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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고려나전은 없을까… 일본 고미술시장을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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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7-20 11:52:04 수정 : 2020-07-21 09: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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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환수돼 지난 2일 공개된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 고려나전은 파편으로 전하는 것까지 해도 전 세계에 22점 만이 전할 정도로 희귀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1. 일본에서 환수돼 지난 2일 공개된 ‘나전국화넝쿨무늬합’(나전합)이 유독 주목을 받은 건 고려나전의 독보적인 희귀성에서 비롯된 바 크다. 고려나전은 파편으로만 전하는 것을 포함해도 전 세계에 22점밖에 없다. 종주국인 우리나라에는 환수된 것까지 포함해 3점만이 전한다. 

 

#2. 국외소재문화재재단(재단)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19만3136점. 그러나 시점을 달리하면 숫자가 크게 바뀐다. 2008년을 기준으로 하면 7만6143점이다. 10여 년 사이에 12만점에 가까운 문화재가 유출되어서가 아니다. 실태 조사가 진전되면서 알려지지 않았던 문화재가 확인된 결과다. 앞으로도 국외소재문화재의 숫자는 늘어날 것이고, 국외소재문화재가 가장 많은 일본이 주목된다. 지난 4월 기준 8만1889점(42.40%)으로 파악되고,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30만점은 될 것이라고 추산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 두 가지의 사실을 합쳐서 떠올릴 수 있는 희망 섞인 상상.

 

‘지금까지 몰랐던 좋은 상태의 고려나전이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고, 나온다면 일본이 될 것이다.”

 

최응천 재단 이사장의 말이다. 우리 문화재가 가장 많으며, 나전합처럼 가치 또한 각별한 것이 다수인 일본의 고미술품 시장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국립 중앙박물관(중박)에 근무하던 2006년, 특별전을 통해 나전합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최 이사장과 환수 실무를 담당했던 재단 김동현 부장이 들려준 나전합 환수 과정의 뒷이야기에서 일본 시장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그들만의 리그’, 일본 시장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유물 관련 정보의 흐름, 거래 등이 아주 제한적인 범위에서 이뤄진다. 리그에 속한 이들의 높은 자긍심이자 외부에 대한 강한 폐쇄성을 의미한다. 여느 고미술 시장이나 비슷한 성격이 있지만 일본 시장은 유별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위주의 경성미술구락부를 운영했고, 당시 최고의 한국인 컬렉터인 간송 전형필도 일본인 대리인을 내세워서야 경매에 참여할 수 있었던 100여 년 전의 관습을 크게 바꾸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높은 진입장벽을 뚫어야 일본 소재 우리 문화재의 실태 파악, 환수 등에 뚜렷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나전합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9년 12월 일본에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최응천 이사장(오른쪽)과 김동현 부장이 매매계약서를 쓰기에 앞서 나전합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최 이사장이 나전합의 존재를 안 것은 특별전 준비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던 2005년이다. 고려나전 소장처에서 유물조사를 하던 중 친분이 있던 당시 도쿄국립박물관 부관장을 통해 정보를 얻었다. 일본 내에서도 몇몇 전문가들만 알고 있던 나전합을 실제로 보고, 전시회에 출품된 적이 없던 것을 한국으로 가져와 일반에 공개할 수 있게 소장자를 설득할 수 있었던 것도 도쿄국립박물관이란 지렛대가 있어 가능했다. 

 

환수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김 부장이 관련 정보를 처음 입수한 것은 2018년 12월.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나전합과 비슷한 걸 갖고 있는 사람을 봤다”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다. 소장자와의 만남은 다음해 6월에야 성사됐다. 재단 측과 만남 자체가 팔 수 있다는 의사 표시일 수 있으나 이후에도 신중하게 접근했다. 김 부장은  “나전합과 관련된 지식, 소장자의 안목에 대한 칭찬 등 ‘점잖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유물에 대해 잘 모르거나, 어설프게 접근하면 얕잡아 보고 대화가 안 통하기 때문에 우리도 공부를 많이해야 했다”고 교섭 과정을 설명했다. 한국에 가면 국립기관에서 소중하게 보관, 활용될 것이라는 점도 알렸다. 소장자만큼이나 가치를 인정하고, 소중하게 간직할 곳은 한국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가격은 거래의 관건이겠으나 섣불리 꺼냈다간 소장자의 자긍심을 건드릴 수 있어 직접적인 의견 교환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돈이 있다고 유물을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며 ‘판매자’인 일본인 소장자들에게 거래해도 괜찮은 ‘소비자’라는 신뢰를 주고, 선택을 받아야 하는 구조인 셈이다. 최 이사장은 “몇 대를 이어가며 유물을 모으고, 거래하는 그들의 소장품에 대한 자부심은 어마어마하다”며 “팔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시를 위해) 빌려 달라는 요청도 쉽게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첫 만남 후 3개월이 지난 2019년 9월 재단 관계자들이 나전합을 실견했다. 이즈음 판매 의사를 거의 굳혔다고 판단한 재단 관계자들은 소장자를 거의 매일 찾아가며 공들였다.

다시 3개월이 지난 12월, 계약서가 작성돼 나전합의 귀향이 결정됐다. 최 이사장은 “자식처럼 귀하게 여기던 것이니 아쉬움이 없지 않았겠으나 종주국인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국립기관에서 보관하게 되어 소장자로서도 기뻤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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