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상 반영하 듯 매년 선택 달라져
장르는 220권 중 소설 73권 압도적
가장 사랑받은 작가 2명이 일본인
하루키·게이고 각각 5권 목록 올려
국내 작가 중엔 공지영·김영하 등 인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여름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의 계절’이다. 계절별 판매 통계가 그렇다. 그중에서도 휴가철인 8월엔 특히 많은 사람들이 서점을 찾고 책을 고르며 호주머니를 턴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는 동시대 사람들의 시선이 드러나는 법. 매년 돌아오는 독서의 계절, 우리 사회는 어떤 책들을 보았을까. 세계일보는 교보문고의 도움을 받아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 동안 여름철(8월)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베스트셀러 220권을 분석해봤다.
변화한 사회상을 반영하듯 독자들의 선택은 조금씩 달라졌고, 그해 분위기에 따라 ‘환골탈태’ 수준으로 물갈이되는 책 목록은 “출판계에 영원한 강자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새삼 떠올리게 했다.
◆장르는 소설, 작가는 하루키
장르는 단연 ‘소설’이었다. 220권 중 무려 73권(33.1%)이 소설이었다. 아무래도 독서에 긴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여름 휴가가 몰려있다 보니 평소 읽기 어려웠던 소설에 가장 먼저 손이 간 것으로 보인다. 이어 ‘시/에세이’가 47권(21.3%)으로 많았고, ‘자기계발’ 24권(10.9%), ‘인문’ 23권(10.4%), ‘경제/경영’ 15권(6.8%) 순이었다.
여름철 우리에게 가장 사랑받은 작가는 두 명, 공교롭게도 모두 일본인 소설가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히가시노 게이고가 각각 저서 5권씩을 목록에 올렸다.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는 2010년 ‘1Q84’(문학동네)와 2013년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로 두 번이나 1위에 오르는 등 명실공히 ‘여름의 작가’였다. 이 기간 동안 베스트셀러 1위에 두 번 이상 이름을 올린 이는 그가 유일했다.
한국 작가 중에선 공지영·김영하·김진명·이기주가,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전 정치인 유시민, KBS ‘명견만리’ 제작팀과 함께 각각 4권씩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설민석·신경숙·정유정·조정래·채사장·기시미 이치로·사이토 다카시·요나스 요나손·더글라스 케네디·데이비드 조 등 10명은 3권씩 이름을 올렸다.
단일 서적으로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현대문학)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무려 5년 동안 순위를 지켰고,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마음의숲)가 뒤를 이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목록에 올랐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 ‘두근두근 내인생’(창비) 등 두 번 이상 이름을 올린 책은 꽤나 있었는데, 그중 2010년 베스트셀러였던 ‘덕혜옹주’(다산책방)가 2016년 동명의 영화 개봉에 힘입어 다시 순위에 오른 점이 눈에 띈다.
휴가철임에도 의외로 ‘여행’이나 ‘취미·스포츠’ 서적은 1권씩밖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012년 3위에 오른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달)는 여행 서적이라기보단 사실상 에세이나 다름없고, 그나마 ‘취미·스포츠’ 분야는 같은 해 김헌의 ‘골프도 독학이 된다’(양문)가 5위에 오르며 체면치레를 했다.
◆요동치는 순위… 영원한 강자는 없었다
독자들의 선택은 의외로 가차없었고 세월을 견뎌낸 작가는 생각보다 드물었다.
2009년 베스트셀러 작가 20명 중 2019년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이는 소설가 김진명이 유일했다.(‘천년의 금서’(9위·새움)→‘직지1’(9위·쌤앤파커스)) 한때 인기 작가로 손꼽히던 한비야와 신경숙, 공지영, 이외수 등은 모두 2019년 목록에서 자취를 감췄다.
연도별 순위를 큰 틀에서 봤을 때 2010년대 중반까지 ‘소설’이 강세를 보이다가 2018년 1위, 5위를 차지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흔),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알에이치코리아) 등 ‘시/에세이’로 기류가 크게 한 번 바뀐 뒤 지난해 갑자기 ‘정치/사회’ 분야가 부상한 점이 두드러진다.
‘반일 종족주의’(미래사)처럼 정치색이 강한 서적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지난해는 또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일본인 작가가 단 한 사람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유일한 해이기도 했는데, 이는 일본과의 갈등 국면이 서점가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어린이(초등)’ 분야 서적이 지난해 처음 목록에 등장해, 2위(추리 천재 엉덩이 탐정8·미래엔아이세움), 5위(흔한남매1·미래엔아이세움), 8위(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11·아이휴먼) 등 상위권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점도 눈길을 끈다. 이런 흐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아이들과의 시간이 부쩍 늘어난 올 상반기까지 쭉 이어졌다.
◆올해는? 코로나19가 바꾼 ‘판’
올해(7월 기준)는 ‘판’이 아예 달라진 양상이다.
일단 상위 20위 안에 ‘경제/경영’ 서적이 7권으로 가장 많았고 ‘소설’과 ‘시·에세이’는 각각 그 절반도 못 미치는 3권, 2권에 불과했다. 지난 12년 동안 7월 베스트셀러 상위 5위 안에 소설과 시, 에세이가 단 한 권도 포진하지 못한 건 올해가 유일하다. 물론 8월이 되면서 순위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으나 도서 판매 특성상 큰 변동은 없을 것이란 게 출판계의 시각이다.
1위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유튜버인 김미경이 쓴 ‘김미경의 리부트’(웅진지식하우스)가 차지했다. ‘코로나 이후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논하는 내용으로, ‘자기계발’ 서적이 1위에 오른 것은 물론 8위 안에 이름을 올린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대대적인 감염증 확산 국면에서 실존의 위기를 겪은 사람들이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소설이나 시, 에세이를 마다하고 보다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말하는 책들에 눈길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출판계에선 예전부터 8월을 ‘소설 성수기’로 보고 이를 겨냥해 6∼7월 신간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면서도 “올해는 소설이나 에세이가 크게 주춤하고 주식투자 등 경제·경영 서적이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점이 예년과 구분되는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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