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장면에서 낯선 기억을 떠올리기
지난밤 친구의 SNS에서 본 한 편의 영상 탓에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뉴욕에 가면 종종 찾던 친구의 브루클린 집 앞에는 경찰과 시위대가 가득했다. 그들 사이에는 위험한 긴장감이 흘렀고 그것은 고스란히 강렬한 외침으로 표출됐다. 무슨 일인지 검색해 보니 백인 경찰관의 강압적 체포과정에서 흑인 남성이 목숨을 잃은 일이었다. 경찰의 폭력을 규탄하는 시위가 날로 확산하고 이를 진압하려는 경찰과 충돌하는 장면들이었다.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백인이 주로 사는 남부의 한 도시에 살며 겪은 이상한 경험이었다. 인종 차별이 심했던 동네라 평등에 관한 교육이 자주 있었고,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나 생활에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룸메이트의 삼촌은 동양인과 식사해본 적이 없다며 나와 한 테이블에 앉지 않았다. 여전히 차이 또는 차별이 존재했고, 그로 인해 나는 거기서 분명한 소수자였다.
미술작품 중에는 이러한 소수자에게 시선을 보내고 귀를 기울이려는 시도를 담은 것들이 있다. 그것은 아마 예술가가 소수자의 입장에 놓일 때가 있거나 세상을 기록하려는 역할을 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의 극미한 것을 삶의 무한한 것으로
바이런 킴(Byron Kim, 1961~ )은 한국계 미국 미술가로 뉴욕에서 활동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라호야에서 태어나 예일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뉴욕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그의 작업은 시각적 결과물이지만 시적인 것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미학적 정교함과 문학적 감수성을 아우르는 그의 작품세계는 은유라는 예술의 본질을 향해 있다.
1997년 조안 미첼 재단 기금과 2017년 구겐하임 재단 펠로십의 순수미술 부문 등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샌디에이고 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플라토, 버클리미술관, 그리고 뉴욕의 휘트니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브루클린 박물관, 뉴욕 현대미술관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국내에서도 국제갤러리, 아트선재센터, 광주비엔날레 등에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그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일요 회화’(Sunday Painting, 2001~ )다. ‘일요 회화’는 작가가 2001년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있는 연작이다. 매주 일요일 그날의 하늘을 가로 35.5cm, 세로 35.5cm 크기의 소형 캔버스에 담는다. 작가는 일기(日氣)에 따라 파란색과 회색의 톤을 넘나들며 하늘을 그린다. 때로는 구름이 있고 때로는 구름이 없다. 그런 하늘의 풍경 위에 작품을 그린 시간, 장소, 그리고 일상적 소회를 적는다.
오늘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하늘의 모양새가 어떠했는지 등을 알 수 있는 문장들. 여느 일기와 다르지 않은 작가의 개인적이고 단편적인 기록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한 장소에 나란히 걸어놓으면 지난 시간이 보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은 변화들이 일어남을 알게 된다. 그 변화의 연속은 결국 ‘삶’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낸다.
‘일요 회화’가 널리 알려졌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제유법(1991~ )’이다. 이 작품은 1993년 휘트니비엔날레 출품 이후 지금까지 회자하는 대표작이다. 제유법은 사물 일부분으로 그 사물의 전제를 표현하는 수사법을 뜻한다. 이 작품은 가로 25.4cm, 세로 20.3cm 크기의 판 400개를 모아 만든 작품이다.
각각의 판은 하나의 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그 범주는 상아색과 고동색 사이다. 사전 정보 없이 작품을 보면 색의 나열 또는 실험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색은 작가가 자기 주변 사람들을 모델로 삼아 재현해낸 그들의 피부색이다. 결국 작품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모여 있는 다문화적인 장소가 된다.
이렇게 작가는 사회적 가치 이면에 존재하는 논쟁적 관점들을 추상언어로 담아낸다. 추상언어를 자기만의 논리구조로 구성하여 우리 눈앞에 펼친다. 그리고 이것을 멈추지 않고 현재진행형의 상태로 유지하여 특정 주제에 대한 작가의 다층적인 성찰을 드러낸다. 작가는 “나는 (나의 작업에서) 아주 극미한 것과 무한한 것을 연결시켜 보고자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우리는 보다 큰 그림의 일원으로서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으로 확장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인류의 사랑으로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 Torres, 1957~1996)는 쿠바에서 태어났다. 난민이 되어 스페인의 보육원과 푸에르토리코의 친척집을 전전했다. 하지만 미술에 재능이 있었고 장학금을 받아 22살에 뉴욕으로 이주했다. 프랫 인스티튜트와 뉴욕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10여년밖에 작가활동을 하지 못한 것은 이른 나이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작품을 언제든지 재현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문서형태로 남겼다. 사후에도 여전히 관람자 앞에 전시되어 인기를 끄는 이유다.
그가 뉴욕에서 살던 1980년대는 보수파가 집권하던 시기였다. 에이즈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어 동성애자를 범죄자 취급하던 때다. 작가는 유색인종, 동성애자, 에이즈 환자로 소수자 중의 소수자에 속했다. 하지만 작업에 자신의 비주류성을 반영하지 않고 미술계 주류 형식을 활용해 활동했다. 이렇게 전복하는 방식으로 자기 예술성을 영리하게 확보해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진심이 담긴 메시지로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무제(플라시보) (Untitled(Placebo))’(1991)는 사탕 더미를 바닥에 쌓아 놓은 작품이다. 관객들은 여기에 있는 사탕을 가지고 갈 수도 먹을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에이즈로 자기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한 연인 로스 레이콕의 몸무게만큼 사탕을 펼쳐둔 것이다. 큐레이터가 사라진 사탕의 무게만큼 매일 다시 채우도록 해 부활과 재생, 영속에 대한 작가의 열망을 표현한다. 동시에 관객에게 로스의 죽음과 그것에 관한 생각을 함께 나누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무제(Untitled)’(1991)는 로스와의 흔적을 찍은 사진이다. 한국에서도 남대문 건너편의 작은 광장에 설치되어 사람들을 만난 바 있다. 두 사람이 함께한 기억은 눌린 베개 흔적으로 남아 있다. 토레스는 주류에서 벗어난 그들의 사랑을 높은 곳에 설치했다. 편견과 차별이 닿을 수 없는 위치에서 가장 사적인 영역인 침대를 공개했다. 그들의 사랑이 결코 기이하거나 유별나지 않은 인간 보편의 사랑임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 시도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둘만의 사랑, 그 시절의 기억을 건드린다. 그래서 사랑이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도록 한다.
◆온전한 개인이 이루는 전체로의 세상
세상에는 수많은 사회가 있다. 신기하게도 그 사회 안에는 항상 소수자가 존재한다. 소수자는 少 적을 소, 數 셈 수, 者 사람 자를 써서 적은 수의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사회의 주류문화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 집단을 의미한다. 여기서 벗어남은 대부분 문화나 신체적으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나는 한국에서 소수자가 아니지만 미국에서 소수자였다. 소수자는 비교에 의해 태어나고 상대적이므로 어디에나 있다. 그건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 있기에 결국 우리의 일이다.
얼마 전 한 뉴스 프로그램에서 김훈 작가 인터뷰를 봤다. 그는 인간의 생명을 대항 담론의 틀에 가두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그의 말처럼 담론의 틀에 갇혀 넘어진 곳에서 계속 넘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너와 나, 우리를 떠나 인간은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소중히 여겨져야 한다. 개별 존재를 비교 없이 존중할 때 비로소 소수자가 사라질 수 있다. 서로를 하나의 사람으로 더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 바이런 킴과 토레스의 작품을 한참 동안 보게 되는 초여름 날이다.
김한들 큐레이터 / 국민대학교 미술관박물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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