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에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이 있다. 바로 지기네 당 소속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제명’이다. 비례대표 의원은 지역구 의원과 달리 당적을 바꾸기 위해 탈당하면 바로 의원직을 잃는다. 그래서 비례대표 의원이 의원직을 계속 유지하며 당적을 바꾸려면 소속 정당에서 ‘제명’을 해주는 수밖에 없다.
여야 공히 비례대표 의원 선출을 위한 비례용 위성정당을 만든 상황에서 해당 위성정당으로 자기네 당 소속 의원을 파견하는 ‘꼼수’를 쓰다 보니 너도 나도 의원 제명을 하는 것이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5일 오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심기준·제윤경·정은혜 등 민주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 3명을 제명했다.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시민당)으로 ‘파견’하기 위한 조처다.
4·15 총선에서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 투표를 할 때 정당에 속한 현직 국회의원 수가 많은 정당일수록 기호에서 앞선 번호를 받게 된다.
이날 민주당에서 제명된 비례대표 의원들은 시민당으로 당적을 옮길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시민당의 정당 투표 기호가 상순위로 올라선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독자 비례후보를 내지 않고 시민당을 통해 비례후보를 낸다.
앞서 제1야당 미래통합당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통합당은 비례위성정당 미래한국당에 의원 10명이 가 있다. 이 가운데 비례대표인 조훈현·이종명 의원은 통합당 의원총회의 ‘제명’ 절차를 거쳐 미래한국당에 입당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동안 우리 정당들은 ‘제명’을 좀처럼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기네 당 비례대표 의원이 당적을 바꾸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2017년 당시 자유한국당(현 통합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있었으나 실제로는 다른 당에서 활동한 김현아 의원의 경우 자유한국당 측에 거듭 ‘제명’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랬던 정당들이 비례대표 의원 선출용 위성정당을 위해선 ‘제명’ 카드를 아낌없이 꺼내들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여야가 4·15 총선에서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기 위해 체면도 내던지고 온갖 꼼수를 써가며 경쟁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사상 유례없는 비례정당 파견용 제명 활성화가 우리 정치를 희화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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