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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4.0 별 ‘일’ 없습니까? [특집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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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6-06 21:00:00 수정 : 2020-07-20 11: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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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취재팀=안용성·윤지로·배민영 기자

 

1회 이미 온 미래

 

◆자리잡은 ‘언택트’… 노동의 종말을 고하다

 

일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일자리가 사라졌다. 일자리가 없어 할 일이 사라지는 세상이 됐다. ‘언택트’, 리모트 퍼스트, 자동화, 4차 산업혁명….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던 세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났다.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했던 기술은 인공지능(AI)과 로봇을 앞세워 서비스업은 물론 지식노동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 속에 노동은 파편화하고, 전통적 일자리의 개념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또는 일자리)은 그동안 얼마나 사라졌고, 또 앞으로 얼마나 사라질까. 코로나19의 ‘늪’을 벗어나면 사라진 일자리는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48만명 줄었다. 코로나19 충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년 동기가 아니라 코로나19 전과 후로 비교하면 3∼4월 두 달간 무려 102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일자리를 크게 줄인 가장 최근의 사건은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아시아, 유럽으로 빠르게 번졌다. 세계일보가 31일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금융위기의 여파가 이어진 2008∼2010년 취업자 수는 11만3000명 줄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일자리가 계속 늘어 2018년에는 10년 전보다 287만명 많아졌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취업난도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다시 금융위기 때로 눈을 돌려보자. 통계청의 ‘직업별 취업자 수’ 자료를 보면 147개 직업(소분류 기준) 중에서 금융위기 기간(2008∼2010년) 일자리가 줄어든 직업은 49개다. 위기가 지나가고 전체 일자리가 287만개 늘어나는 사이 이 49개 직업에서는 일자리가 84만개 줄었다. 사라진 일자리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미국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직업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 보고서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 경기 침체기(1970·1975·1982년)와 최근 침체기(1991·2001·2009년)를 비교했더니 두 경우 모두 반복·단순작업 위주로 일자리가 줄었다. 하지만 차이는 분명했다. 과거에는 경기가 살아나면 다시 일자리가 회복됐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못했다. 위기가 닥치면 기업들이 사람 대신 자동화 기계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도 상점판매원, 자동조립라인 조작원, 목제품 제조 종사원, 제조 관련 단순 종사원 등의 일자리 감소폭이 컸다. 코로나19는 이런 추세에 더해 전 세계가 4차 산업혁명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 터졌다.

 

누구도 내 직업이 30년 뒤 온전하리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첫 출발은 비대면 산업에서 이미 시작됐다. 코로나19가 방아쇠를 당긴 ‘언택트’ 문화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일자리의 미래를 ‘비대면의 하루’로 풀어봤다.

 

◆‘슬기로운 비대면 생활’?

 

오전 8시40분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 회사까지는 아직 두 정거장 남았고, 지하철역에서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감안하면 9시까지 출근하긴 힘들 것 같다. 그런데도 아직 잠기운을 몰아내지 못한 몸에서는 ‘카페인 수혈’을 외친다.

 

스마트폰 주문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광화문역과 가까운 커피 매장을 찾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결제했다. 걸음을 재촉하며 매장에 가니 이미 커피가 나와 있다. 9.9㎡(3평)이나 될까 싶은 작은 매장 앞에는 키오스크 두 대가 나란히 서 있고, 점원은 다른 주문을 처리하는지 매장 안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분주한 아침 시간이 지나고 점심을 먹으러 로봇 서빙으로 유명한 퓨전 이탈리안 레스토랑(메리고키친)을 찾았다. 널찍한 매장에서는 로봇 ‘딜리’가 묵묵히 음식을 나르고 있다. 딜리의 역할은 주방에서 음식을 받아 테이블까지 가져오는 것. 주문을 받는 직원은 없다. 테이블에 있는 QR코드를 찍으면 스마트폰에 메뉴가 뜨는데 일반 주문 앱처럼 음식을 골라 결제하면 된다.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모노레일을 타고 물과 숟가락, 포크가 전달됐다. 총 64명이 앉을 수 있는 매장에는 ‘사람 직원’이 한 명 더 있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매장을 나설 때까지 마주할 일은 없었다.

 

“원래는 조리과정을 제외하고 완전 무인매장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오픈하려고 보니 조리된 음식을 로봇에 옮길 때나 먹고 난 그릇을 치울 때 어쩔 수 없이 사람 손이 필요하더라고요. 손님이 식사 도중 물이나 냅킨을 찾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로봇에 추가기능을 넣으면 되지만, 그러면 로봇 단가가 올라가죠.”

 

딜리를 운영하는 김민수 배달의민족 로봇사업팀장의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르바이트생 3명을 고용했다. 하지만 한 달 운영해 보니 1명으로도 충분했다. 그마저도 저녁에는 퇴근하고 딜리 혼자 홀을 책임진다.

 

후식으로 로봇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러 갔다. 키오스크로 드립 커피를 주문하니 로봇 ‘카페맨’이 각기춤을 추듯 절도 있게 팔을 휘두르며 잔을 나르고, 그라인딩된 커피를 받아 주전자의 온도를 맞춰 반시계방향으로 물을 붓는다. 카페맨의 레시피는 실제 유명 바리스타의 것으로 프로그래밍됐다. 카페맨을 만든 이선우 에일리언 대표는 “카페는 8시간 이상 문을 여니까 최소 2명은 고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카페맨은 알바생 2명의 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회사로 들어오니 사무실에 아무도 없다. 취재차 자리를 비운 팀원들이 약속된 시간에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들어왔다. ‘원격으로 진지한 회의가 가능할까’란 우려와 달리 직접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것과 큰 차이는 없었다. 대화 내용을 받아쓰는 인공지능(AI) 비서가 ‘아마 여기 동의라고 해놓은 데’를 ‘엄마 여기 똥이라고 해놨는데’로 적는 어처구니없는 오타를 종종 내곤 했는데, ‘부장님 개그’보다는 참신한 재미가 있었다.

 

퇴근길에 요리 로봇이 있는 치킨집 1호기(1호점이 아니라)에 들렀다. 역시나 키오스크로 주문하자 지휘봉 같은 막대가 달린 로봇이 통에 든 닭고기를 굴리며 튀김옷을 입힌다. 그 옆에 있던 ‘동료’ 로봇이 하얀 반죽을 마친 닭고기를 넘겨받아 튀김기에 넣는다. 닭이 타지 않도록 중간에 튀김 통을 탁탁 튕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사이 첫 번째 로봇은 사용한 통을 깨끗이 씻어 제자리에 놓았다. 이곳은 개발사인 로보아르테의 사무실도 겸하고 있어 대표를 빼고도 3명이 일한다. 하지만 2호기부터는 1명으로 줄일 계획이다.

 

“연내 2호기가 문을 여는데 직원은 2명 아니면 1명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닭을 통에 넣고, 조리된 닭을 포장하는 정도만 사람이 하도록요. 그렇다 보니 로봇이 사람 일자리를 뺏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아르바이트생을 줄이려고 개발한 건 아니고, 은퇴 후 1인 창업하는 분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싶어 시작한 거예요. 물론 인건비를 줄이고 싶어 연락주시는 사장님이 많긴 해요.”(강지영 대표)

 

◆로봇, 공장 밖으로 나오다

 

로봇은 반세기 전부터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해 왔다. 주로 공장에서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정확하게 부품을 조립하는 게 임무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로봇이 공장 밖 서비스 영역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서빙로봇, 바리스타로봇, 조리로봇은 모두 ‘서비스로봇’이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전 세계 서비스로봇 판매량은 매년 50% 이상 늘고 있는데, 산업용 로봇 성장률(15% 안팎)보다 훨씬 빠른 증가세다.

 

로봇공학을 전공한 이선우 대표는 “산업용 로봇은 이미 대기업과 거대자본이 들어와 스타트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며 “(하지만 서비스로봇은) 최근 인건비가 계속 오르면서 시장에서 지속해서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에일리언은 조만간 수서에 완전 무인매장을 열고 조리로봇도 선보일 예정이다. 또 상황에 따라 알아서 움직이는 AI로봇으로 진화시킬 계획도 있다. 배달의민족도 4월 말 현재 16곳에 배치된 23대의 딜리를 연말까지 300대로 늘리기로 했다. 매장 입구에서 손님을 맞아 자리로 안내해 기본 식기를 세팅하는 ‘접객로봇’과 조리로봇도 개발 중이다.

 

조리로봇과 서빙로봇 등에 해당하는 일자리(조리 및 음식서비스직)에는 지난해 기준으로 130만명이 근무 중이다. 각종 판매활동을 업(매장판매종사자, 판매 관련 단순종사자)으로 삼는 이들도 210만명이나 된다. 로봇과 ‘가성비 경쟁’에 밀리면 언제든 없어질 수 있는 일자리다.

 

물론 새로 생기는 직업도 있다. 서빙 직원 3명을 1명으로 줄인 메리고키친의 사례를 단순 적용하면, 딜리가 300대로 늘 경우 취업자는 900명에서 300명으로 준다. 지금은 로봇사업팀원 9명이 판매부터 유지보수까지 전부 담당하지만, 딜리가 늘어나면 유지보수하는 인력을 따로 둘 계획이다. 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선 것은 아니지만 50대당 1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300대를 기준으로 6명분의 새 일자리가 생기는 셈이다. 서비스직에서 줄어든 일자리에 비하면 미미한 수이지만 로봇업계는 간접적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도 많을 것이란 입장이다.

 

◆의료계에도 부는 비대면

 

집에 돌아와서는 책상에 스마트폰을 세우고 아이를 무릎에 앉혔다. 일주일 전부터 코를 훌쩍거리는데 코로나19로 병원에 가기 꺼려져 원격진료를 예약해둔 터였다.

 

동네병원이었다면 안내데스크에 간호사가 2명 정도 있고 이들이 접수를 하고 키와 몸무게를 쟀겠지만, 원격진료 앱에서는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정해진 시간에 곧바로 진료가 시작됐다. 아이의 상태와 최근 병원방문 이력에 대한 문답이 오간 뒤 의사는 “지금 단계에서 항생제를 먹이는 것보다는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청진 없이 화상으로만 진행된 진료는 진찰이라기보다는 의사 삼촌과 화상통화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왕 하는 김에 공황장애를 위해 개발됐다는 챗봇에 말을 걸었다. 머리 기댈 곳만 있으면 시간장소 불문하고 5분 안에 잠드는 체질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불면증이 찾아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잠을 못 자겠어요’라고 입력하자 불면에 도움이 된다며 ‘수면약 말고 공황장애 약부터 드시라, 수면위생 수칙을 지켜라’ 등 4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나올 법한 일반적인 이야기였다.

 

한 병원에서 원격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원격진료 서비스의 질이 높지 않은 건 이제 겨우 시장이 열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에선 코로나19로 원격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때가 때인 만큼 병원진료도 비대면으로 하자는 취지인데, 원격진료가 결국 영리병원의 출발점이 될 것이란 반발도 크다.

 

200억달러(약 25조원)의 원격의료 시장이 형성된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병원 경영이 악화해 휴직했거나 일자리를 잃은 의료진이 원격의료로 수입을 보충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경기도 이천 A병원은 지난달 병원 응급실 의료진 3명을 해고했다. 그중 한 의사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가 직격탄이었고, 이런 이유로 해고되는 사례는 내가 처음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의료계도 식당이나 커피숍 같은 일반 서비스업처럼 비대면의 흐름 속에 ‘사람 직원’을 줄이는 쪽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하지만 원격의료라는 새 분야가 생기는 만큼 총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란 주장도 있다. 김재현 파이터치연구원 연구실장은 “원격의료서비스 규제가 풀리면 대면 의료서비스에서 고용은 3.31% 줄지만, 원격 의료서비스에서 5.15% 늘어날 것”이라며 “연간 2000명 정도 고용이 증가하는 효과”라고 전망했다.

 

◆별일 없는 미래 vs. 별 일 없는 미래

 

챗봇과의 허무한 대화를 끝내고, 온라인 서비스거래 마켓에 들어가 ‘투잡’ 기획안을 올렸다. 프리랜서 마켓인 크몽의 경우 2016년 11월 100억원이었던 누적거래액은 지난해 10월 1000억원을 찍었다. 크몽 관계자는 “등록된 전문가는 23만여명, 이 가운데 320여명이 올해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봉(3382만원) 이상을 번다”고 했다.

 

서비스 비용을 책정하고, 프로필을 올리다 보니 ‘투잡 대박’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로부터 3일간, 마켓으로부터 세 번의 메시지를 받았다. ‘귀하의 서비스가 비승인되었습니다’. 숟가락만 얹으면 밥이 저절로 들어오는 시장인 줄 알았는데 역시 만만한 곳은 없었다.

 

‘비대면의 하루’에는 카운터 직원 대신 키오스크가, 간호사 대신 앱이 있었다. 4차 산업의 파도 속에 우리의 일자리는 별일 없을까, 아니면 별 일 없을까.

 

◆직원 대신 키오스크 ‘점령’… 서비스업 일자리가 사라진다

 

#.“기계한테 밀리게 될 줄 몰랐네요.”

 

대학생 A(22·여)씨는 최근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었다. A씨를 포함해 5명이 일하던 패스트푸드점은 직원 2명을 줄이고, 근무 시간을 조절했다. 그 자리에 대신 키오스크가 추가로 들어섰다. A씨는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대표적인 ‘알바’ 자리인 편의점, 음식점, 영화관, PC방 등은 언택트 시대에 맞춰 무인화 열풍이 거센 상황이다.

 

#.“키오스크 설치가 가장 잘한 일 같아요.”

 

서울 광진구에서 지난해 작은 우동가게를 연 B(47)씨는 키오스크 설치를 장사 시작 후 최고의 선택으로 꼽는다. B씨는 직원을 구하려다 고민 끝에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무엇보다 인건비 영향이 컸다. 키오스크 임차에 들어가는 돈은 매달 10만원. 하루 6시간 아르바이트생을 쓴다고 가정했을 때 한 달에 들어가는 돈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된다.

서비스업 일자리가 급격히 쪼그라들고 있다. 일자리 감소의 첨병에는 키오스크가 있다. 키오스크는 원래 ‘신문·음료 등을 파는 매점’을 의미했지만, 최근에는 서비스업 전반에 걸쳐 두루 활용되고 있다. 특히 대부분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이뤄지는 기기 특성 때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대체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키오스크의 공습

 

키오스크는 서비스업 분야에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3대 패스트푸드 업체인 롯데리아, 버거킹, 맥도날드의 키오스크 도입률은 지난 4월 현재 60∼90%에 달한다. 매장 공간 사정으로 키오스크 설치가 불가능한 곳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매장에 설치됐다는 설명이다. 아예 직원이 없는 편의점도 있다. 매대에 장착된 무게 감지 센서를 통해 소비자가 집어 든 물품을 감지하고 가격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물건을 고른 후 출입문을 통과하면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된 결제시스템으로 자동 결제된다.

 

경기도의 한 키즈카페 체인점도 최근 ‘언택트’ 시대에 맞춰 문을 새로 열었다. 이 업체는 매장 한 곳당 평균 7명의 직원을 채용했지만, 새로 문을 연 키즈카페의 직원 수는 2명뿐이다. 대신 요금 계산, 식음료 판매 등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키오스크를 곳곳에 설치했다.

 

주차장도 마찬가지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영화관 등은 주차요금을 징수하는 직원을 채용했지만, 이제는 무인결제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코로나19 이후 키오스크에 대한 거부감이 약해지면서 대형 매장뿐 아니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도 키오스크 설치에 나서고 있다.

 

사회 곳곳에 키오스크가 자리 잡으면서 관련 산업도 크게 성장했다. 세계일보가 국립전파연구원에 전파인증을 취득한 키오스크 건수를 통해 확산 속도를 가늠한 결과, 2010년 28건에 불과했던 키오스크 ‘적합등록’ 건수는 지난해 85건으로 3배가량 늘었다. 올해에도 지난 4월 현재 41건을 기록하며, 이미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이명철 키오스크코리아 대표는 “10년 전만 해도 키오스크는 쇼핑몰 층별 정보나 관광 안내 정도였다. 최근에는 영화관, 커피숍, 식당, 마트까지 ‘언택트’ 경향이 짙어지면서 시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키오스크가 새로 만들어져서 그만큼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bbc리서치는 세계 대화형 키오스크 시장이 2015년 492억달러에서 2021년 835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99년 100억원이던 키오스크 시장 규모가 2009년 1000억원, 2014년 2000억원, 2018년 3000억원(신한투자금융 보고서)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코로나19 이후 ‘언택트’ 경향이 심화하면서 이 같은 증가세를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사라지는 서비스업

 

‘키오스크 공습’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사람이 설 자리에 기계가 들어서는 만큼 일자리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미국에서는 2013년 맥도날드가 1만4000개 매장에서 키오스크 도입 추진을 밝히자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2016년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이 무인 식료품 매장인 ‘아마존고’를 연 사건은 키오스크 충격의 상징과도 같다. 아마존고는 AI 기술을 이용한 키오스크를 도입해 무인매장을 운영해 높은 수익성을 올렸다. 기술을 통해 직원을 없애고 수익을 높이는 방식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일자리의 미래를 단편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꼽힌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현실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숙박·음식업 종사자는 16만6000명 감소했다. 코로나19 충격에다 대체 가능한 서비스업 일자리 영역에서 빠르게 자동화, 무인화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반가운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기술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도입할지 여부는 인간이 결정하는 부분이 크다”면서 “코로나19는 대체 가능한 일자리에서 기계의 도입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된다 해도 사라진 일자리가 100% 회복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람을 고용하는 행위가 ‘위험’으로 작용하면서, 각 사업체는 키오스크 도입으로 인한 효율성을 찾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 위원은 “기술은 파급효과가 있기 때문에 도입이 확대되면 자동화에 들어가는 비용은 더욱 낮아지게 된다. 단가가 낮아지면 이용을 주저하던 업체의 도입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산업 전반으로 확산”

 

그렇다고 키오스크 산업 분야의 일자리가 크게 늘었거나 전체 제조업 일자리가 증가한 것도 아니다. 국립전파연구원에 올라온 키오스크 관련 업체를 분석한 결과 직원 수 파악이 가능한 140개 업체 가운데 직원 수가 100명이 넘는 곳은 18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롯데컬처웍스와 같이 키오스크 사업이 주요 분야가 아닌 기업을 제외하면 그 수는 10개 남짓으로 줄어든다. C업체의 경우 매출이 2015년 26억원에서 2018년 75억원으로 확대됐지만, 직원 수는 16명에 불과하다.

 

키오스크 충격은 비단 서비스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AI와 키오스크의 결합은 더 많은 영역에서 더 빠르게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이미 자율배송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여기에는 아이스박스처럼 생긴 동체에 바퀴 6개가 달린 배송 로봇 ‘스카우트’가 활용된다.

 

이밖에 미국 무인 식료품 배달 자동차 개발 스타트업 ‘뉴로’도 최근 각종 생활필수품을 주문자의 문 앞까지 배송해주는 소형 로봇 관련 특허를 출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르면 올해 10월부터 ‘자율주행 이동우체국’ 서비스가 시범 운영된다. 이는 이용자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로봇이 특정 장소로 이동해 등기·택배 등을 신청받거나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지난 2월 한국경영학회 학술지에 실린 ‘키오스크 산업 분석: 도입 효과와 시장 분석’ 보고서는 “키오스크의 도입은 필연적으로 서비스업 분야의 고용 감소를 초래해 관련 부문의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라며 “키오스크가 점차 금융, 의료, 법률 등 고숙련 업무에도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2회 예외는 없다

 

◆로봇 활용 ‘고용 없는 성장’… 화이트칼라 ‘데스노트’ 오른다

 

그? 그녀? 아니, 사람은 아니니까 ‘그것’이 좋겠다. 그것은 듣던 대로 영리했다. 엑셀 파일을 건네받은 그것은 0.1초도 안 돼 777자의 기사를 뽑아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직업별 AI 대체 확률' 보고서에서 AI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에 대해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에 의하면 총 423개의 일자리 중 AI 대체 확률이 가장 높은 상위 5개의 일자리는 인터넷 판매원 (99.0%), 통신서비스 판매원 (99.0%), 사진인화 및 현상기 조작원 (99.0%), 텔레마케터 (99.0%), 관세사 (98.0%)로 조사되었다.

 

반대로 가장 영향을 덜 받는 일자리 다섯개는 장학관ㆍ연구관 및 교육 관련 전문가 (0.0%), 전문 의사 (0.0%), 영양사 (0.0%), 보건의료관련 관리자 (1.0%), 교육 관리자 (1.0%)로 나타났다. 전체 일자리 중 대체 확률이 70%가 넘는 일자리의 수는 160개로 모두 38%에 달했다.

 

직업군별로 살펴보면, AI에 영향을 받는 직업군의 대체 확률 평균은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 종사자 (81.0%), 판매 종사자 (81.0%), 사무 종사자 (80.0%), 단순노무 종사자 (76.0%), 농림어업 숙련 종사자 (71.0%), 기능원 및 관련 기능 종사자 (65.0%), 서비스 종사자 (50.0%),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 (26.0%), 관리자 (17.0%) 순서로 조사되었다.

 

AI 대체 확률이 50% 미만인 직업군은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와 관리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 직업군에 속한 일자리 중에서도 관세사 (98.0%), 회계사 (96.0%), 세무사 (96.0%), 감정평가 전문가 (95.0%), 손해사정인 (95.0%)은 높은 대체 확률을 보여주었다.

 

이 기사는 이준환 서울대 교수가 개발한 기사작성 인공지능(AI)에 의해 작성됐다. 세계일보는 2018년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위험 진단’ 보고서를 쓴 김건우 카카오모빌리티 데이터 이코노미스트(당시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로부터 423개 직업의 대체 확률 원본 자료를 받아 AI에게 넘겼다. AI는 자기 때문에 사라질 운명에 처한 인간의 직업에 대해 보란 듯이 기사를 써냈다.

 

비록 원인 분석이나 전문가의 설명이 없는 단순한 형식이지만 ‘조사되었다’, ‘나타났다’, ‘달했다’처럼 다양한 서술어는 물론, 부족하다는 느낌을 전달할 때 쓰는 ‘불과했다’는 표현도 구사했다.

 

AI에 의한 일자리 대체는 이미 눈앞에 와 있다. 이는 영국 옥스퍼드대 칼 프레이 교수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가 쓴 논문과 미국 경영 컨설팅 전문회사 매킨지의 보고서,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대런 애스모글루 교수의 연구 등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도 LG경제연구원과 한국노동연구원이 미래 일자리에 대한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연구 방법에 따라 현재 일자리의 20∼50%가 4차산업 기술로 대체될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직업에 따라 충격의 정도는 차이가 크다. 김건우 이코노미스트의 연구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는 77%가 저위험군 일자리다. 반면, 사무 종사자는 86%, 판매 종사자와 장치, 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는 각각 78%와 59%가 고위험군이다.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사무 종사자에는 경영 관련 사무원, 회계·경리 사무원, 비서·사무보조원 등이 있다. 전통적인 ‘화이트칼라’ 일자리다.

 

◆‘화이트칼라’가 위험하다

 

맥스 테그마크 MIT 교수는 그의 책 ‘라이프 3.0’에서 AI의 위협을 이렇게 설명한다.

 

“산업혁명 시기에 우리는 인간의 근육을 어떻게 기계로 대체할 것인지 궁리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근육보다 정신을 더 써서 돈을 더 많이 받는 일자리로 옮겨갔다. 블루칼라 일자리는 화이트칼라 일자리로 대체됐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두뇌를 어떻게 하면 기계로 대신할 수 있을지 궁리해내고 있다.”

 

AI를 산업혁명 때의 기계와 비교할 수 없는 건 인간의 보루라고 여겼던 정신활동을 넘보고 있기 때문이란 얘기다. 하지만 아직 이런 전망을 피부로 느끼기란 쉽지 않다. 기계화의 물결에도 일자리는 계속 늘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취업자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63년부터 지난해까지 취업자가 전년보다 줄어든 건 단 네 차례뿐이다. 오일쇼크가 덮친 1984년과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신용카드 대란이 벌어진 2003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이다. 하지만 모두 일시적인 ‘사건’이었을 뿐 산업구조의 변화로 일자리의 총량이 주는 일은 없었다. 전체적인 추세로 보면 매년 36만명씩 취업자가 늘었다.

 

이는 기술에 의해 노동력이 대체되는 효과보다 생산량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이원재 LAB2050 대표는 “기술이 발전하면 노동을 덜 투입하고도 부가가치가 올라가는 효과를 얻게 된다”며 “산업혁명 이후 기술이 계속 발전했음에도 고용이 늘어난 것은 노동력이 줄어든 것 이상으로 생산량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에 필요한 일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고용계수(10억원의 부가가치를 산출하는 데 필요한 고용자의 수)의 하락 속도도 제조업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2005년 13.46이던 전체 산업 고용계수는 2017년 4.22로 하락했다. 하지만 기계화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제조업에서는 같은 기간 9.77에서 1.88로 떨어졌다. 전 산업 중 74%의 고용을 담당하는 서비스업에서도 18.63에서 6.68로 낮아졌다. 기계화, 자동화로 인한 ‘고용 없는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얼마나 새로 생겨나나

 

물론 새로 등장하는 직업도 있다. 지난달 28일 한국고용정보원이 펴낸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직업 종류는 1만6891개다. 이 가운데 2012년 이후 8년 동안 새로 생겨난 직업이 5200여개에 달한다. 유튜버와 같은 미디어콘텐츠창작자, 드론 조종사, 블록체인 개발자, AI 엔지니어 등 4차 산업혁명 등 사회변화에 따른 신생직업도 270개나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신생직업이 사라지는 직업을 대체할 만큼 충분한 고용 창출 효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한국의 표준직업분류는 대분류부터 세세분류까지 5단계로 직업을 구분한다. 이 중 통계청이 공개하는 직업별 취업자 수는 소분류까지다. 소분류로 나눈 직업을 취업자 수로 나열했을 때 20위까지는 매장 판매 종사자, 작물 재배 종사자, 조리사 등 전통적인 직업이 포진해 있다. 21번째 가서야 ‘컴퓨터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등장한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총 32만5400명으로 전체 취업자 수(2703만8400명)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이후 간호사, 비서 등 전통적인 직업이 이어지다 다시 35번째에 통신 관련 판매직이 나타난다. 온라인 쇼핑 판매원, 단말기 판매원 등이 포함된 이 직업군에는 21만5000명, 전체 취업자 수의 0.8%가 있다. 이런 식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등장한 소분류 직업군 취업자 수를 다 더해봐도 107만3200명, 전체의 4%를 넘지 않는다.

 

◆네이버 시가총액 현대차의 2배… 직원은 20분의 1

 

전통적인 제조업과 인터넷 기업을 대표하는 현대자동차와 네이버를 비교해도 그렇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 직원 수는 7만32명(기간제 근로자 포함)이다. 2014년 6만4956명에서 2016년 6만7517명, 2018년 6만9402명으로 늘다가 지난해 7만명을 넘어섰다. 연평균 6∼7%의 증가율이다.

 

네이버의 상황은 다르다. 네이버의 직원 수는 2014년 2346명에서 2016년 2693명, 2018년 3585명으로 늘었다가 지난해에는 3492명으로 줄었다. 네이버의 직원 수는 현대차의 20분의 1 수준이지만, 시가총액은 현대차의 2배에 달한다. 최근 코스피 시가총액 10위 안에 입성한 카카오의 직원 수는 이보다 더 적은 2701명이다. 직원 1명당 매출액을 단순 비교하면 현대차의 경우 1명당 1500억원, 네이버는 1800억원 규모다.

 

미국 상황은 더욱 극적이다. 1964년 미국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기업이던 통신회사 AT&T는 당시 직원 수가 75만80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한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직원 수가 7만여명에 불과하다.

 

◆중간 일자리가 사라진다

 

일자리의 질도 걱정해야 할 부분이다. 미래 일자리 연구들은 대체로 고용 감소가 ‘중간 일자리’에서 벌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고용전망 2019’를 보면 2006년 이후 10년간 중숙련도 일자리비율(각종 사무직, 기계조작원 등)이 줄어든 국가는 30개 조사국 가운데 룩셈부르크를 제외한 29개국에 달했다. 고숙련도와 저숙련도의 일자리는 국가별 상황에 따라 증감이 달랐다.

 

중숙련도 일자리가 가장 크게 줄어든 국가는 그리스(-12.7%포인트)였으며, 오스트리아(-9.2%포인트), 덴마크(-8.4%포인트) 등도 감소율이 높았다. 우리나라도 중숙련 일자리가 6.1%포인트 감소하며, OECD 평균(-5.3%포인트)보다 높았다. 고학력자가 고소득을 누리는 고숙련 일자리와 저학력자가 낮은 임금을 받는 저숙련 일자리로 양극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교수는 “AI가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더라도 저숙련 일자리는 (비용효과를 따져) AI를 굳이 개발할 필요가 없는 잡일 처리 영역에서 여전히 살아남아 AI의 뒷심부름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로봇 공학자인 한스 모라벡은 계산, 암기 등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언덕이나 산에 비유해 ‘인간 능력의 지형도’라 불렀다. 그리고 컴퓨터는 이 지형도에 서서히 물을 채우는 역할을 한다. 컴퓨터가 발달할수록 수위가 올라가 인간은 잠기지 않은 봉우리로 이동해야 한다. 고숙련 일자리도 직업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기사작성 AI가 국내외 언론에서 활용되기 시작한 것도 지형도의 수위가 많이 차올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비관적인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국제로봇연맹(IFR)은 ‘생산성, 고용, 직업에 미치는 로봇의 영향’ 보고서에서 로봇은 “노동 행위를 대체하는 것이지, 직업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일종의 동료로서 사람의 일을 덜어줄 뿐이란 이야기다. 그 예로 로봇 밀집도 최상위권인 한국과 독일의 실업률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점을 들었다.

 

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결과적으로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많아진다고 하더라도 마트 계산원이 갑자기 구글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듯 마찰적 실업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충격을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변호사·의사 일부 업무 수행… 전문직도 ‘위협’ 

 

인공지능(AI)은 단순 반복 노동뿐 아니라 의사, 변호사 등 기존 전문직이 수행하던 업무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가고 있다. AI가 이들 전문직을 완전 대체할지 일부 업무만을 떠안게 될지를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AI가 갈수록 필요해지고 있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1일 AI업계 등에 따르면 AI는 관세·세무·회계 등 업무는 물론 변호사업계와 의료계에서도 이미 실무에 활용되고 있다.

 

변호사업계에서는 판례 검색 및 계약서 분석 업무에 AI가 도입됐는데, 일부 플랫폼은 일반인도 쉽게 접근해 사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한 상태다. 법률사무소 인텔리콘이 개발한 ‘알파로’는 문서 분석용 AI다. 주로 계약서 분석에 사용되는데 특정 문항이 어떤 오류를 담고 있는지, 그대로 계약을 체결하면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사용자에게 제시해 준다. 사용자는 분석하고자 하는 계약서 내용을 알파로에 ‘복사+붙여넣기’하거나 파일을 업로드하기만 하면 된다. 분석은 약 4초면 끝난다.

 

알파로는 지난해 8월 열린 ‘제1회 알파로 경진대회’에서 근로계약서 3종을 가장 먼저 분석해 우승을 차지했다. 인간 변호사들로 구성된 팀이 계약서를 받아들고 읽기 시작할 무렵 이미 알파로는 분석을 마쳤다.

 

다만 의뢰인 상담, 서면 작성 등 변호사의 고유 업무를 AI가 맡는 것은 상당 기간 어려울 전망이다. 해당 법률사무소 임영익 대표변호사는 “학습해야 하는 데이터가 많아야 한다”며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 만들지는 않는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AI판사는 쉽다. 변호인과 검찰이 준 자료를 보고 판단하는 업무여서 자료만 주면 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미국 일부 지역 법원에서는 AI를 재판 업무에 도입해 판사가 결정을 내리는 데 활용되고 있다.

 

삼성전자 출신들이 세운 ‘룰루랩’은 AI를 탑재한 피부 진단기를 개발했다. 이 진단기를 활용하면 자신의 피부 상태가 어떤지를 피부과에 가지 않아도 얼굴 부위별로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적합한 화장품까지 추천받을 수 있다. 이 회사 최용준 대표는 “피부 진단을 통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향후 걸릴 수 있는 질병을 예측하는 수준까지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SNS 스타로 뜨는 아바타… 인간 고유 영역 ‘창의성’ 넘봐

 

“빌리 아일리시랑 호아킨 피닉스를 정말 좋아해요. 저와 같은 계열 중에서는 당연히 릴 미켈라죠. 제 우상이에요.”

 

조 드비르(Zoe Dvir)는 세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롤모델’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아일리시는 지난 1월 그래미 어워드에서 5관왕을 차지한 미국 팝스타, 피닉스는 영화 ‘조커’에서 열연한 할리우드 배우다. 그럼 미켈라와 인터뷰의 주인공 드비르는 누굴까. 정답을 공개하기에 앞서 드비르와 나눈 인터뷰를 소개한다.

이스라엘 ‘가상 인플루언서’ 조 드비르(왼쪽)가 세계일보 윤지로 기자와 함께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하며 “팝 가수 빌리 아일리시와 협업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진은 지난달 11일 드비르를 제작하는 ‘조(Zoe)01’ 팀이 윤 기자의 독사진에 드비르를 합성해 보내왔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제 이름은 조 드비르. 나이는 22살, 미술과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어요. 동네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간간이 모델 일도 하고 있어요.”

 

‘가상 인간’ 조 드비르는 ‘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하는 환경주의자’라는 콘셉트로 지난해 인스타그램 활동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사람 친구들’을 위해 마스크 착용에 동참했다. 조 드비르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을 보니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

 

“축산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뒤 관심이 생겼어요. 육류업계의 불편한 진실과 축산업이 일으키는 환경 문제를 알게 되니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환경과 지속가능함, 동물권에 대한 포스팅을 주로 해요.”

 

―저도 얼마 전부터 채식을 시작했는데 좀 힘드네요. 솔직히 고기는 너무 맛있잖아요. 저 같은 사람을 어떻게 독려하나요?

 

“음… 너무 설교처럼 들리진 않았으면 하는데,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수많은 동물이 끔찍한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았으면 해요.”

 

‘가상 인간’ 조 드비르는 ‘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하는 환경주의자’라는 콘셉트로 지난해 인스타그램 활동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사람 친구들’을 위해 마스크 착용에 동참했다. 조 드비르 인스타그램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진도 봤어요.

 

“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인간 친구들’에게 동질감을 표현하고 싶어 마스크를 썼어요. 저야 ‘디지털 페르소나’라서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요.”

 

인터뷰를 읽고 눈치챘을 수 있지만, 드비르는 이스라엘 인플루언서이자 컴퓨터 코드로 구현된 ‘가상 인간’이다. 지난해 1월 계정을 만들어 1년5개월 새 팔로어 3만명을 끌어모았다.

 

가상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

그가 우상이라고 한 미켈라도 가상 인플루언서다. 미켈라는 ‘브라질과 스페인 혈통을 반씩 물려받은 19세 가수지망생’이란 콘셉트로 2016년 인스타그램에 첫 사진을 올렸다. 그의 계정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3년이 지난 현재 팔로어가 238만명에 이른다.

 

단순한 흥밋거리로 보이지만, ‘사람 인플루언서’가 그렇듯 이들도 팔로어 수를 ‘밑천’으로 경제활동을 한다. 켈빈 클라인과 프라다 같은 고가 브랜드의 홍보모델(유명인이 제품 사용하는 모습을 노출해 인지도를 높이는 방식)로 활동하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삼성 갤럭시 S10의 온라인 홍보 캠페인 팀갤럭시(#TeamGalaxy)에 합류했다. 미켈라의 활약에 힘입어 그를 만든 로스앤젤레스 스타트업 ‘브러드’의 시장가치는 지난해 말 기준 1억2500만달러(1548억원)까지 치솟았다.

 

영국에서 개발한 디지털 슈퍼모델 슈두는 프랑스 브랜드 발망, 독일의 가상 패셔니스타 눈누리는 발렌시아가, 타미힐피거의 모델로 활동했다. 드비르도 이스라엘에서 레스토랑과 커피숍 모델로 활동 중이다.

 

◆창의성의 영역도 ‘주 무대’

 

창의성, 섬세한 감정표현이 중요한 영역에서도 컴퓨터 코드가 빚은 가상 인물들이 활약하는 시대다. 비단 인스타그램뿐 아니라 유튜브에서도 ‘브이튜버(virtual+YouTuber)’라고 부르는 가상 유튜버들이 채널을 운영 중이다. 브이튜버들의 영상은 2017년 이후 5억뷰를 넘어섰다.

 

최근에 활동하는 가상 인간의 선두주자는 미켈라이지만, 이들의 ‘조상’은 따로 있다. 1996년 일본에서 ‘DK-96’이란 이름으로 데뷔한 다테 교코다. 그 뒤로 미국과 영국에서 아나노바, 티-베이베가, 한국에서도 사이버 가수 아담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디어 운영자 트레이버스

가상 인간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 미국에서 가상 인간 미디어(virtualhumans.org)를 운영하는 크리스토퍼 트레이버스와 세 차례에 걸쳐 이메일을 주고받았다(그는 진짜 사람이다).

 

“저도 아담을 알아요. 아담뿐만 아니라 루시아, 사이다도 잘 알고요. 하지만 이들은 팬들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했어요. 요즘엔 다릅니다. Z세대(1997∼2000년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는 가상 인간이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이들에게 감정이입하고, 사람과 동일시하는 데 아무런 거부감이 없어요.”

 

지난해 미국 SNS 분석업체 하이프오디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상 인간의 팔로어는 32.1%가 18∼24세 여성이었고, 이어 25∼34세 여성(18.2%), 18∼24세 남성(15.3%)의 순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뒤섞인 세상에서 커왔어요. 온라인에서 친구를 사귀고 유명인사를 팔로합니다. 대부분은 실생활에서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도 실시간으로 이들의 하루하루를 들여다보고 감정을 나눕니다. 또, 스스로 자기와 닮은 이모지를 만들어 게임 같은 가상현실로 들어가기도 하고요. 이들에게 정체성이란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 칵테일 같은 겁니다.”

 

◆인간의 영역은 좁아질까

 

가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편의성도 있다. 열애설이나 각종 루머 없이 100% 제작자 의도에 맞게 관리가 가능하다. 24시간 일을 시켜도 지쳐 쓰러질 일도 없고, 여기서 생기는 수익을 가상 인간과 나누지 않아도 된다.

 

녹스 프로스트

트레이버스는 이들의 활동 무대가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될 것이라 내다봤다. 실제로 가상 인간이 영리 목적으로만 운영되는 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기간 정보전달과 기부 활성화를 위해 가상 인간 녹스 프로스트를 홍보대사로 기용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CES에서 인공지능(AI) 기능을 갖춘 인공 인간 ‘네온’을 선보이기도 했다.

 

결국 창의성의 직군에서도 사람들의 자리는 좁아지는 걸까. 트레이버스는 그 반대로 봤다.

 

“가상 인간 덕에 일자리는 오히려 늘어날 것 같아요. CGI(컴퓨터생성이미지) 아티스트와 스토리텔러, 사진가, 프로그래머, 매니저, 콘텐츠 기획자 등이 모두 동원돼야 가상 인간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결국 미래는 완전히 현실만 혹은 완전히 가상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두 영역이 혼재될 겁니다.”

 

데뷔 2년차 드비르도 언젠가 ‘사람 가수’ 빌리 아일리시와 협업하는 게 꿈이다.

 

“당장은 학위를 마치면 인스타그램 활동을 하면서 환경 단체나 관련 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할 거예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존경하는 빌리 아일리시와 함께 콜라보도 하고 싶어요.”

 

◆AI가 발음·표정까지 분석… 생각보다 떨리네∼

 

“지금부터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지원 동기는 무엇인가요?”

 

2016년 말 어렵게 입사를 한 뒤 다시는 면접을 볼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더는 보고 싶지도 않았다. 직업 특성상 줄곧 질문만 해오던 터라 별것 아닌 질문에도 긴장감은 커졌다. 더구나 면접관은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AI)이다. 컴퓨터 카메라를 앞에 두고 AI에게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정답’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뭔가 억울했다. 지난달 13일 ‘AI역량평가’를 개발한 마이다스IT의 분당 판교 사옥에서였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흔히 ‘AI면접’으로 널리 알려진 해당 역량평가는 면접관(사람) 대신 카메라와 마이크 기능이 내장된 노트북 앞에 앉아 대답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 면접과 달랐다. AI는 질문을 던진 뒤 생각 정리 시간 및 답변 시간을 약 90초씩 줬지만,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AI가 답변 도중에 말허리를 끊지 않은 게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음 관문은 지원자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 160개에 답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은 모니터에 표시된 객관식 질문을 받고 보기를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기존의 인·적성검사와 비슷했다. 깊게 고민을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마음 가는 대로 답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답하면 AI가 ‘신뢰 불가’ 판정을 내려 실제 취업 과정에선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어지는 순서는 AI면접의 핵심인 게임이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카드 뒤집기, 도형 방향 바꾸기 등 게임 10개를 연속으로 해야 했다. 게임은 지원 분야에 따라 종류가 달라진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게임별로 필요한 인간 두뇌의 활동 영역도 다르다고 했다. 이를 통해 지원자의 역량을 정량화된 데이터로 뽑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이다스IT 관계자는 “이를테면 뽑은 지 2년 만에 퇴사하는 직원이 있다면 이런 사람의 특징은 뭔지, 뇌의 어느 부분이 활발한지 등을 파악해 데이터 분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을 모두 마치니 심층 질문을 끝으로 면접이 끝났다.

 

현재 수준의 AI 면접관은 질의응답 과정에서 지원자의 발성, 발음, 표정 등을 분석한다. 지원자의 논리력과 태도 등 영역은 여전히 인사담당자(사람)가 녹화된 영상을 돌려보며 평가해야 한다. 기존 대면 면접과 다름없는 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다.

 

업체 측은 “공정한 선발 방식이라는 인식이 퍼져 현재 300개 이상 기업이 AI역량평가를 도입해 활용 중”이라고 했다.

 

3회 변화하는 일자리

 

◆전문가·노동자 10명 중 8명 “AI시대, 빈부격차 더 벌어질 것” 

 

‘내 일은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개발된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인해 일자리에서 밀려난다면(또는 노동에서 해방된다면), 그런 시대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단순 반복 업무를 하는 노무직은 물론 제조업, 서비스업, 화이트칼라 등 분야를 망라한 직업들이 AI와 로봇으로 대체되는 상황에서 경제학자와 AI공학자, 노동자들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노동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낙관과 비관, 또는 무지와 무관심 사이에 이미 기술은 코앞까지 다가왔다.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들어봤다.

 

2일 세계일보가 AI공학자와 사회·경제학자, 노동자 등 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응답자의 58.6%가 AI시대에 인간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변화가 없을 것(28.5%)이라는 응답자의 약 2배, 늘어날 것(12.9%)이라는 응답자의 4.5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서 각 응답자들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들여다보면 AI가 인간의 노동을 얼마나 대체할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함을 알 수 있다. 현재 AI대학원에 재학 중인 한 대기업 엔지니어는 “일자리는 줄어들 것 같다”면서도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으려면 인간에 준하는 지능과 판단력을 지닐 수 있어야 하는데, 돌발 상황이나 상식에 의한 판단 혹은 윤리 문제로 논리를 뒤집는 결정을 하는 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반면 한 국책 연구기관 소속 정보학자는 “AI로 인해 신산업과 새로운 사업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는 일에 따라 일자리의 미래, 노동의 내일에 대한 걱정은 강도를 달리했다.

 

◆“제조업·금융업 고위험… 예술·여가서비스업은 안전”

 

그렇다면 응답자들은 AI의 확산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업종을 각각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향후 전망이 가장 어두울 것으로 꼽힌 업종은 단연 제조업(75.7%)이었다. 이 분야는 지금도 상당 부분 자동화가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AI기술 발전과 함께 비정형화된 작업까지 로봇이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금융보험업(71.4%)과 운수업(50%)에서도 인간이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이라고 응답자들은 생각했다. 금융업의 경우 이미 자동화의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ATM, 모바일뱅킹 등으로 비대면 거래 비중이 늘어나면서 오프라인 지점 수를 줄이는 추세가 짙어지고 있다.

 

반대로 인간이 경쟁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은 예술·서비스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75.7%), 출판·영상·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47.1%), 보건 및 사회복지사업(38.6%) 순으로 나타났다. 창의력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 있을 것이라고 응답자들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화·예술 분야의 상당 부분이 AI에 대체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인공지능 기업 솔트룩스의 이경일 대표는 “우리가 보기에 예술은 창의적일 수 있지만, 정말 창의적이어서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 하는 건 전체 예술 직군의 10%밖에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머지 90%는 반복노동이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창의력보다 규칙적으로 기존의 것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문화 콘텐츠라면 AI가 인간보다 더 빨리 배우고 제작까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10년 내 새로운 일자리 찾아나서야”

 

그렇다면, AI에 밀려 인간들이 실제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상황이 발생할까. 응답자들은 대체로 “새 직업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대체 직군 종사자들이 향후 10년 내에 새로운 일자리를 탐색해야 할 가능성에 대해 응답자의 51.4%는 ‘대체로 높다’고 답했다. ‘매우 높다’는 응답도 25.7%에 달했다. 10명 중 7명이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군 종사자들이 새로운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AI의 도입으로 어느 세대가 가장 큰 타격을 볼 것인지를 두고는 10대(27.1%)와 20대(22.9%)가 높게 나타났다. 현재도 일자리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놓고 AI와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말이다. 기술 진보를 인정하면서도 대체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금이 아닌 다음 세대’로 생각하는 경향으로도 풀이된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지금의 20대는 힘들 수 있지만 결국 적응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가장 힘든 건 향후 20년을 놓고 볼 때 지금의 30대”라며 “앞으로 20년 넘게 돈을 벌어야 하는 30대가 ‘낀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AI 지식으로 무장한 어린이와 은퇴를 앞두고 있는 장년층 사이에서 일자리 위협을 받아야 하는 ‘삼중고’가 30대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전창록 경북경제진흥원장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창조력은 편집의 배열, 순서를 바꾸는 수준인 경우가 많다”면서 “창조라는 게 무에서 100%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는 관점이라고 본다면 나이가 많은 사람이 유리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관찰하고 발명할 수 있고, 질문을 던지는 역량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취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자리 수’와 ‘일의 양’, 구분해 생각해야”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어느 정도로 대체할지에 대해선 ‘30∼40%’라는 응답자(25.7%)가 가장 많았다. 아울러 ‘20∼30%’라고 본 응답자(20.1%)와 ‘50∼60%’라고 본 응답자(15.7%)가 뒤를 이었다. 전체 응답자 중 32%는 전체 일자리 중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응답자들은 일자리를 ‘일자리의 수’로 보는지 또는 ‘일의 양’으로 보는지에 따라 엇갈린 의견을 갖고 있었다. 일례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들 사이에서는 “AI 자체가 노동 효율화를 위해 개발된 것”, “자동화의 영향으로 수작업이 줄어든다”며 일의 ‘양’이 줄어들 것이라고 본 시각은 물론, “기계가 사람 업무를 대체하고 있어 일자리 감소는 시간문제”라며 일자리의 ‘수’를 중심으로 생각한 답변도 있었다.

 

전 원장은 이를 두고 “일자리를 어떻게 규정하는지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일자리 총량이라는 게 일의 양인지, 일자리의 숫자인지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의 양은 줄어들 것이고, 일자리 숫자가 줄어든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AI와 로봇으로 인해 고용의 형태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응답자의 72.9%는 미래 일자리에 대해 “긱 이코노미가 확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긱 이코노미란 임시, 비정규직, 시간제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가 늘어나는 상황을 뜻한다. 반대로 고용 형태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14.3%에 그쳤다.

 

◆“빈부격차 더 커질 것”

 

응답자의 82.9%는 빈부격차가 지금보다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줄어들 것이라는 반응은 5.7%에 불과했다. 학계와 AI업계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국회 미래연구원 여영준 박사는 “임시·일용직 등 불안정한 고용계층일수록 반복적 업무를 수행하는데, 코로나19의 영향이 이들 계층에 직접적으로 충격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로봇을 가진 자본가의 이윤이 급증하고 노동자의 소득은 감소하는 소득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라면서 “기술에서 동떨어진 사람들의 불평등 문제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확인이 됐고, 그것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경일 대표도 “소득 격차가 커질수록 하위 10%의 불행감과 박탈감은 더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으로서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응답자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의식한 듯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에 대해 77.2%가 매우 또는 대체로 동의한다고 답했다. 정부의 취업정책에 대해서도 “일자리 유연성을 키우고, 대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응답(81.4%)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법무법인 케이앤파트너스 전별 변호사(노동법 박사)는 “가장 시급하게 사회안전망의 보호가 필요한 건 실업 문제”라면서 “일자리가 많이 사라지게 될 것이고, 대체하는 것들이 현실적으로 안 보이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기본소득에 앞서 선별적인 복지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현수 연구위원은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만 중간 단계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기본소득을 전 생애에 걸쳐 받지 않을 수도 있다. 특정 몇 년에 걸쳐서 받거나 특정 세대가 됐을 때, 중장년층이 되었을 때 받고 노후를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영준 박사는 “노동시장 진입과 역량 축적, 평생 학습을 뒷받침하는 (사회안전망) 설계가 이뤄진다면 디지털 전환에 따른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건 사회보장시스템 강화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그 공감대가 형성됐으니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우리에게 놓인 과제”라고 했다.

 

◆“AI는 거부할 수 없는 ‘변화의 물결’… 노동의 개념 자체가 지금과 달라져”

 

학계와 인공지능(AI) 공학 전문가들은 “기술의 발전과 도입을 막을 수는 없는 만큼 AI를 거부하거나 막연한 두려움을 가져선 안 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대신 “미래를 앞두고 지금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 기업 솔트룩스의 이경일 대표는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바둑으로 누를 수 있었던 건 규격화된 바둑판 위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규칙이 일정했기 때문이다”라며 “반복적이지 않은 직업은 절대 AI가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를테면 진단과 수술은 기계가 하고 의사는 환자와 가족을 위로하고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충실히 설명해주는 업무를 더욱 집중하게 될 것”이라며 “건강·마음 상담 등을 하는 테라피스트와 같은 모습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마부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란 두려움과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영국의 자동차 산업 발전을 가로막은 점을 거론하며 AI는 거부할 수 없는 물결임을 강조했다. 그는 “AI전문가여도 사회 각 분야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AI를 개발할 수 없다”며 “이제는 기계와 사람이 협력해야 하고, 기계가 일하게 하기 위한 전문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전창록 경북경제진흥원장은 “AI에게 어떤 문제를 풀라고 시킬 것인지, AI가 어떻게 문제를 푸는지를 아는 능력에 더해 인간에 대한 공감력과 이해력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교육은 정답을 끄집어내는 방법을 가르쳐줬지만, 이제 그 정답은 컴퓨터 안에 제일 많이 있다”면서 “따라서 이제부터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도 더욱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대 이재구 교수(소프트웨어학)는 “노동의 개념 자체가 지금과 달라질 것”이라며 “AI가 도입되면 인간은 단순노동에서 해방된다. 그러면 엔터테인먼트 등 과거 놀이의 범주에 있던 활동들이 일자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됨으로써 사람의 존엄과 가치를 지킬 수 있게 될 것”이라면서 “오히려 고차원적인 일자리가 파생될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AI시대에 앞서 해야 할 일로 전문인력 양성을 꼽았다. 그는 “인공지능을 칼에 비유한다면 칼을 만드는 사람, 즉 장인이 필요하지만, 그 칼을 다루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AI 분야 장인이 필요한 건 맞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AI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AI로 잘게 쪼개진 노동… ‘좋은 일자리’ 선호 기준도 진화 중

 

#. 오전 10시 느지막하게 아침을 맞았다. 본격적인 ‘일’은 한 시간 뒤부터 시작된다. 그 사이 점심을 겸한 아침 식사는 필수다. ‘그 일’을 하려면 무엇보다 든든히 먹어둬야 한다. 오전 11시쯤 본격적인 일터로 향한다. 일터라고 해봐야 딱히 정해진 곳은 없다. 상가가 밀집한 도로가 출근 장소다. 자전거와 헬멧, 배달용 가방, 충전된 휴대전화와 여분의 충전기만 있으면 된다.

 

몇 분 뒤. 칼국수집에서 첫 ‘콜’이 왔다. 하지만 이 콜은 무시하기로 했다. ‘초짜’면 덜컥 잡겠지만, 이곳은 점주의 시간 압박이 강해 ‘기피대상 1호’로 꼽힌다. 두 번째 콜. 무난한 돈가스 배달이다. 배달해야 할 길이 낯선 곳이지만 배달 경로는 스마트폰 앱에서 인공지능(AI)이 추천해 준 길로 가면 그만이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자전거 배달이 점점 힘들다. 하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돈을 벌기에는 나쁘지 않다. 늦은 점심시간까지 4시간가량을 달려 3만원을 벌었다. 나머지 시간은 친구를 만나거나 컴퓨터 게임을 한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린 날에는 일하지 않는 때도 많다. 주말에는 가끔 친구 대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 남들이 얘기하는 ‘취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직 없다. 지금의 ‘일’에 만족한다.

 

 

20대 A의 하루를 재구성한 글이다. A가 ‘하는 일’은 배달과 편의점 알바다. 그의 일은 ‘좋은 일자리’일까? 주업과 부업이 확실치 않고, 조사기간에 따라 취업자 분류 기준도 아슬아슬하다. A는 나름 만족하며 일하고 있지만, 제도는 ‘글쎄’라고 말한다.

 

◆기술적 실업과 비정규직

 

일자리는 변화한다. 기술 발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일자리는 생겨나고 없어진다. 공식 집계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의 직업은 1만6891개다. 1969년 최초 집계(3260개)에서 5배가량 늘었다. 하지만 직업의 수와 일자리의 증가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일자리의 소멸과 생성을 예측하는 것은 ‘미지의 영역’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AI와 로봇을 앞세운 기술이 노동을 파편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잘게 쪼개진 일자리는 전통적인 방식의 고용 구조를 흔들고 있다. 과거에는 한 명의 ‘인간 노동자’가 할 일이 기술과 자본으로 세분화하고 있다. 5명의 직원을 쓰던 매장에서 키오스크와 플랫폼 배달을 통해 2명의 직원을 줄인다. 떨어져 나간 노동자 중 한 명이 하루 4시간 근무하는 플랫폼 노동자로 전환되는 구조다.

 

최근 2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시간제근로자 비중이 증가한 국가는 28개국에 달한다. 임시직 근로자 비중도 같은 기간 32개국 중 20개국에서 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규직 비율은 60%대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비정규직 제로화’를 앞세웠지만, 지난해에는 오히려 정규직 비율이 전년 대비 감소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율은 63.6%이며, 특수형태근로자 수는 집계 가능한 숫자만 52만명을 넘어섰다.

 

반가운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주장이 모든 사람을 정규직으로 만들자는 얘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 새로운 형태의 고용이 끊임없이 나타나는데 기존의 정규직, 비정규직 틀로 들이대면 빈 곳이 너무 많아진다”고 말했다.

 

◆전환의 시대… 좋은 일자리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는 정규직, 좋은 일자리, 노동조합과 같은 전통적인 노동 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플랫폼 노동자가 대표적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대의 변화 못지않게, 노동자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도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정규직은 법적 용어가 아니다. 비정규직을 규정하면서 상대 용어로 사용될 뿐이다. 관련 법에 존재하는 정규직에 가장 가까운 표현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다.

 

황세원 LAB2050 연구위원이 최근 펴낸 ‘정규직이란 무엇인가’ 보고서에 따르면 좋은 일자리에 대한 인식은 세대별로 차이를 드러냈다. 좋은 일자리란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3순위까지 선택하라는 질문에 20대의 경우에는 1위가 ‘연차 및 휴일 보장, 정시 퇴근 등으로 직장 밖 개인 시간이 보장되는지 여부’를 꼽았다. 1순위만 선택할 경우 ‘고용 안정성’을 꼽았지만, 선택의 폭을 넓히면 ‘워라밸’(일과 여가생활의 균형)을 더욱 선호한다는 의미다.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에 대한 세대별 인식 차이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투잡·N잡 등으로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긍정 비율은 전 연령대 기준 70.2%였다. 연령별로는 20대의 긍정 비율은 75.8%, 60대는 59.5%로 16%포인트가량 차이를 보였다. ‘하루에 4∼5시간 동안만 일하는 것’에 대한 긍정 비율도 20대와 60대가 각각 86.5%, 56.1%로 큰 차이를 드러냈다. ‘주 3일 또는 4일만 일하는 것’에 대한 긍정은 20대가 83.4%로 60대(48.4%)의 두 배에 달했다.

 

◆결국 사회안전망으로

 

다시 A의 생활로 돌아가 보자. A는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정규직 노동자를 원하지 않는다. 하루 4∼5시간 정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하고 싶다. 다만, 현재의 만족한 삶이 지속 가능할지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 뿐이다.

 

A를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스스로 원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고용안정성과 차별 철폐다. 고용 안정성은 대표적으로 고용보험의 틀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골자로 한 ‘문재인케어’의 등장도 이 같은 흐름이다.

 

황세원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좋은 일자리의 기준으로 고용안정성과 임금 수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질문 방법에 따라 짧은 노동시간과 개인 시간 보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며 “차별이라는 문제만 없다면 더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들이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AI와 로봇에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내줄 수밖에 없는 인간은 결국 다른 형태의 노동을 찾아야 한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 백서’에서 미래 노동자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시원한 바닷가에 편안히 앉아 노트북을 무릎에 놓고 일하는 창의적 지식 노동자, 또는 컴퓨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원하는 작업 스케줄을 짜는 생산직 노동자 등이 현재 우리의 이상향이다.”

 

◆“인공지능을 알아야 미래 있다”… 취업문 뚫는 청춘들

 

극심한 취업난 탓에 청년들 사이에서 ‘취업 뽀개기’(취뽀·취업의 관문을 깨부순다는 뜻)라는 말은 고유명사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이 같은 일자리 가뭄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앞당겨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간이 수행하던 노동 상당 부분을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술 진보의 흐름 속에서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청년들도 있다. 이들은 그동안 배운 학문과 전공을 뛰어넘어 AI 기술 연구 분야로 진로를 수정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일자리를 쟁취하기 위한 도전이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26일과 27일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요청에 따라 화상회의 및 전화 통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장밋빛 미래를 확신하지는 않았지만, 장차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김모(25·여)씨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대학원에서 AI를 연구 중이다. 문과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원하는 일을 하는 데 부족하다고 느껴서다. 김씨는 대학 1학년 때 배웠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파이썬’에 흥미를 느껴 AI 전공을 선택했다. 그는 “문과에서는 토론과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면서 “AI 분야에서는 가시적으로 무언가 만들어진다는 게 더 재밌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유모(24)씨도 비슷한 이유로 AI 대학원을 택했다. 그는 “AI가 많은 분야를 대체할 텐데 내가 AI 분야에 있지 않으면 능력적으로 도태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인공지능 분야로 나가서 공부하는 건 한정적이기 때문에 나중에 트렌드에 맞춰 공부해야 한다”면서도 “나의 일자리는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충북 청주에 사는 조재용(24)씨는 현재 대학 졸업반으로, 반도체 분야 전문가를 꿈꾼다. 조씨는 “4차 산업혁명과 AI에서 반도체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라면서 “반도체를 알면 어디든 채용될 수 있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이제 직업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는 한 직장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라 경력을 쌓아 이직을 하기도 쉬울 것이다. 자신만의 경력을 가져야 비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청년들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얼마나 대체할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경기 남양주에 사는 AI 대학원생 김대희(26)씨는 “인공지능을 공부하며 앞으로 10년, 20년 이내에 사라질 직업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면 대학원 진학 예정인 대학생 이혜진(22·여)씨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업무를 100% 다할 수는 없다”며 “그걸 사람이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직업은 계속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4회 소득은 어떻게 달라질까

 

◆‘할 일 없는 세상’ 현실로… 기본소득 도입 논의 수면 위로

 

#. 매달 30만원(50만원, 100만원이 될 수도 있다)이 통장에 들어온다. 무슨 일을 하든, 나이가 몇 살이든, 얼마를 벌든 상관없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받을 수 있다. 받은 돈으로 무엇을 해도 된다. 어디에만 써야 한다고 정해지지도 않았다. 책을 사도 되고, 밥을 먹어도 되며, 게임을 사도 된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사치품을 구입해도 아무 문제 없다. 불법만 아니라면 괜찮다. 물론 저축이나 기부를 해도 된다. 만약 가족이 4명이라면, 한 사람당 30만원씩 총 120만원을 받는다. 다시 말하지만, 1년에 한 번이 아니라 매달 지급된다. 기본소득시대의 이야기다.

 

이게 말이 되나 싶지만, 기본소득은 전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왜 지금 기본소득일까. 결국 4차 산업혁명에서 비롯된 일자리의 위기가 주된 원인이다.

 

◆일자리 전환의 시대

 

제조업의 시기, 거대 공장을 돌려야 하는 자본가들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우수한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임금을 올렸고, 이는 다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미국 포드자동차를 설립한 헨리 포드가 1914년 직원 임금을 동종업계 평균보다 2배 인상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공장 증설→고용 확대→생산성 향상→공장 확충’으로 이어지는 대확장의 시기였다.

 

현재는 어떨까. AI와 로봇으로 대변되는 기술은 사람의 일을 대체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바탕으로 출현한 기업들은 과거처럼 많은 사람이 필요 없게 됐다. 시가총액은 현대차의 두 배가 넘는 네이버가 직원 수는 20분의 1에 불과한 상황이다. 거대기업뿐만 아니다. 키오스크, 하이패스, 무인주차시스템 등이 노동자를 대신했다. 그 과정에서 생산성은 향상되지만 일자리는 줄어든다.

 

노동자가 일자리에서 밀려나면 당연히 소득은 줄어든다. 8시간 일하던 노동자가 자동화 여파로 ‘쪼개기 노동’을 하게 되면 수입도 쪼개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에게 지급되던 이윤은 이제는 자본가에게 귀속되는 구조다. 전창록 경북경제진흥원장은 “거대 플랫폼 기업은 전 세계 자원을 끌어다 쓰다 보니, 초연결성 시대 융합과 공유로 인해 부의 축적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불평등의 심화

 

기술 발전은 ‘부의 불평등’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소득분배지표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노동자가 벌어들이는 돈에서 세금 등을 빼고 실제 쓸 수 있는 돈으로 불평등 척도를 계산하는 지표가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이다. 이 수치가 클수록 불균등한 것으로 본다.

 

지난해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26으로 집계됐다. 2012년 5.05였던 5분위 배율은 2013년 4.61, 2014년 4.54, 2015년 4.37, 2016년 4.63, 2017년 4.61을 기록하다 2018년 5.47로 급등한 뒤 2년째 높은 지수를 기록 중이다.

 

이 같은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세계 주요 국가의 상위 10% 소득이 전체 소득의 4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국가별로는 미국(46.8%), 러시아(45.5%)에 이어 우리나라(43.3%)가 세 번째로 높다.

 

여영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ICT가 침투하면 로봇이나 그걸 가진 자본가의 이윤은 급증하고 노동자의 소득은 감소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소득불평등이 심화하는데, 현재의 경제체제로는 불평등을 강화하는 추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복지의 재편, 기본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각국은 다양한 복지정책을 운용 중이다. 우리나라도 기초연금, 노인연금, 실업급여 등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기술 발전에서 촉발된 사회 변화와 경제구조 개편을 포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기존의 복지의 틀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상황을 넘어서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재분배 효과 △행정비용 절감 △민간소비 촉진 △미래 노동력 확보 등을 도입 근거로 삼고 있다. 자동화와 로봇의 확대로 노동(고용)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생계수단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다국적기업의 수장들도 적극 지지하고 있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본소득과 같은, 모든 이에게 ‘쿠션’ 역할을 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역시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권도 기본소득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깜짝 놀랄 카드’로 기본소득제를 들고 나왔다. 코로나19 이후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이다.

 

◆왜 모두에게 줘야 하나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주는 현금’이라는 기본소득의 핵심은 반대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기본소득을 저소득층에게만 지급하지 않고 부자에게까지 줘야 하느냐는 비판이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게 30만원을 주는 게 무슨 효과가 있냐”는 말이다. 이 같은 질문은 무상급식 때도 똑같이 나타났다. 대상 선별과정에서 나타나는 행정비용과 선별적 복지의 부작용 등을 이유로 들지만, 반대 측 입장도 여전히 팽팽하다.

 

무엇보다 큰 쟁점은 재원이다. 전 국민에게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주려면 매년 187조원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 같은 재원을 마련하는 게 사실상 가능하냐는 지적이다. 이는 올해 우리나라의 총예산 513조원의 3분의 1에 달하는 액수다. 지급 규모를 65만원으로 올릴 경우 최대 405조원이 들어간다.

 

이에 대해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기존 복지체계 개편과 세출 구조조정, 세금체계 조정 등을 통해 충당 가능한 액수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소비 촉진 효과가 더해져 경기의 선순환을 일으킬 것이란 전망이다. 또 기본소득제는 소득 구분 없이 지급하기 때문에 생계급여 대상자의 구직 동기도 북돋을 수 있다고 반론한다.

 

이선화 국회미래연구원 위원은 “코로나19 이후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도 대상 선정을 놓고 많은 논의가 있었다. 과거 시스템으로 새로운 문제들에 대응하려니 나타나는 부작용”이라며 “지금 우리가 과거에 비해 사회보호시스템이 강화되기는 했지만, 전 국민적 위기상황이 닥칠 때는 안전망이 촘촘하지 못한 부분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캐나다 지급 실험… 명암 드러내

 

기본소득제는 국가에 득일까, 독일까. 이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한 시험은 전 세계적으로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에 첫걸음을 떼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됐다가 실패할 경우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재정 파탄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제와 관련해 빠지지 않는 것은 2016년 스위스 사례다. 스위스는 전 국민에게 조건 없이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2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관련 법안은 국민투표에 부쳐졌고, 투표 결과 77%가 기본소득안에 반대해 부결됐다. 부결된 원인은 법안이 지나치게 불확실했다는 점 등이 꼽힌다. 지금 규모의 책정 방식, 재원 마련 방안 등이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아 반대 여론이 높았다는 평가다.

 

핀란드도 2017∼2018년 기본소득제를 실험했다. 실업급여 대상자 가운데 20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매달 560유로(약 76만원)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시행됐다. 평가는 갈린다. 핀란드 정부는 “참가자의 행복도는 높아졌지만, 실업자의 근로 의욕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며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종료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저소득층 4000명에게 3년간 매달 1320캐나다달러(약 115만원)를 지급하는 시험을 단행했다. 2017년 시작된 이 제도는 재원 고갈 문제로 1년 만에 중단됐다. 이 외에도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등에서 주정부 단위의 시험이 도입된 바 있다.

 

알래스카 배당금은 기본소득과는 성질이 다르지만 거론되는 사례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석유 자원을 통해 이익금으로 1982년 처음으로 1000달러를 주민들에게 지급했다. 배당금 액수는 이익금에 따라 달라지는데, 지난해에는 1606달러가 배당됐다. 알래스카 사례는 석유라는 확실한 재원이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비교적 많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지급됐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실제 알래스카는 배당금을 지급하기 전 미국의 주 가운데 빈부격차가 가장 높은 편에 속했지만 최근에는 가장 격차가 적은 주가 됐다.

 

우리나라는 아직 기본소득제를 시험한 적이 없다. 가장 유사한 사례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지급된 재난지원금이 있다. 지자체별로 청년수당과 농민수당 등이 등장한 정도다.

 

민간연구소인 LAB2050은 최근 전 국민에 월 30만∼65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국민소득제’ 6가지 시나리오를 공개한 바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자주 인용되는 방안은 2021년부터 월 30만원 지급 시나리오다. 이 안의 총 소요 예산은 187조원이며, 기존의 복지수당(아동수당, 기초연금 등)을 하나로 통합하고 지자체 세계잉여금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충당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변하지 못한 대학… 취준생 넘치는데 기업선 “인재가 없다”

 

“사실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고등학교 때 배운 과목 중에 제일 성적이 잘 나오는 게 영어라 이쪽으로 진학한 거죠. 저는 공학적인 재능이 없어서 인문계열로 온 걸 크게 후회하지는 않지만, (기업이 원하는) 전문성이 있는 건 아니니까 막막한 기분은 들죠. 주변에는 자퇴하거나 휴학하는 경우도 있어요.”

 

대학생 송현도씨(국민대 4학년)는 언론계 취업을 준비 중이다. 언론계는 아직 입사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장벽’이 높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부터 파이썬(컴퓨터 언어의 한 종류)을 배우고 있다. 앞으로 살아가려면 컴퓨터 언어 하나쯤은 배워 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주변에는 인문계열이지만 코딩을 배워 이 분야 대학원으로 진학하려는 친구도 있다.

 

송씨는 “인공지능(AI) 기자의 등장이 결국엔 기자란 직업의 일자리를 줄일 것 같다”며 “아직 기술 수준이 낮다고는 해도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고 했다. 그는 ‘플랜 B’로 일반 사무직 취업을 준비 중이다.

 

4차 산업혁명은 사회에 ‘창의적이고 융복합적인 인재를 양성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여전히 대입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학의 연구기능은 후퇴하고 있고, 학생들은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센터의 ‘2019 학과계열별 입학정원’을 보면 인문계열 정원을 1이라고 봤을 때 공학계열은 그 두 배다. 사회계열도 두 배, 자연·의약·예체능이 인문계열과 비슷하다.

 

그런데 기업이 찾는 인재는 이 비율을 따르지 않는다. 인문계열 일자리가 1개 있을 때 공학계열은 32개, 사회계열은 8개, 자연계열 4개, 예체능계열 3개, 교육과 의약계열이 2개씩 올라온다. 세계일보가 3일 일자리포털 워크넷에 올라온 7만4972개의 채용공고를 선호 계열별로 나눈 결과다.

 

◆부작용만 남긴 학과구조조정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단순히 생각하면, 대학이 너무 많은 인문계열 전공자를 배출하고 있거나, 공학계열 인재를 너무 적게 배출하는 것 같다. 어쩌면 만성화한 청년실업은 대학 학과만 손봐도 상당 부분 해결될지 모른다.

 

정부가 2018년까지 진행한 이른바 ‘대학 구조조정’은 이런 가정에서 출발했다. 2015년 교육부는 ‘교육개혁 촉진을 위한 대학 규제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했다. 이때 등장한 게 ‘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프라임) 사업’과 ‘대학 인문역량 강화(코어) 사업’이다.

 

프라임 사업은 대학이 미래사회 수요를 반영해 ‘전공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으면, 정부가 재정지원을 해주는 사업이다. 3년간 6000억원을 쏟아부어 ‘단군 이래 최대 대학 사업’이라 불렸다. 대학이 이 과실을 따먹기 위해선 취업률 낮은 학과를 통폐합해 정원을 줄여야 했다. 코어 사업도 기업이 원하는 실용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구조로 인문학과를 개편하는 대학에 정부가 최대 40억원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결과적으로 구조조정은 실패했다. 대학가는 “자본과 시장논리에 대학을 예속시킨다”고 비판했고, 사업에 선정된 대학에서도 단기간에 학과를 통폐합하느라 해당 학과 교수는 물론 학생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결국 지난해 프라임과 코어, 대학자율역량강화(ACE+) 사업 등 5개 사업이 ‘대학혁신 지원사업’으로 통합됐고, 선정기준도 대학 자체 발전계획에 부합하는 사업을 지원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은 오랜 기간 사회·경제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너도나도 대학을 갔고, 이 과정에서 기자재 없이도 인원을 늘릴 수 있는 인문계를 중심으로 정원이 늘어났다”며 “하지만 지금은 학령인구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에 (무리한 정부주도의 구조조정보다는) 질적 미스매치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1대 2’(인문:공학 대학정원)와 ‘1대 32’(인문:공학 채용공고)의 차이가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숫자의 문제는 아니라는 의미다.

 

◆10년 전에 멈춘 대학

 

“대졸자에게 기대하는 건 별로 없어요. 공대를 나왔다 하더라도 그들 머릿속에 있는 건 과목별로 조각난 지식이잖아요. 체계가 잡힌 큰 기업이야 몇 개월씩 신입사원 교육시킬 여력이 있겠지만, 저희 같은 시스템통합(SI) 업종에서 이런 곳은 20%도 안 될 겁니다. SI업체는 하루하루 고객사에 나가서 일하는 게 매출이니까, 어쩔 땐 사원을 뽑아도 (부서에서) 서로 안 받으려고 할 때도 있어요. 차라리 취업자 과정을 밟은 고졸사원이 더 나아요.”

 

기업 정보기술(IT) 관련 컨설팅을 하는 A사 김형진(가명) 대표는 “IT 인력난의 핵심은 ‘괜찮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며 “요즘 대졸 신입사원을 뽑겠다는 곳은 별로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1대 2’와 ‘1대 32’가 단지 숫자의 문제라면 귀한 공대생을 너도나도 모셔갈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지난 10여년간 대학의 질적 혁신이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여영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펴낸 ‘혁신성장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개혁 의제 연구’에서 우리나라 교육재정은 초중등(초등∼고등학교)과 고등(대학) 부문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배분되고 있다고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학생 1인당 초중등 총교육비 대비 고등교육 총교육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대학에 들어가는 예산은 초중고 예산의 71%에 불과하다. 대부분 대학에 집중되는 각종 연구개발(R&D) 예산을 포함해도 89% 정도다. 33개 OECD 국가 중 꼴찌 기록이다. 만일 20조원에 달하는 한국의 초중고 사교육 시장까지 통계에 반영하면 대학 교육비의 비중은 더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김영철 서강대 교수는 ‘고등교육의 재정 위기’에서 “대학등록금이 2009년 정치권에서 공약한 ‘반값등록금’에 묶여 제자리인 현실에서 정부의 재정투입이 늘지 않아 교육경쟁력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2010년대 초 40위 안팎이었던 국제경영개발원(IMD) ‘대학교육지표(경쟁사회 요구 부합 정도)’ 순위는 지난해 55위로 떨어졌다.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도 ‘고등교육 및 훈련’ 순위가 2011년 17위에서 2017년 25위로 내려앉았다. 그 이후 WEF의 평가지표가 바뀌어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지난해 발간된 자료에서 ‘대졸자 기술역량’은 34위에 머물렀다. 지난 10년간 반값등록금과 정부의 빈약한 재정투자, 일방통행식 대학구조조정이 이어지면서 대학이 질적 도약을 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최경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융복합을 강조하는 4차산업에 걸맞게 학과 칸막이를 없애는 등 과감한 혁신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4차산업 시대 정부 재교육프로그램 “실효성? 글쎄”

 

파일럿 A씨는 요즘 소속 항공사 여객기의 조종간 대신 드론 리모컨 다루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여행객이 끊기자 회사 측이 필수인력을 뺀 나머지에 6개월간 유급휴직을 쓰도록 했기 때문이다. 파일럿은 항공업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고숙련 핵심 인력이지만, 전염병 확산 국면에서는 필요 최소 인력에는 들지 못했다. 뜻하지 않게 ‘한시적 실업자’가 된 A씨는 고용노동부가 시행하는 직업훈련 프로그램 중 ‘드론 과정’이 있는 것을 보고 수강 신청했다. 그나마 하던 일과 제일 비슷해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수강료는 고용노동부에서 발급해 준 ‘내일배움카드’로 지불했다. 이 카드의 한도는 300만원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이 특별고용지원 업종으로 분류된 덕에 함께 휴직한 동료들도 이 카드를 지원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개설된 강의 목록을 본 A씨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요리나 목공 등 분야가 있었지만 모두 자신의 적성과 무관한 것들뿐이었다. 드론 과정을 마지못해 신청했다. 그는 “솔직히 내 직업도 없어질 수 있다고 본다”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재취업을 위한 교육을 찾아봤지만 할 만한 게 없었다”고 말했다.

 

마지못해 듣는 강의에 수강료 일부는 사비를 털어서 냈다. 취업률이 40% 미만인 드론 분야 과정을 들으려면 수강료의 20%는 본인이 부담해야만 했다는 게 A씨 설명이다. 그는 “(파일럿 교육은) 사설업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기대효과가 크지 않은 교육에 정부 재정과 개인 돈이 이중으로 들어가는 격이다.

 

3일 고용노동부 직업훈련포털에 따르면 플로리스트, 한식조리사 등 과목이 실업자·재직자 등을 위한 교육훈련 과정으로 개설돼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평생교육으로는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창록 경북경제진흥원장은 “정부 또는 지자체 차원에서 인공지능(AI) 시대에 걸맞은 근로자 재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AI에게 무엇을 시킬 수 있는지를 이해하고, 빅데이터에서 의미 있는 것을 추출할 수 있는 데이터 문해력 등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현수 연구위원은 “(파일럿 같은) 고숙련 전문직이 교육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남을 가르쳐 주는 것도 교육”이라고 했다. 그는 “고숙련자들이 업무에서 일시 배제됐을 때 중학교 자유학기제 등과 상시로 연계해 학생들을 교육하고, 추후 본업에 복귀하는 체계가 정착되면 전문성도 살리고 학생들 입장에선 서울과 지방 간 교육기회 격차도 해소될 것”이라고 했다.

 

5회 우리에게 일이란 <끝>

 

◆‘4대 보험·정년 보장’ 기존 틀 밖으로… ‘자유노동’ 껴안다

 

‘4대 보험과 정년을 보장받는 안정적인 일자리.’ 지금까지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일자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더는 이런 틀에 노동을 가둬둘 수 없다고 말한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의 진화는 인간을 새로운 노동의 형태로 밀어내고 있다. 또 전통적인 고용 계약구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자발적으로 혹은 비자발적으로 회사 밖 ‘자유노동자’가 된 사람들로부터 ‘행복한 노동 4.0’을 위한 과제를 들어봤다.

 

■유성우 PDF 출판 작가

 

5년 전까지 그는 9000개가 넘는 숱한 인터넷 언론사 기자 중 한 명이었다. 어느 날 서비스 거래 마켓에 올린 PDF 책이 ‘대박’을 쳤고, 자연스레 퇴사로 이어졌다. ‘PDF 출판 스타’로 통하는 유성우(필명·35) 작가는 그렇게 정규직 사원에서 프리랜서가 됐다.

 

“철저한 계획을 갖고 프리랜서가 된 건 아니에요. 정보기술(IT) 계열 잡지사에 다녔는데, 여기서 네이버 포스트를 운영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쪽 시장에서는 이렇게 해야 먹히는구나’ 이런 걸 알게 됐죠. 그래서 제 나름대로 노하우를 PDF 10장으로 정리해 크몽에다 3만원에 올렸어요. 그런데 잘 팔리는 거예요. 나중에 60페이지를 더 써서 7만원에 팔았죠.”

 

월급의 2∼3배에 달하는 금액이 들어오자 자신감이 붙었다. PDF 출판에 집중하고 싶어 사직서를 냈다. PDF 출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 그의 주수입원은 온오프라인 강의다. PDF 출판이 그랬듯 이 역시 강의에 특화된 플랫폼(탈잉, 클래스101)을 이용한다.

 

PDF 책을 보고 연락 오는 기업의 마케팅 업무도 한다. 업체의 포스트를 관리해주는 일이다. 처음에는 최씨가 도맡아 했지만 지금은 주제만 잡고, 실제 내용을 작성해 사진을 찾아 올리는 일은 또 다른 프리랜서 2∼3명이 한다. 외주화하는 게 더 비용절감이 될 만큼 그의 ‘몸값’이 올랐단 의미다. 동업자들은 아르바이트 포털에서 구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아는 거라곤 계좌번호와 이름뿐, 얼굴도 모른다. 이런 방식으로 직장다닐 때보다 월 300만∼400만원은 더 번다. 지난 2월에는 강의가 또 한 번 히트를 쳐서 2500만원을 벌었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불안하다’고 했다. 생존을 위해 꾸준히 ‘다음 먹거리’를 찾아야 하고, 노후 준비는 시작도 못했다.

 

“요즘 같은 때 프리랜서는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일거리가 완전히 끊길 수도 있어요. 코로나19 같은 이슈가 아니어도 늘 불안하죠. 노후 준비도 못했어요. 노란우산(소상공인 퇴직금 제도)에 들어야 되는데, 학자금대출 같은 빚을 얼마 전에야 다 갚아서 이제부터 시작하려고요.”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 제안이 들어온다면 어떨까. “저는 자유롭게 자기주도적으로 일하는 게 맞아서 다시 정규직 일자리로 돌아가진 않을 것 같아요. 대학 때 읽은 책에서 ‘미래에는 큰 기업과 브랜딩이 강한 개인만 남는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다 회사 것이더라고요. 프리랜서를 하고 싶다면 나만의 포트폴리오가 있는가 생각해봐야 해요.” 파편화된 노동 시장에서 믿을 건 자기 자신뿐이더란 얘기다.

 

■최광 컴포스타 대표

 

최광(41) 컴포스타 대표의 출근길은 요일별로 달라진다. 월요일에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동대문 B2B 플랫폼 업체로, 화요일에는 격주로 강남구에 있는 명품 커머스 기업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솔루션 기업으로 향한다. 수요일에는 강남의 핀테크 스타트업으로,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강남 삼성역에 있는 공유오피스로 출근한다.

 

지난해 6월 그는 직장 생활을 접고 1인 홍보회사를 차렸다. 그의 고객인 스타트업에 요일별로 찾아가 취재하고 홍보 보도자료를 쓰는 게 주업무다.

 

“큰 기업은 내부에 홍보팀을 따로 두잖아요? 규모가 좀 더 작거나 외국계인 경우는 대행사를 쓰고요. 그런데 스타트업 중에는 대행사 쓰기도 부담스러운 곳이 많아요. 그래서 회사 다닐 때 친하게 지낸 스타트업 대표에게 ‘나를 쪼개서 쓰라’라고 했어요. 스타트업들이 저를 요일별로 나눠서 쓰면 부담이 없지 않을까 싶어 제안한 건데 세 곳에서 좋다는 반응이 나와 이 일을 시작하게 됐죠.”

 

독특한 방식으로 ‘틈새시장’을 연 것이다. 직장인이었을 때의 이력도 평범하지 않다. 그가 몸담았던 회사를 읊어보면 경제신문사 두 군데를 거쳐 소셜네트워크회사, 게임회사, 인터넷 매체, 비영리기관, 또다시 경제신문사와 회계법인 등 8곳에 이른다. 잦은 이직은 경력에 마이너스가 아닐까.

 

“기업도, 사람도 ‘이 직장에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개념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작은 기업일수록 더 그렇고요. 요즘엔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고 완성시켜줄 사람’을 찾아요. 적임자를 뽑아서 그에게 권한과 책임을 준 뒤 그 일이 끝나면 다시 헤어지고…. 점점 더 프로젝트 기반이 되고 있어요.”

 

4차 산업혁명은 스타트업이라는 ‘바퀴’로 굴러간다.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며 노동환경의 변화를 목격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정규직처럼 탄탄한 안전망에 있는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 봤다.

 

“로봇의 공격은 생각보다 더 강력할 거예요. 로봇에는 팔 달린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자동화 프로그램도 다 포함돼요. 몇 년 전부터 보험회사 등에서 RPA(로봇 프로세스 자동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이걸 도입하면 생산성이 30∼40%씩 올라간대요. 그 말은 30∼40%의 인력을 줄일 수 있단 뜻이죠.”

 

기술발전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그리고 최 대표 같은 1인 기업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회 안전망이라고 했다.

 

“생존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당장 오늘내일 먹고사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굉장히 제한적이잖아요. 발전적인 것들을 시도하려면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이 돼야 합니다.”

 

■박은선 웹툰작가

 

“인세가 한 번에 들어오는 달에는 600만∼700만원도 들어오지만, 휴재 기간에는 수입이 0원으로 떨어져요. 연봉으로 치면 한 2000만원 될 것 같네요. 지금은 지난 작품 유료 수익 말고는 정기적인 수입은 없는 상태예요. 프리랜서는 항상 이렇기 때문에 불안정해요. 주 단위 이상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하기도 부담스럽고요.”

 

웹툰작가 박은선(가명·31)씨는 프리랜서를 ‘선택’한 적이 없다. 만화를 전공했고, 전공을 살려 일하다 보니 프리랜서가 됐다.

 

“만화 쪽은 정규직이 아예 없어요. 책 작업할 때도 작가나 일러스트레이터 대부분 프리랜서잖아요. 선택권이 없었죠.”

 

웹툰작가는 초등학생 희망직업으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인기 직업이지만, 그 안에는 녹록지 않은 현실이 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끼니를 제대로 챙길 새도 없이 5∼6일 동안 쉼 없이 일해야 겨우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 연재 웹툰을 마감할 수 있다. 혹시라도 마감에 늦으면 그 주의 고료를 받지 못한다. 한 달 수입의 25%가 깎이는 셈이다.

 

“연재하면서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과로나 스트레스로 병을 얻은 작가가 많아요. 저 역시 장기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되고요. 독자들의 요구 때문에 업무량(연재 컷수)을 줄일 수 없다면, 사측(네이버·다음 웹툰 등의 플랫폼)에서 어시스턴트나 프로그램 사용비 등을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돈을 많이 버는 작가와 아닌 작가의 수입 차가 대단히 큰데 현재는 작업 프로그램, 작업도구, 홍보까지 작가에 전임하고 있죠.”

 

만화·웹툰업계에서는 고료제가 드물고, 계약 후 연재를 시작해도 한두 달 뒤 정산받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무급으로 작업을 하며 몇 달을 견뎌야 한다.

 

박 작가는 지난 2월 연재를 끝내고 수입이 완전히 끊긴 상태다. 이전 작업의 유료 수익이 들어오지만, 월 50만원이 안 된다. 매장 아르바이트도 알아봤지만,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얼마 전 들어온 외주 제안은 거절했다. 몇 년 전부터 크몽, 숨고 등 서비스 거래 마켓이 활성화하면서 일러스트 작업 단가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일이 됐다는 말이다.

 

전직도 생각해봤고, 생계유지가 가능하다면 정규직 일자리도 갖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일을 관두고 싶지는 않고 그러자면 결국 불안정한 프리랜서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건강보험료 내는 것도 부담돼요. 하지만 세금을 더 내도 좋으니 고용보험 같은 울타리가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버티는 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드네요.”

 

■송종현 배달원

 

수원 권선구에 사는 송종현(46)씨는 12년간 다니던 택시회사를 그만두고 지난달부터 음식 배달을 시작했다.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10년을 고생하다 팔을 다쳐 힘을 못 쓰게 되면서 잡았던 운전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손님이 뚝 끊긴 데다 기존 사납금제가 기사들한테 부담을 더 지우는 쪽으로 개정될 것이란 소식에 사표를 던졌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학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땅히 할 일이 없는 거예요. 택시로는 생활이 안 될 것 같고. 그래서 그만뒀어요. 막상 관두고 보니 취직할 만한 데가 없더라고요. 오토바이는 탈 줄 알고 ‘건당 먹는다’고 하니까 시작한 거죠.”

 

그렇게 30년 만에 오토바이를 몰게 됐다. 이 일로 한 달에 약 250만원 정도 번다. 택시로 벌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송씨는 택시회사에 남아 있었다면 소득이 줄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회사에) 돈을 갖다 줘야 한다는 부담이 없잖아요. 그건 좋더라고요. 내가 하는 대로 내 수입이 되니까. 코로나19 여파인지 몰라도 콜도 꾸준히 뜨고 하니까. 택시 운전할 때는 손님들이 100원, 200원 더 나왔다고 왜 돌아가느냐 하는 소리 듣는 것도 엄청 스트레스거든요. 이건 그런 것도 없고.”

 

송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 12시간을 일한다. 매일 30건 정도 배달을 나간다. 배달비는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건당 3500원인데, 등록한 배달대행업체에서 수수료 550원을 떼가면 나머지는 송씨 몫이 된다. 자신 명의로 적립된 돈은 언제든지 인출할 수 있다. 매월 정해진 월급날 자체가 없다.

 

송씨 입장에선 월급날이 없다는 게 편할 수도 있지만, 많은 것을 잃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어딘가 고용된 게 아니어서 현행법상 노동자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 4대 보험 가입도 제한된다. 장비도 사비로 마련해야 한다. 설령 다쳐서 일을 그만두더라도 실업급여 신청하는 것조차 버겁다. 플랫폼 노동자의 비애다.

 

“(4대 보험 안 되는 게)아쉽죠. 그래도 택시를 계속해서는 먹고살 수가 없었어요. 4대 보험은 나중의 일이고, 당장 살아야 하니까요.”

 

송씨는 배달대행업체 사무실에 ‘등록’만 돼 있을 뿐이다. 현재 어디에도 소속돼 있지 않다. 그에게 재직증명서를 떼 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얼마 전 좌회전을 하다 중심을 잃고 쓰러져 양팔을 다쳤지만, ‘가벼운 부상’이라며 산업재해보상도 신청하지 않았다. 그나마 산재는 그에게 보장된 몇 안 되는 사회안전망이긴 하지만, 그보다 하루라도 더 일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 상황이라도 더 오래 하고 싶어요. 정년퇴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원동기) 면허가 취소되기 전까지는 하는 거죠.”

 

◆“취미도 ‘일’이 되는 시대… 고용보험 등 복지체계 바꿔야”

 

200년 전 영국의 일부 노동자들은 산업혁명이 초래할 실업의 위험을 우려해 기계를 파괴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은 기우였다. 산업혁명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냈고, 노동자의 임금은 함께 올라갔다.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받는 시대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는 다시 실업의 위험을 걱정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 걱정은 기우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200년 전 러다이트처럼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파괴하고 다닐 순 없다. 노동과 일자리, 고용의 정의부터 달라져야 하는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엔지니어 출신으로 카이스트(KAIST)에서 미래학을 가르치며 수많은 스타트업 기업가를 길러낸 이광형 교수와 경제 관련 민간연구소를 이끌며 기본소득 등 미래의 노동을 고민하는 이원재 LAB2050 대표를 만나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달 25일과 27일 각각 진행됐으며, 편의상 질문과 답변에 부연설명을 추가하는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이광형 교수

―도대체 일자리는 얼마나 줄어들까요.

 

“많이 줄어들겠죠. 얼마나 줄어든다고 딱 집어 말할 순 없지만 지금 있는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사라질 거예요. 물론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도 있겠지만, 총량으로 보면 줄어들 것으로 보여요.”(이광형 교수)

 

“지금 생산하는 것들, 예를 들어 노트북, 책상, 안경, 식당에서 먹은 점심 등을 만들어내기 위한 활동을 노동(또는 일)으로 본다면 거기에 들어가는 노동은 크게 줄겠죠. 다만 일이 없어져도 일자리는 있을 수 있어요. 극단적으로 국가가 다 고용하면 일자리는 느는 거니까요. 결국 일자리는 사회가 결정하는 문제인 거죠.”(이원재 대표)

 

―유튜버, 플랫폼 노동 같은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생기잖아요.

 

“생겨나죠. 지금도 이미 많은 일자리가 생겨나기도 했고요. 과거에는 취미였거나 단순한 놀이였던 것들이 돈이 되는 세상이니까요. 하지만 그걸 담는 그릇인 제도가 산업혁명 시대에 만들어진 거예요. 결국 노동(일자리)으로 여기지 않은 ‘일’이 늘어나는 거죠. 제조업의 경우도 달라졌어요. 기술이 빨라지는 속도, 자동화 속도가 노동투입 비율로 보면 줄어들고 있는 거죠. 현대자동차만 해도 이 상태로 20, 30년 지나면 노동자가 거의 없는 회사가 될 수 있어요. 이미 신규채용을 본격적으로 안 한 지 10년 정도 됐을 걸요.”(이 대표)

 

실제로 현대차 직원 수는 1999년 3만7752명에서 2000년 4만9023명으로 급증했다. 직원 수 증가 폭은 2000년대 들어서며 크게 줄었다. 1999∼2000년, 1년 만에 1만2000명 가까운 직원이 늘어났지만, 이후 2019년까지 20년간 늘어난 직원 수는 2만여명 수준이다.

 

이원재 대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자동화, 일자리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사람들이 온라인, 비대면으로 가는 데 대한 심리적 저항이 있었는데 그게 무너지는 계기가 됐죠. 식당에 생기는 키오스크만 봐도 예전에는 거부감 때문에 이용 안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더 안전하다는 인식이 드니깐, 이용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의 진행속도가 더 빨라지게 될 것 같아요.”(이 교수)

 

“코로나19가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중요한 변곡점이 된 것 같아요. 기술혁신으로 인한 노동의 변화를 기존의 복지체계로 막으면서 미친 듯이 특이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거죠. 그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덜컹’ 멈춰선 거예요. 이 위기를 사회와 제도를 돌아보고 제도를 정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해요.”(이 대표)

 

‘특이점’(또는 기술적 특이점)이란 인공지능을 앞세운 기술의 진화가 모든 인류의 지성을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초인공 지능의 출현 시점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을 뛰어넘는 AI의 출현 정도로 해석된다. 구글의 엔지니어링 이사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를 통해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특이점 이후 시대에는 이론적으로 모든 영역의 일자리가 AI나 로봇으로 대체 가능하다.

 

―다시 일자리 얘기로 돌아가면, 당장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데 지켜볼 수밖에 없을까요.

 

“빨리 적응을 해야죠. 어떤 직업은 융통성 있게 근무시간도 조절하고. 지금 제도로는 미래에 적응하기 힘들어요. 특히 정규직만 보호하는 구조라 거기에 못 들어간 사람들은 더 빠르게 바깥으로 밀려나죠. 현 정부가 일자리 보호 정책을 쓰지만, 이율배반적으로 일자리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어요. 제도를 사회 흐름에 맞게 고치지 않은 결과예요.”(이 교수)

 

―일자리 감소를 기술 탓으로 돌리는 시각이 있는데요.

 

“기술이란 건 그냥 사물이죠. 그걸 활용하는 게 인간이고요. 우리 사회에는 효율성과 인간성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있는데, 효율성 관점에선 4차 산업혁명 쪽으로 빠르게 가야 하고, 인간성 관점에선 다 같이 복지를 하고 일자리를 창출해야죠. 하지만 이 둘이 정적인 게 아니에요. 기술이 발전하면 제도도 변해야 하고, 제도가 변하면 거기에 맞춰 기술도 변해야 합니다. 두 축이 적절히 보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산업 발전뿐 아니라 인간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변해야 할 때죠.”(이 교수)

 

―노동의 개념도 달라져야 하지 않나요.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난 일자리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죠. 유튜버도 과거에는 취미로 하는 개인방송이었고, 게임도 이제는 직업이 됐으니까요. 앞으로 이런 변화가 더 빠르게 일어날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도 특수고용노동자들을 고용보험의 틀 안에 넣으려고 하지만,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때마다 계속 추가하고, 개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결국 그 틀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능력이 없는 사람, 불행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구조예요. 전체 복지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죠.(이 대표)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소득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요.

 

“과거에는 부가가치의 분배가 일자리였는데,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갈수록 그럴 수 없는 구조가 됐어요. 그래서 선분배의 개념이 나왔다고 봐요. 일하고 안 하고, 돈을 잘 벌고 못 벌고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상태의 출발점을 올리자는 거죠.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상태(분배)가 주어진 상황에서 시작하면 전체적으로 격차는 줄고, 그만큼 생활 수준도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이 대표)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노동자를 위해 사회가 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해야 할 필요성은 분명해요. 하지만 전 국민에게 현금을 주는 기본소득보다는 고용보험을 확대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안전망이라는 게 범위와 수준, 두 가지로 볼 수 있어요. 이게 풍선과 비슷해서 수준을 높이면 범위가 좁아지고, 범위를 넓히면 수준이 낮아져요.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면, 기존의 사회적 안전망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죠.”(이 교수)

 

●이광형 교수는…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했다. 리옹제1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카이스트 전산학 교수로 교편을 잡았다.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교학부총장을 역임하며 넥슨 김정주 창업자 등 스타트업 창업가의 멘토 역할을 했다. 국내 최초로 미래학을 제도권 학문으로 자리매김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는 카이스트 초빙석좌교수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원재 대표는…

 

연세대학교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에서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했다. 국내 언론사를 거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이후 희망제작소 소장과 여시재 기획이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민간 경제연구소인 LAB2050 대표를 맡아 노동의 미래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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