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제의 도전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동맹을 회복하고 세계와 다시 한번 관여할 것이다.”
미국이 세계에 복귀했다. 조 바이든 신임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취임식에서 “세계가 (미국을) 지켜보고 있다”며 동맹국들과 함께 국제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대신 전통적 의미의 다자 외교 부활을 선언한 셈이다.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노딜’ 이후 2년 가까이 교착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북미, 남북 관계에 새로운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극한 갈등과 충돌 위기로 이어질지, 전격적인 대화 국면으로 바뀔 지는 향후 수개월 안에 그 양상이 판가름날 전망이다.
◆북한 의중 따라 상황 바뀔 가능성
정부는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에 따른 ‘새로운 미국의 시간’에 맞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할 태세다.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라인이 구성되면 속도감 있는 고위급 교류를 통해 북미 대화 조기 재개를 위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오랜 교착상태를 하루속히 끝내고 북미, 남북 대화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평화의 시계가 다시 움직이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정부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내부적으로 코로나19 확산 수습과 이민 정책 수정,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심화된 국론 분열 봉합, 경기 부양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와의 핵무기 통제 협정인 뉴 스타트(신전략무기감축협정) 연장, 이란 핵협상, 중국과의 관계 설정 등이 바이든 대통령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북한 문제는 뒤로 밀릴 우려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의 대북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새로운 복안을 제시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을 ‘관리’하는 차원의 접촉은 있을 수 있으나,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려면 수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다.
변수는 북한의 대응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이후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미국에 대해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밝혔다.
문제는 강경책과 유화책을 판단하는 북한의 기준이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북한은 기존에도 ‘자주권’ ‘적대시 정책’ 등 모호한 개념을 내세웠다. 상호 모순적인 ‘수령의 교시’도 적지 않았다.
정책적 편의에 맞는 ‘수령의 교시’를 내세워 내부적으로 명분을 획득하고, 대외적으로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를 최대한 넓힌 외교 전략을 구사해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장악하려 시도해왔다.
변수는 오는 3월 실시될 한미 연합훈련이다. 북한 문제를 바이든 행정부 외교정책 우선순위에 두도록 하고자 북한이 연합훈련을 도발로 규정하고 탄도미사일 발사 등을 전격 단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북극성-4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등을 감행하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당초보다 강경해질 수 있다.
오바마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둔 시절이었던 2012년 2월 미국과 북한은 ‘미국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고, 북한은 핵 활동을 중단한다’는 합의에 도달했다. 이른바 ‘윤달 합의’ 였다.
하지만 북한은 수 주 후 위성 발사체라고 주장하는 은하-3호를 발사했다. 미국을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돌아서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북한이 당분간 ‘현상유지’에 치중하며 상황을 관망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2년간 북한과 한미는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면, 한미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동결 대 동결’ 방식을 유지해왔다. 남북은 우발적 충돌방지와 긴장완화를 위한 9.19 군사합의를 맺었다.
이같은 조치는 북한의 안보 불안을 어느 정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재개하면, 바이든 행정부는 대규모 연합훈련 실시를 저울질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어렵게 유지한 동결 조치는 무력화된다.
3월 한미 연합훈련에서 미군 전략자산 전개 등 눈에 띄는 모습이 없다면, 북한이 먼저 판을 깨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오는 대목이다.
결국 북한이 3월 연합훈련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올해 북미, 남북 관계 향방이 정해질 전망이다. 한반도 정세 주도권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작권과 주한미군 문제 일어날 가능성
토니 블링턴 국무장관 지명자를 포함한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라인은 동맹 및 다자주의 인식과 경험을 갖춘 팀으로 평가받는다. 동맹을 금전적 관계로 바라보는 트럼프 전 행정부의 태도와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한미 관계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요구할 민주주의 가치나 외교정책 공유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무기나 천연가스 구매 카드를 제시하는 것보다 더 까다롭다.
외교적 차원에서는 ‘엇박자’ 위험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핵심 의제는 중국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과 북미 대화 조기 재개를 언급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의 핵심 외교 의제를 공유해야 동맹의 효과도 커지고 대북 정책도 풀어나갈 수 있다.
문제는 대중국 정책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중국을 의식해 미국, 일본, 인도, 호주가 참여해 만들어진 집단안보협의체 ‘쿼드’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의 참여를 공식 또는 비공식 요청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미 대화 조기 재개를 촉구했는데, 중국 견제라는 숙제를 떠안으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악화됐던 한중 관계 개선의 모멘텀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
군사 분야에서는 행정부가 바뀐 직후라 ‘트럼프 뒤집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현역 군인과 공무원이 주도한다는 측면에서 변화의 폭이 생각보다 적거나, 돌출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진통을 거듭한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은 상식적 수준에서 풀릴 가능성이 높다. 감축 우려가 제기됐던 주한미군 주둔 문제도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한반도 위기 관리도 미국의 정권교체기에서도 큰 문제 없이 이뤄진 만큼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긴밀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진통을 겪을 우려도 있다. 국방부는 “바이든 행정부 초기에 적극적인 정책협의를 통해 전작권 전환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입장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 내정자가 의회 인준을 받아 취임하면, 한미 국방장관 전화 통화 등이 곧바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는 전작권 전환을 가능한 앞당기려 하지만, 미국은 2014년 합의한 전작권 전환 조건 충족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국군 핵심 능력, 북한 핵과 미사일 대응 능력, 한반도 및 역내 환경’이라는 3대 조건 수정을 논의하자는 목소리가 국내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한미 간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이외의 지역으로 파견되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숨은 폭탄’이다. 미군이 규모를 늘리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파병 수요에 대응하려면 기존 해외 주둔군에 대한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3만 명에 가까운 정예병력이 주둔 중인 한반도가 주목을 받게 되는 이유다.
실제로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지난달 한국과 걸프 지역을 지목하며 미군의 주둔 방식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군의 해외 주둔을 강력히 지지하지만 영구적 주둔보다 순환적이고 일시적인 주둔을 더 선호한다”며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밀리 의장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유임됐다.
국방부는 “주한미군 전력태세 조정 관련 사안은 반드시 우리 정부와 긴밀히 협의 하에 결정되도록 관리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이다. 주한미군이 중국 견제에 투입되는 등 국익과 맞지 않는 부분이 발생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한미 동맹의 근거인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기반해 주한미군 임무를 한반도 방위로 국한하도록 바이든 행정부를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정부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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