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공정 임대료’를 언급한 이후 당정이 이른바 ‘임대료 멈춤법(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을 검토하고 있단 사실이 알려지자 시장에 혼란이 일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 침체가 이어져 궁지에 몰린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에는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공감하지만, 정부가 ‘임대료 인하’를 강제할 수 있는지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
◆임대인 “세금이나 이자는 안 깎으면서 왜 임대료만 멈추나”
‘임대료 멈춤법’은 코로나19 확산처럼 위중한 상황에서 정부가 집합금지·제한을 명령한 업종의 경우 임대료를 강제로 깎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임대인들은 코로나19가 얼마나 지속할지 미지수인 상황에서 법으로 임대료 인하를 강제하는 것은 부담이 너무 크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경기 고양시의 한 60대 임대인은 16일 “코로나19 때문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우리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며 “우리 임차인도 월세를 안 내 보증금에서 벌써 6개월치를 제했다. 그런데 법으로 거기서 인하까지 해주라고 하면 (우리는) 어떡하라는 거냐. 은행에 이자 낼 돈도 없어 건물주들도 요샌 다들 빚 걱정”이라고 답답해했다.
임대 사업자 회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반응도 비슷하다. ‘임대료 멈춤법’에 대해 “임대인은 은행융자도 멈춰야 하나? 다 같이 힘든데 은행이자나 정부가 거두는 다른 세금은 안 깎고 왜 임대료만 깎나”, “국가가 일방적으로 임차인 편만 든다”, “한 상가 안에도 잘 되는 업종 안 되는 업종 나뉘는데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니 답답하다” 등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임차인 “임대료 인하 필요하지만… 반발 부를까 걱정”
반면 임차인들은 임대료 인하에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임대 사업자가 이후 손실을 보존하기 위해 기존보다 임대료를 더 많이 인상할까 걱정하기도 했다. 정부의 강제적인 임대료 인하가 임대인의 반발을 부를까 우려한 것이다.
서울 성북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40대 박모씨는 이날 “최근 9시 이후 전면 영업 금지가 시행되며 원래도 안 좋았던 매출이 근래 더 바닥을 쳤다”며 “하루 평균 46만원 팔았는데 어제 4만2000원에 마감했다. 월세가 220만원인데 한숨만 나온다. 건물주한테 얘기하니 ‘나도 힘들다. 배달을 더 열심히 해보라’던데 어이가 없었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정부가 나서 임대료 강제 인하를 유도해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그것이 이후 큰 폭의 임대료 인상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오진 않을까 걱정했다.
임차인들이 많이 모여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임대료 인하에 대한 요구가 컸다. 한 누리꾼은 “임대료 인하 요청 문자를 건물주에게 보냈는데 답도 없더라, 결국 월세를 못내 나가면 공실일텐데 사정을 좀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고, 또 다른 누리꾼은 “나서서 임대료 인하해주시는 착한 건물주도 많지만 오히려 ‘주변 시세보다 싸다’며 5% 인상해달라는 건물주도 있더라. 정부가 제재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국민 10명 중 7명 “임대료 부담 덜어줘야”… 방식에는 이견
한편 최근 한 여론 조사에선 국민 10명 중 7명이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답했다. 다만 그 방식에 대해선 법률을 통한 강제적인 방식이 아닌 민간 자율에 맡겨야 하다는 쪽이 더 우세했다.
15일 오마이뉴스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500명(응답률 7.7%)을 대상으로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의 임대료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임대료 인하·정지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72.9%에 달했다. 반면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3.7%에 그쳤다(잘 모름 3.4%).
임대료 인하·정지 방법 조사에서는 ‘민간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49.3%로 ‘의무 인하해야 한다(39.8%)’는 의견보다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 ±4.4%p)를 넘어 우세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0.9%였다. 임대료를 인하해야한다는 임차인의 목소리에는 공감하지만, 임대인뿐 아니라 정부와 금융권까지 함께 고통을 분담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해석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 임대인∙임차인 간 갈등 양상이 커지고 야당을 중심으로 ‘정부가 시장 영역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비판이 거세자 민주당도 입장을 선회한 모습이다. 민주당은 내부적으로 ‘임대료 멈춤법’의 위헌 소지가 크다고 결론 내림에 따라 세제 혜택을 늘리는 등 기존 ‘착한 임대인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는 데 무게를 두기로 했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도 이날 오전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그분(임차인)들을 도울 지혜롭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겠다”며 “임차료를 포함해 소상공인, 자영업자 긴급보호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세제 혜택 제공의 경우 임대인의 선의의 기댄 강제력 없는 정책이라 그 효과가 얼마나 클지는 미지수다.
이번 조사는 무선(80%)·유선(20%)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집방법은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RDD) 방식을 사용했고, 통계보정은 2020년 10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기준으로 성별, 연령대별, 권역별 가중 부여 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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