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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선택한 것에 대해 확신할 수 없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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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15 22:09:20 수정 : 2020-05-15 2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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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안따지고 그날 선택한 일을 / 애써 하는 것이 아마 행복의 시작 / 무언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복 / 확신 없는데 오늘도 선택의 상황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두 대학생이 대화를 한다. “운전면허증은 어떤 것을 따는 게 좋아요?” 둘 중 선배인 듯 보이는 청년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2종이 편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그러자 질문을 했던 후배는 “아버지는 남자는 무조건 1종 따는 게 좋대요. 큰 차를 몰아야 남자답다는 뜻인지, 아니면 혹시 트럭배달이라도 하게 될 때를 대비하라는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고 진지하게 반문한다. 중간에 보행신호가 들어오는 바람에 거기까지만 들었다. 그 청년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우리의 일상은 선택해야 할 크고 작은 일들로 가득 차있다. 아침에 입고 나갈 옷을 고르는 일이나 점심에 먹을 메뉴를 정하는 것처럼 대부분은 스스로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사소한 선택들이지만, 간혹 인생의 갈림길일 것만 같은 묵직한 예감이 드는 순간도 끼어 있다. 선택 하나하나가 눈덩이처럼 쌓여 커다란 덩어리의 결과가 생기고 지금의 누군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보라. 우리가 행하는 매순간의 선택에 대해 누구라도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주은 건국대 교수·미술사

1종 면허이건 2종 면허이건 큰 차이 없어 보이는 선택일지라도 스물이 갓 넘은 청년에게는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그는 부모를 비롯한 주변의 어른들에게 조언을 구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생의 지혜로운 상담자가 되어야 할 중년의 어른들은 참으로 불성실한 충고를 하는 것 같다. 아무 근거도 말해주지 않고 ‘남자라면 무조건 1종’이라니, 30년 전 우리 부모세대가 우리에게 했던 말 그대로가 아닌가. 살짝 변명하자면, 우리 중년들 역시 살면서 생전 처음 겪는 일이 수두룩하고,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세상을 접하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아들 나이의 젊은이에게 뭐라도 확신에 찬 말을 해주기에는 역부족인 셈이다.

어떤 선택을 해도 ‘바로 이거다’라는 느낌은 따라오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단’ 이거로 정하고, 다음에 상황이 바뀌면 그때 봐서 다시 결정하기로 마음먹곤 한다. 이렇듯 선택을 유보하는 습관이 지속되다 보면 점점 선택하는 일이 힘들어지는, 이른바 결정장애 증후군도 찾아온다.

미국의 팝아트 미술가인 앤디 워홀(1928∼1987)은 ‘32개의 캠벨수프 통조림’이라는 작품에서 똑같은 통조림을 32번 반복해서 그려놓고 우리에게 고르게 한다. 통조림 1개보다는 2개가 좋고, 2개보다는 10개, 10개보다는 30개가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을 이야기하는 그림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부 같은 수프가 아니다. 치킨누들, 브로콜리 크림, 쇠고기 완두콩 등 모두 다른 맛의 32가지 통조림이 제시되어 있다. 많아서 좋을 뿐 아니라, 이 맛 저 맛 손쉽게 골라먹을 수 있으니 더 좋지 않으냐는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당신이 무슨 맛을 선택한다 해도 결과는 뻔한 인스턴트 통조림수프에 불과할 뿐이라는 비참한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 김초희 감독의 최근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보았다. 주인공 찬실(강말금)은 영화제작자인데, 일도 잃고 당장 돈도 없고 또 앞으로 영화를 계속할지도 모르는 우울한 처지이다. 심지어 십 년이 넘게 연애도 못해봤고 마흔이 넘어 아직 마음을 주고받을 남자도 없이 그냥 나이만 먹어간다. 그런데 왜 제목에서 찬실이는 복도 많다고 했을까.

삶의 답을 몰라 시름에 빠진 찬실에게 집주인 할머니(윤여정)는 콩나물을 다듬으며 이런 말을 툭 던진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써서 해.” 미래의 성과를 따지지 말고 그날 선택한 일을 애써 하는 것이 어쩌면 행복의 시작이 아닐까. 무언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복이다.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태를 우리는 절망이라 부르지 않던가. 찬실이가 복이 많은 이유는 마흔이 넘었어도 삶이 여전히 부단한 선택의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늘도 수많은 선택의 상황에 놓여 있다. 여전히 아무런 확신은 없다.

 

이주은 건국대 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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