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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맹점은 이혼 32년 만에 나타난 생모의 자녀 유산 상속을 허락했다

입력 : 2020-06-01 14:10:42 수정 : 2020-06-01 14: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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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32년 만에 나타나 순직 소방관 딸의 유산 상속한 생모 / 아버지 등이 생모 상대로 양육비 청구소송 제기 / 생모 측, “전 남편이 접촉 막아 딸들 만날 수 없었다”고 반박 / 구본창 배드파더스 대표, “법의 맹점이 만들어낸 사례” 지적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혼 후 연락 끊겼던 어머니가 32년 만에 나타나 순직한 소방관 딸의 유산을 상속….

 

이에 숨진 소방관의 아버지 등이 친모를 상대로 거액의 양육비 청구 소송을 제기해 전북을 들썩이게 한 사건.

 

이혼 후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했던 고(故) 구하라의 친모가 20년 만에 나타나 재산 상속권을 주장한 사례와 비슷해 이른바 ‘전북판 구하라 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사례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민법과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전북지역 법조계 등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해 1월 수도권 한 소방서에서 일하던 A(63)씨의 둘째 딸(당시 32세)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서 비롯됐다.

 

A씨의 둘째 딸은 구조 과정에서 얻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을 앓다가 가족과 동료 곁을 떠났다.

 

인사혁신처는 같은해 11월 공무원재해 보상심의위원회를 열고 아버지인 A씨가 청구한 순직 유족급여 지급을 의결했다.

 

문제는 이후 불거졌다.

 

A씨의 전처이자 숨진 소방관의 어머니 B(65)씨가 본인 몫으로 나온 유족급여와 둘째 딸의 퇴직금 등 약 8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사망 때까지 매달 91만원의 유족급여도 받게 됐다.

 

이에 A씨는 지난 1월 B씨를 상대로 1억9000만원 상당의 양육비를 청구하는 가사소송을 전주지법 남원지원에 제기했다.

 

1988년 이혼한 뒤, 단 한 차례도 가족과 만나지 않았고, 딸의 장례식장도 찾아오지 않은 생모가 유족급여와 퇴직금을 갖는 건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두 딸을 키우는 동안 B씨가 양육비를 주지 않는 등 책임도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가 책정한 양육비는 이혼 이후 매달 50만씩 두 딸에 대한 양육비를 합산한 액수다.

 

B씨 측은 두 딸을 방치한 적 없다며, “전 남편이 접촉을 막아 딸들과 만날 수 없었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특히 딸들을 위해 수년 동안 청약통장에 매달 1만원씩 입금했다면서, 애정에도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A씨 부녀를 대리하는 강신무 변호사는 “양육 의무를 전혀 하지 않은 부모가 자녀의 유산 상속 권한을 온전히 보장받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며 “현재 이를 제지할 법이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부녀가 매우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주지법 남원지원 가사1단독 심리로 재판과 조정이 진행 중인 이 사건에 대한 선고는 오는 7월쯤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배드파더스 홈페이지 캡처

 

양육비가 얽힌 이번 사례에 구본창 배드파더스(Bad Fathers) 대표는 현행법의 역할이 미진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해 이들의 변화를 촉구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홈페이지다.

 

구 대표는 1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권리와 의무가 균형을 이루는 게 정의”라며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도 (상속 등의) 권리가 주어지는 건 현행법이 빚어낸 맹점이다”라고 주장했다.

 

민법은 상속인의 결격사유로 피상속인이나 그의 배우자에게 상해를 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상속에 관한 유언서를 위·변조 하는 등 제한적 경우만 유산 상속 결격사유를 인정한다.

 

보호나 부양 의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직계존속 또는 직계비속에 대한 보호 또는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 한 자를 상속 결격사유에 추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구하라법’이 발의됐지만 20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고(故) 구하라의 친오빠 구호인씨가 지난달 22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구하라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 대표는 “양육비 관련법의 이행력이 없다 보니, 지급 의무를 실천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현실의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를 취소시키는 내용이 포함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양육비이행강화법)’이 국회를 통과한 게 위안이다.

 

가사소송법에 따라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고 감치명령을 받은 부모가 끝까지 돈을 주지 않을 경우, 여성가족부가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지방경찰청장에게 운전면허를 정지해달라는 처분을 요청할 수 있게 한다.

 

이를 두고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를 제재할 최소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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