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때문에 두달 반 동안 문 닫은 가게를 오는 금요일(5일)에 다시 열려고 최근에 구입한 가발 등 미용용품을 시위대 등에 전부 털렸습니다.”
미국 경찰의 가혹행위로 흑인인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펜실페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한인사회를 강타한 가운데 나상규 뷰티서플라이협회장은 2일(현지시간) 세계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회원사들의 피해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7만 필라델피아 한인 사회가 이번 시위로 직격탄을 맞을 줄 몰랐다는 그는 “이번 시위가 있기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100여개에 달하는 한인 뷰티서플라이업체들이 두달 보름동안 문을 닫았다”며 “오는 5일 재오픈을 기다리던 업체들 중 최소 35곳이 약탈당하면서 회원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필라델피아의 한인 점포 50여곳이 피해를 봤으니 뷰티서플라이업체가 집중 약탈대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한인 뷰티서플라이업체를 집중적으로 약탈한 것은 아닌 것 같고 고가의 물품이 많아서 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흑인 여성의 필수품인 가발과 미용용품을 파는데 규모가 가장 큰 곳은 300만달러어치 물품을 털렸다”며 “내일 아침이면 피해 업체가 더 늘겠지만 현재 최소 2000만달러(약 243억원) 이상 피해본 것 같다”고 말했다.
나 협회장은 4∼5일 전부터 대낮에 시위대가 떼로 몰려와 업체를 가리지않고 약탈해갔다면서 “최근 이틀 동안에는 야간에 5∼10명씩 몰려다니며 가려놓은 합판을 떼어내고 침입해 물건을 박스째 들고 갔다”고 말했다. 매일 회원사들의 피해 상황을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대부분 가게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카메라를 달아놨다”며 “알람이 울리면 ‘이제 내 가게구나’하고 한숨 쉬며 경찰에 신고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고, 그렇다고 차를 타고 가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한탄했다. 나 협회장은 시위 초기부터 회원들에게 “밤에 매장에 가지 말고 신변안전에 신경쓰라”고 강조해왔다. 실제 통행금지가 발령된 새벽에 대형 망치를 들고 와 철제문을 부수고 침입해 약탈하는 사례가 여럿 보고됐다. 코로나19로 가게 문을 닫은 상황이라서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석달가량 임대료도 못냈고 이제 장사를 재개하려다가 시위대의 약탈에 주저앉을 상황이다. 나 협회장은 “대부분 업소가 보험이 있긴 한데, 코로나19로 자금 사정이 안좋아서 비싼 보험료를 피하려고 보장범위를 30% 정도로만 든 곳이 많다”며 “전체 피해 상황이 집계되면 집단으로 보상요구를 해볼 생각이지만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는 않다”고 말했다.
뷰티서플라이업계는 40대 등도 있지만 대개 미국에 오래전에 정착한 60∼70대가 주류라서 이번 사태로 노후생활이 위협받는 업주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필라델피아 한인 사회에서는 이번 시위로 뷰티서플라이업체 외에도 약국과 보석상, 핸드폰업체 등 매장에 돈이 되는 물건이 많은 가게들이 주로 약탈대상이 됐다. 나 협회장은 “흑인 인권 개선을 위한 시위는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아무 가게나 약탈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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