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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고분구조·왕릉같은 규모… 신라유물 쏟아질까

입력 : 2020-09-08 06:00:00 수정 : 2020-09-07 20: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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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고분 2기 발굴작업에 기대
‘120호분’ 먼저 발굴된 무덤의 두배 크기
특이하게 마사토로 봉분·고분 적석부만 12m
부장품의 독특성과 부장 유물 양에 기대감
경주 쪽샘지구의 44호분 발굴 현장. 고분 주위로 의례용 토기들의 파편이 보인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또 무엇을 내어놓을까.’

지난 3일 경주 황남동 120-2호 고분의 발굴 조사 결과를 보며 누군가는 떠올려 봤음 직한 기대다. 5∼6세기 신라의 왕족이나 최상위 귀족층의 것으로 보이는 무덤은 매장 당시 넣었던 금동관과 금귀걸이, 허리띠 등 장신구 일체를 온전히 품고 있었다. ‘역시 경주다.’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발굴설명회를 본 사람들의 감탄은 지금까지 경주에서 이뤄진 고분 발굴의 탁월한 성과를 상기하는 것인 동시에 또 다른 성과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기대를 가졌다면 120-2호분과 맞닿아 있는 120호분, 쪽샘지구의 44호분을 일단 주목해 볼 만하다.

◆더 좋은 걸 기대해 볼 만한 경주의 고분

120-2호분은 120-1호분과 함께 120호분의 봉토를 일정 부분 걷어내고 조성했다. 기존의 무덤을 건드려 그 자리에 새로운 무덤을 만들었다는 것은 세 무덤의 주인들이 아주 가까운 사이라 가능했을 것이다. 부부를 남분과 북분으로 나눠 매장한 황남대총이 비슷한 형식이다. 아내의 북분은 남편이 묻힌 남분의 가장자리를 파내고 만들었다.

120호분에 눈길이 가는 건 120-1·2호분보다 두 배 정도 크기 때문이다. 시신을 안치한 목곽 위에 돌을 얹은 적석부의 길이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12m 정도로 120-1·2호분은 5, 6m 정도다. 세 고분의 크기와 친연성을 종합하면 위상이 높은 사람이 120호분에 묻혔다는 것이고, 부장 유물의 양이나 질도 120-1·2호분보다 많고, 높은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120호분이 마사토를 사용해 봉분을 만든 유일한 사례란 점도 눈길을 끈다. 발굴을 담당하고 있는 신라문화유산연구원 김권일 선임연구원은 “사실 마사토 봉분은 부장품 성격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 보이긴 한다”면서도 “구조가 독특한 만큼 유물도 독특한 게 나오지 않을까라는 기대는 있다”고 말했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120호분 매장주체부에 대한 발굴을 내년 봄에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왕이나 왕에 준하는 위상을 가진 사람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44호분의 발굴 성과는 올해 말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고분에서는 말 탄 인물, 무용수, 사냥 모습 등으로 구성된 행렬도가 나와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토기에 새겨진 이 그림은 파편에 불과하지만 현전하는 신라 유일의 회화다.

황남대총 북분의 매장주체부 발굴 당시의 모습. 10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시신에 입혔던 금관과 허리띠 등의 화려함은 전혀 퇴색하지 않은 채였다. 문화재청 제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44호분은 적석부 규모가 19m로 금관이 출토된 서봉총(20m)과 비슷하다. 고분 외곽을 따라 둥글게 배치된 의례용의 큰 항아리들이 많이 나왔다. 비슷한 사례로 서봉총, 데이비드총, 금령총 등이 있지만 44호분이 가장 광범위하다. 무덤에서의 의례 규모가 컸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20호분, 44호분을 포함해 금관총, 천마총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경주 대형고분은 5세기 초에서 6세기 중반까지 150여년간 조성된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이다. 덩치가 크고 금제장식품 등 부장품이 화려해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석목곽묘의 발굴 성과가 어느 정도 축적된 만큼 이제 다른 형태, 시기의 고분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4세기대 목곽묘에 대한 조사는 이런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2기, 올해 1기를 조사했고, 내년에도 한두 기를 더 들여다볼 계획이다. 연구소 이종훈 소장은 “목곽묘 조사는 신라인들이 어느 시점에 경주를 사용하기 시작했는지를 밝힐 수 있는 작업”이라며 “현재는 이런 부분에 대한 발굴 성과가 별로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피장자 위상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낸 부장품

경주 고분에 대한 관심은 화려한 부장품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신라 하면 관과 귀고리, 허리띠 등 금으로 만든 유물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그래서다. 물론 금제 유물의 가치야 막대한 것이지만 이것 말고도 살았을 적 피장자의 권위 있고, 풍요로운 생활을 보여주는 다양한 물건이 함께 묻혔다.

남성 피장자를 대표하는 큰 칼과 유독 크고 긴 창은 그가 가졌던 무력의 상징이다. 재력은 여러 개의 큰 독에 가득 담아 둔 곡식과 음식, 엄청난 양의 덩이쇠로 드러냈다. 쇠솥, 주방도구, 칠기와 수많은 질그릇은 막대한 권력과 재력에서 비롯된 넉넉한 일상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농사와 대장간에 쓰는 연모는 백성들을 먹여 살릴 생산을 장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외국에서 들여온 희귀한 물품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지배층의 독점품이었을 것이다. 호우총에서는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이란 글자가 새겨진 청동합이 나왔다. 415년에 제작된 것임을 보여주는 글자로,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5만 점이 넘는 황남대총의 부장품은 “좀 과장하여 말하면, 질그릇을 제외한 모두가 고구려와의 관계 속에서 들어오거나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유리로 만든 잔, 병, 그릇 등은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에서 유입된 것이었다. 고대사회에서 유리는 금 못지않은 귀중한 재료였다. 미추왕릉, 황남대총, 금관총 등에서 유리로 만든 부장품이 나왔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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