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전 지구적 창궐로 국경을 닫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 한가롭게 미국 이야기를 하고 있나 싶지만,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되니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여기저기 장애가 나타나고는 있지만 한창 진행 중인 미국 대선 이야기이다.
우리 시간으로 18일 오후, 바이든 전 부통령이 플로리다, 일리노이, 애리조나주 경선에서 승리했다. 플로리다주는 매번 미국 선거에서 키를 쥐고 있는 중요한 지역이다. 이 지역의 투표가 중요했던 이유는 이 지역 투표와 관련한 전망 때문에 미국 민주당 유권자들이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기 시작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샌더스 상원의원이 경선 초반 앞서 나가는 상황에서 그가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에 대해 언급한 것이 미국 민주당 유권자들에게 다시 한 번 경선을 생각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의 역사적 이유로 사회주의라는 단어에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공직자 청문회에서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라는 말을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미국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으로 보고 있다. 샌더스 상원의원의 가장 큰 약점은 자기 자신을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사회주의에 보다 접근한 정책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가 카스트로 정권을 변호하는 듯이 이야기하자, 카스트로 정권의 압박을 피해서 미국으로 온 쿠바계 미국인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만약 샌더스 의원이 후보가 된다고 하면 쿠바계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플로리다주의 선거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쉽게 내주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매우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민주당에서는 샌더스 의원이 후보가 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시나리오를 보다 강하게 이야기했다. 이것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경선을 4일 앞둔 시점이었다. 그때부터 민주당 유권자들의 전략적 투표가 시작되었고, 중도 성향의 바이든 전 부통령이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의 재기는 민주당에게는 큰 호재가 됐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의 호황과 낮은 실업률로 인해 재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던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썩 반갑지 않은 상황의 전개였다. 민주당 유권자들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꺾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미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모든 이슈가 코로나19 앞에 맥을 못 추고 사라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민주당 후보 경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은 더욱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현직 대통령에게 도전하는 민주당 후보에게는 매우 안 좋은 소식이다.
상황 초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 코로나19를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11월의 선거를 경제문제로 이끌고 가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 문제로 국경을 걸어 잠그는 것이 불가피해지면서 그에 따른 경제적 문제가 생기는 것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조기에 상황이 종식되고,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지속적인 구제책을 내놓음으로써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가 이전에 펼쳤던 정책들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은 거의 무의미해졌다. 민주당 후보들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할 소재가 줄어들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정부를 공격하는 데에 따른 반감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반면, 이 위기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음에도 이 상황이 장기화하고 피해가 커지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온전히 그의 책임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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