말이라고 달라지는 건 없다. 지친 이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밀린 빨래와 청소, 놀라달라는 아이들의 보챔이다. 이럴 때 누군가 나타나 ‘비용만 주면 대신 설거지와 빨래를 해주고, 아이와 놀아주겠다’고 한다. ‘가사일의 외주화’는 편리미엄이라는 트렌드 속에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 가사대행 서비스 시장의 성장잠재력 ‘무한’

 

현대카드가 데이터 분석팀과 함께 지난 2017년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가사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맹점들의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17년 1~10월 5만6690건이었던 가사 관련 서비스 결제건수는 2019년 같은 기간 19만42건으로 3.4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결제금액 역시 2017년 19억7831만7730원에서 62억1038만1130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돈을 지불하고 외부 업체의 가사 서비스를 구매, 집안일을 대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집안일 도움을 받는 가정이 있었으나 부유층에 국한했다. 요즘에는 젊은층 사이에 큰 흐름으로 잡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다르다. 

 

 

분석한 가사서비스 분야는 집으로 방문해 교육 혹은 보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육아, 주방·욕실 등 실내를 정리해주는 청소, 찌개·반찬 등 만들어진 음식을 주문·배송 받는 요리, 빨랫감을 수거해 세탁해 가져다주는 세탁 등 4가지다. 모바일(웹 혹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서비스를 검색·선택하고, 주문·결제까지 가능한 20개 업체를 대상으로 했다.

 

우리나라 가사서비스 시장은 7조5000억원(2017년 기준·통계청) 규모다. 업계에서는 이보다 큰 약 12조원 규모로 추산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무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 규모는 360조7300억원(2014년 기준) 수준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가사를 분담해 ‘공짜’로 해결하고 있지만, 만일 돈을 지불해야 한다면 360조7300억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만약 이들의 상당수가 ‘더는 스스로 가사를 해결하지 않고 가사서비스를 이용하겠다’고 한다면 가사서비스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요리와 육아 서비스 두드러져···50대도 크게 늘어

 

분야별로 살펴보면 이용 증가율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요리와 육아다. 2017년 9972만5034원에 그쳤던 요리 분야 결제 금액은 2019년 같은 기간 9억8091만3567원으로 884% 증가했다. 육아의 경우 결제 금액은 전반적으로 적지만 결제건수 증가율은 2627%로 가장 가파르게 증가했다. ‘독박육아’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젊은 부부들을 중심으로 육아에 대한 힘듬을 토로하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본인이 직접하거나 부모님께 부탁했던 육아도 외주서비스를 이용하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세대별로 보면 30대가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결제금액 기준으로 보면 2019년의 경우 30대가 50.04%를 차지해 가사서비스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30대가 갓 결혼한 부부의 비중이 높고, 육아에도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영유아 부모의 비중이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뒤 이어 40대(28%), 20대(9.89%), 50대(9.78%), 60대(2.29%)가 이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가사서비스를 이용하는 50대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성세대인 50대에겐 가사란 집안 구성원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꽤 높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제는 그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17년 대비 2019년 연령대별 증가율을 살펴보면 50대가 결제건수(400%)과 결제금액(381%)모두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 돈보다 시간이 먼저...편리미엄의 트렌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진 가사서비스가 이처럼 대중화된 것은 편리미엄이라 불리는 새로운 트렌드로 설명 가능하다. 가사대행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는 30~40대의 젊은 부부나 1인 가구다. 이들은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가용할 시간이 부족하다 느끼는 ‘시간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명품가방과 같은 ‘소유’보다 해외 여행과 같은 ‘경험’을 중요하게 여길 정도로 시간의 가치가 높아졌고, 스스로를 향상시키고 싶어하는 ‘업글인간’에 대한 욕구가 크다. 이들에겐 자신을 가꾸고 성장하기 위한 자기계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는 성향이 있다.

 

 

여기에 과거에 비해 사회가 원자화되고 유대관계가 약해졌다. 이전 같으면 이웃집에 했을 부탁을, 온라인상에서 쉽게 맺고 끊는 익명 인물에게 할 순 없는 일이다. 스마트폰 발달에 따른 중개 플랫폼의 진화, 그리고 약한 유대관계가 과거 이웃사촌 역할을 대행하는 서비스 발달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이 리서치업체 ‘입소스(Ipsos)’와 가사서비스를 이용해 본 경험이 있는 20대 이상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사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로 과반 이상의 응답자가 ‘시간’을 이유로 꼽았다. 응답자들은 육아 서비스의 경우 ‘서비스를 통해 개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다양한 시간대와 가격대로 구성된 맞춤형 상품이 제공된다’ 순으로 사용하는 이유를 들었고, 요리·세탁 서비스 역시 ‘원하는 시간대에 배송 받을 수 있다’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청소 서비스를 사용하는 이유로도 ‘개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고, ‘전문 인력의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응답도 많았다. 

 

■ ‘가사는 곧 노동’...대가 지불은 당연

 

가사대행 서비스 이용량 증가의 배경에는 가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변화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같은 조사에서 ‘육아 및 가사는 노동이다’라는 데 대해 응답자의 72.9%(729명)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들 가운데 약 17%에 달하는 122명은 ‘과거(3년전)에는 가사가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가사 역시 노동이라 생각한다’고 응답해 최근 가사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사를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가사는 육체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69.2%)’, ‘시간이 많이 든다(58%)’,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다(48%)‘ 순으로 응답했다. 또 ‘비용을 지불하고 가사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물은 질문에 응답자의 64.2%가 ‘긍정적’이라고 응답했다.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에 그쳤다. 즉, 집안일 역시 신체적·정신적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로 분명한 노동이며, 이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육아 및 가사는 남녀 모두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대다수인 82.9%가 ‘남녀 모두 해야하는 일’이라고 응답했다. 이에 대해 ‘어느정도 그렇다’가 14.9%, ‘동의하지 않는다’는 2.2%로 나타났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한 인식과는 다른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심지어 청소와 세탁 서비스의 경우 사용 경험이 있는 남성이 각 58%, 64.2%로 여성의 54.6%, 55%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이번 데이터 분석 및 리서치를 통해 ‘집안일을 노동으로 인식하는가’, ‘가족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일인가’ 등에 대한 인식이 가사서비스 이용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결제건수와 결제금액의 변화를 통해 가사에 대한 인식이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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