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자 정부는 그린벨트에 손을 댔다. 대통령까지 나서 “미래 세대를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고 계속 보전하겠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린벨트에 아파트를 짓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이 그곳이다. 정부는 중소형 아파트 1만가구를 짓겠다는 구체적인 안까지 밝혔다. 국군복지단이 관리하는 이 골프장은 1971년 그린벨트로 지정됐다.
노원구는 아파트 공화국의 수도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지역이다. 주민 22만가구 가운데 82%인 18만가구가 아파트에 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유일하게 허파 역할을 하고 있는 태릉골프장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정부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대규모 반대집회를 열지 못할 뿐이지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도 “고밀개발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며 “태릉골프장에 1만가구를 건설하는 것은 난개발과 다름없다”고 주민들과 같은 입장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당 소속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대통령께 드리는 글’에서 “노원구는 주택의 80%가 아파트이고 우리나라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아 주차난이 가중되고 있고 교통체증이 심각한데 인프라 구축 없이 또다시 1만가구의 아파트 공급은 노원구민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라고 진퇴양난의 심정을 토로했다. 특히 오 구청장은 고양 창릉 신도시는 800만㎡ 부지에 주택 3만8000가구를 건립하는 데 비해 태릉골프장은 83만㎡에 1만가구를 건설할 경우 고밀화로 인해 베드타운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콘크리트 아파트가 밀집한 노원구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녹지공간이다. 언젠가 골프장이 휴식처로 바뀔 때가 올 것이라는 작은 기대를 갖고 살아온 주민들에게 아파트 공급안은 날벼락이나 다름없다.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없다면 100년 후 똑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이 생길 것’이라며 대규모 공원 조성을 제안한 1840년대 뉴욕 한 시인의 심정을 헤아려 봐야 할 때다.
개인 골프장이 아니라서 보상비가 거의 들어가지 않고 기를 쓰고 반대할 주민이 없어 일사천리로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는 장점은 있을 수 있다. 그동안 그린벨트 해제와 훼손의 주범이 대부분 공공부문이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부의 아파트 공급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다시 한번 세심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린벨트는 도시 확장의 완충역할을 하는 동시에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 놓아야 하는 공간이며 녹색자원의 공공성을 갖는 등 순기능을 갖고 있다. 한번 훼손하면 회복은 불가능하다. 사유지인 그린벨트를 공공으로 편입하지는 못할망정 정부가, 그것도 집값을 잡겠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뭉개버리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인 결정이다. 그린벨트에 아파트를 지은 다음 또다시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고 공급 부족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서울 한복판에는 노후주택을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해 주거복지를 향상시키겠다는 주민들의 작은 소망이 공공에 의해 막혀 있는 곳이 수두룩하다. 비만 오면 집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곳의 꽉 막힌 물꼬만 터줘도 직주근접의 주거공간이 생기고 주택공급 부족현상을 줄일 수 있다. 그린벨트를 고스란히 미래세대에게 넘겨준다면 그 어떤 유산보다 더 의미 있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강남북의 균형발전 차원에서라도 태릉골프장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면 어떨까.
박연직 사회2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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