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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곧 삶에 대한 이야기… 잘 살아야만 잘 죽을 수 있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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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2-20 05:00:00 수정 : 2021-02-20 10: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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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교수

진료실 찾는 사람들 대부분 4기암 환자
완치가 아닌 생명 연장 항암 치료 받아
2007년 소록도 공보의 시절 수필가 등단
최근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출간

한국 죽음의 질 지수 OECD 18위 불과
의료시스템 개선 않는게 가장 큰 문제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투자 확대 필요
시설 확충하고 고급 인력 투입해야

연명의료결정법 혼란 제도 보완 시급
탁상행정 탈피해 현장에서 답 찾아야
항암치료, 가족보다 환자 의견이 중요
죽음에 대한 인식 긍정적으로 변해야
김범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지난 15일 서울대병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잘 살아야만 잘 죽을 수 있다”면서 “‘죽음의 질’을 높이려면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터부시하는 인식을 바꾸고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투자 증액 등 의료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정탁 기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너 자신이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의미다. 고대 로마에서는 개선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가 행렬 뒤에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고 한다. ‘개선 장군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니, 우쭐대지 말고 겸손하게 행동하라’고 경계하기 위한 풍습이었다.

우리도 언젠가 죽는다. 사느라 바빠 이 불편한 진실을 잊거나 두려워서 외면할 뿐이다. 잘 죽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누구든 갑작스럽게 죽기보다 살아온 날들을 잘 정리한 뒤 삶을 마감하고 싶어할 것이다. 우리 현실은 딴판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한국의 ‘죽음의 질 지수’는 2015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40개 회원국 가운데 18위에 불과하다.

김범석(44)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진료실을 찾는 환자는 대부분 4기 암 환자들이다. 이들은 완치가 아니라 생명 연장 목적의 항암 치료를 받는다. 그는 그렇게 시간을 벌면서 환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뒤로 미루기 위해 발버둥친다. 진료 현장에서 암 환자들 죽음을 지켜보는 게 김 교수의 안타까운 일상이다.

소록도에서 공보의로 일하던 2007년 수필가로 등단한 그가 최근 에세이집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를 펴냈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어떤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폐암으로 잃었다. 김 교수가 의사를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된 데는 아버지 영향이 컸다. 화학공학과를 다니다 이왕이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전공을 해보자는 고민 끝에 입시를 다시 치르고 의예과에 진학했다. 지난 15일 서울대병원에서 김 교수를 만나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맞아야 하는지를 들었다.

―웰다잉(well-dying)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웰다잉은 웰빙(well-being)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생사일여(生死一如)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이다. 종양내과 의사는 늘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를 많이 볼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웰다잉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간이 삶의 마지막까지 자기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에도 관심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

―잘 죽는 것(존엄한 죽음)은 어떤 것인가.

“잘 죽기 위해서는 우선 잘 살아야 한다. 잘 살아야만 잘 죽을 수 있다. ‘이 정도면 원 없이 잘 산 인생’이라며 후회가 없어야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다. 우리 가운데 이렇게 잘 살아온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곧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인 ‘죽음의 질’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상적인 죽음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를 했다. 첫째가 고통 없이 임종하는 것, 둘째가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죽는 것, 셋째는 충분히 정리된 상태에서 임종을 맞았으면 좋겠다는 응답이 나왔다. 현실이 이렇지 못하다는 방증 아닌가. 나도 환자들에게는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

―우리나라 죽음의 질이 낮은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풀어야 하나.

“의료시스템을 개선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우리나라 행위별 수가제는 무엇인가를 해야만 보상해주고 그러지 않으면 보상이 전혀 없다. 수천만원 하는 고가 항암제는 보험을 해주면서 호스피스 완화의료 수가는 몇만원 쓰는 게 아까운 것 같다. 의료 시설을 확충하고 좋은 인력을 투입해서 환자가 양질의 서비스를 받도록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호스피스는 성직자들이 하는 무료 봉사라는 인식이 강하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 발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호스피스 병상 등 시설과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인구 100만명당 최소 50개 병상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28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하지 않을까.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 많은 부분에 나서고 있고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기도 했다.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위해서는 재원 마련이 필수적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하는 의사들은 돈이 되지 않더라도 환자에게 필요한 일이니까 순수한 뜻을 가지고 하는 분들이다. 하면 할수록 적자만 나지 않도록 재원 마련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필수의료는 할수록 적자가 나고 이 적자를 비급여, 상급병실료, 장례식장 수입에서 메워야 한다는 건 다 알고 있지 않나. 얼마가 필요할지 제대로 산출해보고, 누가 이 비용을 부담할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의료서비스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와 관련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의료시스템 개선은 필요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사회·문화적인 현상과 역학이 맞물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 가지 키워드로 풀어나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보험료를 올리자니 조세저항이 우려되고, 코로나19 탓에 우선순위에서도 밀리는 형편이다. 한꺼번에 확 좋아지긴 힘들어도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저서에서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해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애매해 현장이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지.

“제도를 만드는 분들이 현장에 와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도를 만들 정도의 힘이 있는 분들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것은 의료뿐 아니라 우리나라 행정 전반의 문제다. 현장을 외면한 채 책상에서 모든 행정이 이루어지니 혼란이 계속되는 것이다. 현장에 모든 답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죽음에 대한 교육도 한다던데.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 문화는 우리와 다르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애들은 장례식장에 가는 게 아니라고 해서 가지 못했다. 어린이도 할아버지 죽음을 보고 배우는 게 있는데 이를 금기시함으로써 죽음은 피해야 할 나쁜 것, 얘기하면 안 되는 것으로 무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된다. 외국에선 장례식에서 임종예배를 해서 고인 얼굴을 보여주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게 문화로 자리 잡게 되면 아이들 마음속에서도 다른 부분들이 있지 않겠나.”

―우리나라에서도 죽음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지 않나.

“내가 지금까지 책을 6권 펴냈는데 예전에는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같은 책을 출판하면 팔리지 않았다. 책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독자들이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번 책이 팔리는 걸 보면 사람들이 죽음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변하고 있다고 본다.”

―마지막 항암치료에서 사망까지 미국은 6개월, 한국은 한 달 걸린다고 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지.

“산업화 과정에서의 압축적 고도성장 문화는 무조건 최선을 다하기만을 강요한다. 무엇이 최선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남들이 최선이라고 하면 힘들게 그것만 하려 한다. 극단적 평등주의와 경쟁을 동시에 추구하는 모순된 나라인 한국에서는 남들이 하면 나도 해야 하기 때문에 암 치료도 경쟁적으로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환자들만 고생하다 숨진다. 유교적 체면문화, 개인이 아닌 가족중심 사고방식, 대화의 부재, 저렴한 의료비, 지나치게 좋은 의료 접근성도 불필요한 항암치료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의사로서 환자의 항암치료를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할 때가 가장 고민스럽지 않나.

“그렇다. 항암치료를 중단하자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도 있고, 잘 됐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환자는 그만하고 싶은데 가족이 계속 하자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보다 가족들 의사가 더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환자는 어디에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등 떠밀려 치료받는 게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공보의로 활동하던 2007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글쓰는 걸 좋아했나.

“문학소년도 아니었고, 학교 다닐 때 백일장에서 상 한 번 받은 적이 없다. 쓰다 보니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수필가 등단도 우연이었다. 공보의를 하던 때 우연한 계기로 의사수필문학상에 응모했는데 운좋게 대상을 받았다.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한센병이라는 주제가 특이해서 수상한 것 같다. 그런데 대상을 받으면 등단시켜준다는 거다.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그때부터 글쓰기 공부를 하고 틈나는 대로 글을 썼다.”

―2007년부터 블로그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는데.

“당시만 해도 인터넷에는 암에 대해 잘못된 정보가 너무나 많았다. ‘3분진료’ 현실에서 의사에게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하니 인터넷을 찾아보는 것 아닌가. 공보의 할 때 시간 여유가 많아 환자들이 궁금해하는 점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하게 됐다. 환자들이 도움이 됐다는 연락을 많이 한다. 한번은 어떤 분이 메일을 보냈다. 암투병 중인 어머니에게 블로그 내용을 출력해 보여드리는데 글자가 작아서 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원고 원본을 보내줄 수 있냐고 하더라. 그래서 글자를 크게 해서 환자들 보시라고 책을 냈다. 그게 책을 쓰게 된 계기였다.”

―종양내과 의사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이런 인터뷰를 하면 마치 내가 무슨 고귀한 뜻을 가진 대단한 의사로 비쳐질까봐 걱정이다. 나는 월급날 가장 보람을 느끼는 그냥 ‘밥벌이 의사’다. 3분진료에 친절하지 못한 의사라는 점은 충분히 알고 있고, 환자들이 돌아가실 때 원망도 많이 받는다. 이국종 선생님처럼 대단한 사명감이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환자들에게 배우는 게 많다. 그럴 때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런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비망록처럼 글을 썼던 것뿐이다.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생각하고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강조하고 싶은 말이 더 있다면.

“우선 죽음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거나 터부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두 번째는 암이 (3명 중 1명이 걸릴 정도로) 흔한 병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암을 접할 일이 많이 생길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항암치료 등을 가족 위주로, 의료진 위주로 생각하다 보니 환자만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 아니라 환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원재연 선임기자 march27@segye.com

 

김범석 교수는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의예과 ●공중보건의(군복무) ●서울대 의과대학원 박사(분자종양의학)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전임의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상교수 ●한국임상암학회, 대한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미국암학회, 유럽종양내과학회 정회원 ●주요 저서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암환자의 슬기로운 병원생활’ ‘암, 나는 나 너는 너’ ‘항암치료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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