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세계 인구 76억7300만명 추계
부국에 선주문 70억회분 중 절반 이상
英 인구의 3배·美 2배 등 쏠림문제 심각
빈국 확보 물량은 2억5000만회분 불과
불공평한 분배로 위기 놓인 지구촌
빈국에 고르게 배포 시점 2024년 전망
새 변이 바이러스 전세계 확산 가능성
세계 경제 손실액도 9조弗 이상 추산
사각지대 놓인 난민 등에도 관심 필요
◆부국과 빈국의 ‘백신 양극화’
최근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 백신 선주문 구매 분량 70억회분의 절반 이상이 잘사는 선진국에 돌아갔다. 이는 실제 접종 인구의 몇 배에 달하는 규모로 필요 분량 이상으로 주문했다는 얘기다. 반면 중진국의 경우 접종 대상 인구는 약 60억명인데 백신은 10억5000만회분만 확보한 상태라고 한다.
지난해 세계은행(WB)이 추계한 세계 인구는 약 76억7300만명이다. 빈국이 확보한 백신은 2억5000만회분에 불과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해 “백신 인종차별주의(vaccine apartheid)나 다름없다”고 성토했다. 과거 남아공의 국격을 크게 훼손한 ‘아파르트헤이트’란 용어까지 꺼내든 것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직접 나서 코로나19 백신 보급의 불평등 문제를 고강도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6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코로나19 백신은 가장 빈곤한 국가에는 거의 도달하지 않지만 소수의 국가에만 빠르게 도달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어 국제 백신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를 언급하며 “공정한 (백신) 접근, 특히 가장 취약한 계층의 접근을 위해 중대한 메커니즘”이라며 “우리는 함께하는 한 가지 방법을 통해서만 바이러스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영상 메시지에서도 “1억회분 이상의 코로나19 백신이 전 세계에 배포됐지만 아프리카 대륙에 배포된 백신은 수천·수만회분에 불과하다”고 개탄했다.
◆백신 민족주의… 한계 부닥친 코백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지구촌의 백신 공급 불균형 상황을 전 세계를 파멸로 몰아넣는 “도덕적 실패”로 규정했다. 그는 “실패의 대가는 가장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생명과 생계가 될 것”이라며 “코로나19 확산은 더 길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국과 빈국의 차이는 확연하다. WHO에 따르면 소득이 높은 49개국에서 현재까지 백신 3900만회분이 접종됐다. 예컨대 캐나다의 경우 세계 제약사들과의 발빠른 거래로 인구 대비 6배에 달하는 백신을 이미 확보한 상태다. 그런데도 코백스를 통해 막대한 물량의 백신을 추가로 공급받을 예정이다.
코백스는 올해 상반기 145개국에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 약 3억3700만 회분을 배포하겠다며 잠정 분배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3.3%가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물량이다. 코백스에 3억4500만달러를 투자한 캐나다는 투자금의 절반을 백신 구매 비용으로 활용하겠다고 약속했고 이에 따라 캐나다에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 백신 190만3200회분이 배분됐다. 이는 캐나다 전체 인구의 5%가 접종 가능한 분량이다. 백신 확보 물량을 보면 영국은 인구의 3배, 미국은 2배로 나타났다.
반면 아프리카 가나의 경우 고작 25회분의 백신을 확보한 게 전부다. 13억2100만 인구에 55개 회원국으로 이뤄진 아프리카연합(AU)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국은 이집트·기니·세이셸이 고작이다.
일종의 전 세계적 백신 공동 구매 프로그램인 코백스는 올해 말까지 20억회분 제공, 바이러스 취약 인구 20%를 위한 백신 배포가 목표였다. 현재 상황은 목표치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다.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미국과 캐나다,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이 확보하는 백신 물량이 늘어날수록 코백스에 의존하는 가난한 국가에 돌아가는 백신은 적어진다고 지적했다. 구매 확정 규모만 놓고 보면 EU 15억8000만회분, 미국 12억1000만회분, 코백스 10억7000만회분이다.
◆“백신 불평등 지구촌 자멸 초래할 것”
백신의 공평한 분배는 도덕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게 공통적 지적이다.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상공회의소연구재단의 연구 결과는 백신이 부자 국가에만 집중될 경우 부국도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ILO는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지난해 글로벌 노동 시간이 8.8% 감소했으며, 이에 따른 손실액은 약 3조7000억달러(약 407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ILO는 백신 보급률에 따라 대다수 국가에서 올해 하반기 경제가 회복될 수 있으나 경제 및 고용 회복을 위해선 중·저소득 국가에 대한 백신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국제상공회의소연구재단이 후원한 연구를 봐도 후진국 대부분이 백신 보급에서 제외되는 경우 세계 경제 손실액은 무려 9조달러(약 9922조원)를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일본과 독일의 연간 생산액 합계보다 큰 규모다. 이런 경제 손실의 절반가량은 미국, 캐나다, 영국과 같은 선진국들에 돌아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는 저소득 국가에 대한 백신 접종이 이뤄지지 않으면 고소득 국가의 연간 GDP 손실액이 1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결국, 빈국에 백신 접종이 이뤄지지 않으면 선진국 역시 큰 경제적 피해를 볼 것이라는 얘기다.
◆“백신 구매·접종 사각지대에 놓인 난민 등에도 관심 기울여야”
백신 구매·접종의 사각시대에 놓인 이들에 대한 관심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난민 등 특정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의 경우 바이러스에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포린어페어스는 난민 등의 경우 대부분 수용소에서 다닥다닥 붙어 생활하기 때문에 감염 위험이 매우 높고 시민권이 없다 보니 의료·보건 시스템에서 배제된 경우가 많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이들에 대한 선진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전 세계에서 강제추방 등의 이유로 국적 없이 떠도는 인구는 약 800만명, 국적 없는 이들은 1000만명으로 각각 추산된다.
포린어페어스는 “G7(주요 7개국)이든 G20(주요 20개국)이든 바이러스 확산 및 새로운 바이러스 창궐을 막기 위해선 WHO가 주도하는 코로나19 대응 협력체에 대한 기금 마련을 선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WHO가 주도하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글로벌 협력체(ACT-Accelerator)’는 공공과 민간 부문을 결합시켜 진단 기기나 치료제, 백신 같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도구 개발과 생산 및 공평한 접근을 돕고자 지난해 4월 출범했다. 그러나 이 기구의 올해 재정 부족분은 260억달러(약 29조원)에 달하는 실정이다.
최근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세계 빈곤 국가까지 백신이 고르게 배포될 것으로 전망되는 시점은 2024년이다. 문제는 그사이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로런스 고스틴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등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부자 국가들이 너무 늦기 전에 가난한 국가들과 백신을 공유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는 한 코로나19는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구촌 집단면역까지 머나먼 길”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집단면역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으나 빈국의 접종이 늦어지면 집단면역 형성 시점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84억9000만회분에 해당하는 110건 이상의 백신 공급 계약이 이뤄졌다. 화이자나 모더나 등 주요 백신이 2회 접종을 해야 효과를 보는 점을 고려하면 전 세계 약 77억 인구의 54% 정도가 면역을 제공받을 수 있는 분량이다. 아직 상당수 백신은 긴급 사용허가를 기다리고 있거나 임상시험 중이다. 통신은 백신 품목이 모두 허가를 받고 생산·접종이 이뤄지기까지 2022년은 지나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집단면역 시기도 국가별로 차이가 날 것이라는 점이다. 일부 접종 선발국가는 조만간 집단면역을 확보할 것으로 보이지만 접종이 늦어지는 국가는 당연히 그 시기가 늦춰질 수밖에 없다. 집단면역 형성 기준으로 WHO는 인구의 60~70%,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은 70~90%를 각각 제시했다. WHO 기준에 따를 경우 미국과 영국은 이르면 올 상반기 내 집단면역을 형성할 수 있게 되지만 접종 속도가 느리거나, 아직 백신 확보를 하지 못했거나 백신이 부족한 국가는 집단면역까지는 한참 더 걸린다고 봐야 한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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