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조치 대상이지만, 신고 후 해고·고발 등 고통
공익신고 마음 먹어도 보호장치 미비해 실행 주저
정치권·법원, 공익신고자 책임 면제·감경에 소극적
“보호법, 판사 재량권에 너무 의존… 바꿀 필요 있어”
文정부 ‘책임감면제’ 강화 실패… 권익위 역할도 한계
법무부 등 수사·감사기관 내부 고발, 외부 보호 어려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 해도, 제가 다시 피해를 보더라도 같은 행동을 할 겁니다.”
경북 경주의 한 중증장애인 요양시설 내부 비리를 공익신고했다가 자격정지 위기에 처한 사회복지사 A(49)씨는 14일 “내부 고발이 아니면 (조직 내부의) 범죄 사실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A씨는 시설 설립자이자 전 시설장인 정모(48)씨의 보조금 횡령 등 비위 사실을 공익신고했으나, 정씨의 횡령 등을 도왔다는 이유로 지난달 14일 항소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사회복지사업법은 보조금법 위반 등 혐의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향후 5년간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익신고자는 관련법에 따라 책임감면, 신분보장, 비밀보장, 신변 보호 등의 보호조치 대상이지만, A씨는 신고 후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최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을 제보한 내부고발자와 지난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28)씨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을 제기한 당직사병도 공익신고를 이유로 고발 위협 및 신상 캐기 등의 고통을 겪었다. 숨겨진 비리 의혹을 수면 밖으로 꺼낸 공익신고자들에 대해 적극적인 보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진상규명 기여했지만…” 퇴출, 자격정지 다반사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남근욱)는 보조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이 사건을 제보해 진상규명에 기여한 점과 시설 장애인들의 선처 탄원 등을 참작했다”면서도 “피고인의 가담 내용, 피해 정도에 비추어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A씨는 정씨의 불법적인 명령을 단호히 거절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지만, 계속된 해고 협박과 괴롭힘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항변했다.
2012년 A씨가 사무국장으로 시설에 입사한 지 두세 달 후부터 정씨는 보조금을 빼돌릴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그가 거부하자 정씨는 A씨와 시설에서 함께 일하던 그의 아내에게 “둘 중 한 명을 해고하겠다”고 협박하고, 업무가 끝난 뒤에도 다음 날 새벽까지 술자리를 강요하며 잔소리와 욕설을 이어갔다.
A씨는 정씨의 계속된 압박에 못 이겨 주·부식 거래업체와 실제 거래액보다 많은 금액을 결제한 뒤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계약을 맺고, 해당 차액을 정씨에게 전달했다. 정씨는 정부보조금에서 빠져나가는 촉탁 의사(일정 기간 임시 고용된 의사)의 급여 일부도 후원금 명목으로 빼돌려 자신에게 주라고 지시했다. 정씨의 횡령액이 불어날수록 A씨의 죄책감은 더 커져갔다.
정씨의 범행은 이뿐 아니었다. 그는 2016년 9월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B씨를 폭행한 혐의도 받는다. 정씨는 폭행 장면이 찍힌 영상을 삭제하라고 지시했지만, A씨는 이를 따로 저장해놓았다가 수사기관에 제출해 정씨 혐의 입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씨는 이외에도 정부 보조금과 후원금으로 개인 소유 건물 도색공사에 쓸 페인트를 사고, 자택 양변기 구입 등에도 썼다. A씨는 여러차례 용기를 내 그의 비리 행위를 말렸으나 그럴수록 괴롭힘은 심해졌다. A씨는 결국 2018년 9월 경상북도장애인옹호권익기관에 공익신고를 했다. 수사를 거쳐 정씨는 항소심에서 보조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을,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5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오래전부터 공익신고를 마음먹고 있었지만, 정씨의 해고 위협과 공익신고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 미비 등을 우려해 곧바로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A씨는 “입사하고 2∼3년 정도 됐을 때, 도저히 못 참겠어서 공익신고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지인에게 자문했지만, ‘공익신고를 하면 너만 힘들게 될 것’이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며 “그래서 주저하게 됐지만, 언젠가는 공익신고를 하기 위해 자료를 계속 수집해왔다”고 말했다.
정씨는 A씨의 공익신고 사실을 알게 된 후 근무 태만 등의 이유를 들어 그를 해고했다.
◆“법원·정치권, 공익신고자 책임 감면에 소극적”
현행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공익신고와 관련해 공익신고자의 범죄행위가 발견된 경우 그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정치권과 법원은 여전히 공익신고자의 책임 면제·감경에 소극적이다.
김민규 전 효성 전력영업팀 차장은 대기업들의 ‘입찰 담합’을 공익신고했다가 담합에 참여한 실무자라는 이유로 기소돼 2018년 7월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법에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로 돼 있다 보니 판사의 재량권에 너무 많이 의존하게 되는 구조”라면서 “강제나 의무조항까지는 아니더라도, ‘할 수 있다’를 ‘한다’ 정도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입찰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게 “이 사건 담합행위를 최초로 제보한 점은 유리한 정상이나, 실무자로서 이 사건 담합행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회사의 명령을 거부하기 힘든 직원의 상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김 씨는 포기하지 않고 1년여의 끈질긴 싸움 끝에 항소심 재판부로부터 ‘공익신고자보호법에서 정한 형의 감면 제도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이끌어내 선고유예를 받았다. 선고유예는 범죄의 정도가 비교적 가벼운 자에게 2년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기간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형의 선고를 면하는 제도다.
김씨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해석의 영역 또는 판사 재량의 영역을 넓혀 놓고 입법부가 ‘우리가 할 일은 다 했다’고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오상석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는 “공익신고자보호법에 신고자에 대한 감경·면제 조항이 있으면 이를 충분히 활용해야 하는데도 (법원이) 똑같이 형을 선고하면 누가 공익신고를 하겠느냐”고 비판했다.
◆文정부 ‘책임감면제’ 강화 입법 실패, 권익위 역할도 한계
문재인정부는 공익침해행위 입증에 역할을 한 공익신고자의 경우 형사처벌을 반드시 감경·면제하도록 하는 ‘필요적 책임감면제’를 추진했으나, 20대 국회에서 입법에 실패했다. 범죄자가 처벌을 피하기 위해 악용할 수 있다는 등 야당의 반대가 나왔고, 법원행정처도 ‘신중 검토’ 의견을 내면서 좌초됐다.
공익·부패 신고를 보호해야 할 국민권익위원회의 권한과 역할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에 따르면 서울 동부구치소 의무과에 근무하던 C씨는 공익제보 후 되레 강제 전보조치 됐고 그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C씨는 2019년 내부 직원들의 비위행위를 상관에 신고했으나, 해당 직원들은 오히려 C씨가 갑질를 했다고 법무부에 진정을 냈다. 문제 직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자 C씨는 다시 권익위에 신고했다.
하지만 권익위는 “이미 법무부에서 조사 후 처리된 사건”이라며 별도 조사 없이 종결했다. 동일 사건을 수사기관이나 감사기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경우 권익위가 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법무부 등 수사·감사 기관에서 내부 고발을 할 경우 기관장이 사건을 덮거나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외부기관으로부터 객관적인 조사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천직인 사회복지사의 길 계속 걷고파” 외로운 투쟁
A씨는 항소심 판결 이후 대법원에 상고했다. 5년간 자격정지가 확정되면 중학생인 두 아들과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를 모시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여태껏 천직이라 여기며 걸어온 사회복지사의 길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은 마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A씨는 또다시 자신에게 이번 사건과 같은 상황이 온다면, 그때도 공익신고를 선택하겠다고 한다. 다만 A씨는 “공익신고를 하면, 그 신고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보호 조치가 이뤄져야 기관·기업체 등의 비리가 수면 밖으로 나올 수 있다”면서 “그래야 계속해서 투명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강진·최형창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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