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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예의 독창적 예술세계… 온라인으로 먼저 만나다

입력 : 2020-04-03 02:00:00 수정 : 2020-04-02 20: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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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첫 서예 기획전 / ‘미술관에 書’ 유튜브 통해 선공개 / 코로나19 여파 전시장 현장 공개 미뤄 / 전통 붓글씨에서 타이포그래피까지 / 총 4부로 나누어… 다양한 작품 전시 / 1세대 서예가 작품 10여점 첫 공개도 / 전문가의 자세한 작품설명 귀에 쏙쏙

서예는 미술일까. 1932년 일제 총독부는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서예를 사군자와 함께 미술영역에서 배제했고, 서예를 예술로 인식하지 못한 서양 미술문화가 들어오면서 서예는 한동안 미술계에서 소외됐다.

하지만 ‘글씨와 그림은 뿌리가 같다’는 서화동원(書畵同源)은 동아시아 전통회화의 근간이었으며, ‘서’(書)는 역사적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다양한 미술 장르에 영향을 미치며 계승돼 왔다. 특히 해방 이후 화가들은 일본 화풍을 청산하고 새로운 민족 미술을 수립하는 방편으로 서예에 주목했다. 서예가들 역시 현대성을 담아내고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확립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1969년 개관 이래 처음으로 마련한 서예 기획전 ‘미술관에 서(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은 서예의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자리다. 전통적인 붓글씨가 현대성을 띤 서예로 변화하는 다양한 양상을 서예·회화·전각·조각·도자·미디어아트 등 300여점의 작품과 70여점의 자료로 보여준다.

 

서울 중구 덕수궁관에서 전시 준비를 마치고 지난달 12일 개막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미뤄오다 같은 달 30일 유튜브 채널(MMCA Korea)을 통해 먼저 공개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배원정 학예연구사가 전시장을 돌면서 기획 취지와 주요 작품을 설명하는 90분짜리 영상을 볼 수 있다.

전시는 한국 근현대 미술에서 서예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색한다. 전통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서(書)가 근대 이후 선전과 국전을 거치며 현대성을 띤 서예로 다양하게 진입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해방 후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한국 근현대 서예가 1세대 12인의 작품을 비롯해 2000년대 전후 나타난 현대서예와 디자인서예 등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는 서예의 양상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김환기의 ‘항아리와 시’(1954). 문인화의 시서화 일치사상을 수묵이 아닌 유채를 통해 표현한 작품으로, 제발을 한문이 아닌 한글로 써 문인화를 현대적으로 변모시키고자 노력했다. 둥그런 달항아리와 흐드러지게 핀 하얀 매화, 단정하게 쓰인 제발이 어우러지며 화면에 운치를 더한다.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제공

총 4부로 구성된 전시는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인 ‘시서화(詩書畵)’ 일체사상이 근대 이후 어떻게 계승, 변모됐는지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응노·김환기·장우성을 비롯해 이우환·오수환·황창배 등의 회화, 김종영·최만린의 조각은 서예를 바탕으로 한 독창적 예술세계를 잘 보여준다.

20세기 한국 서단을 대표하는 서예가 소전 손재형의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탁본’(1956). 소전은 중년부터 한자의 전예 필법을 응용한 한글 서체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동성갤러리 제공
일중 김충현의 ‘정읍사’(1962). ‘일중체’로 유명한 일중의 국한문혼용작품의 대표작이다. 한글 고체가 새로운 서체로 자리 잡는 절대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2부 ‘글씨가 그 사람이다’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서도’란 명칭 대신 ‘서예’란 이름을 지금껏 쓰게 한 소전 손재형(1903∼1981)을 비롯한 한국 근현대 서예가 1세대 12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작품들이 소개된다. 전·예·해·행·초서의 오체를 터득하고 서예의 현대화, 예술세계 구축에 나선 이들이다. 일제강점기, 해방 등 격동기를 거치며 서예의 현대화를 이끈 작품들이 주를 이루며 갈물 이철경, 평보 서희환, 검여 유희강 등의 작품 10여점이 최초 공개된다.

오수환의 ‘Variation’(2008). 오수환은 서예기법으로 원초적인 기호와 기호에서 파생되는 무한한 명상의 세계를 화폭에 담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세대 대가들의 뒤를 이어 전통의 계승과 재해석은 물론 실험과 파격을 통해 새로운 예술의 경지에 도전한 권창륜, 이돈흥, 박원규, 황석봉 등 2세대 명인들의 작품들도 한자리에 모였다. 3부 ‘다시, 서예: 현대서예의 실험과 파격’에서는 이들의 작품을 통해 그다음 세대에서 일어난 현대서예의 새로운 창신과 실험을 살펴본다. 현대서예는 문장의 내용이나 문자의 가독성보다는 서예적 이미지에 집중함으로써 ‘읽는 서예’가 아닌 ‘보는 서예’로서의 기능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는 오늘날 현대미술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타 장르와 소통하고 융합하는 순수예술로서의 서예를 보여준다.

포헌 황석봉의 ‘선상에서 1, 2’(2018). 일필휘지를 통해 필묵이 가지고 있는 기의 시간적 흐름과 공간의 무한한 확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마지막 4부 ‘디자인을 입다 일상을 품다’는 디자인을 입은 서예의 다양한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며 일상에서의 서예 문화, 현대사회 속의 문자에 주목한다. 손글씨를 이용하여 구현하는 감성적인 시각예술로 최근 대중에게까지 각인되며 일면 서예 영역의 확장이라 일컫는 캘리그래피(Calligraphy)와 가독성을 높이거나 보기 좋게 디자인한 문자를 일컫는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는 실용성과 예술성을 내포하며 상용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전시작품들은 서예의 다양한 역할과 범주, 그리고 확장 가능성을 시사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코로나19로 미술관 직접 방문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온라인 중계로 만나는 서예전이 새로운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품 보존처리에 사용하는 장갑이 의료용 장갑과 같다는 점에 착안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대구·경북지역 의료진에 장갑 5000매와 마스크 320개를 기부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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