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아버지 아브라함 고향 돌아와
적대·극단주의·폭력, 신앙 배반하는 것”
종교 지도자 회동 이어 시아파 성지 찾아
최고 지도자 만나 기독교인 포용 촉구
IS 점령지 모술서 희생자 위해 기도
“평화가 전쟁보다 위력적임을 재확인”

“우리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살았던 여기,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의 땅이자 신앙이 태동한 이곳에서 가장 큰 신성모독은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형제자매를 증오하는 것입니다.”
가톨릭 2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라크를 찾았다. 이라크 방문 이틀째인 6일(현지시간) 우르 평원에서 기독교·이슬람·야지디교 지도자와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은 가장 큰 신성모독”이라고 역설했다.
아브라함은 신의 부름을 받고 뜻을 따른 최초의 인간이라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유대교 공통의 조상으로 불린다. 우르 평원은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이어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교황은 “적대와 극단주의, 폭력은 신앙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신앙을 배반하는 것”이라며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보는 한 평화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종교인은 테러가 종교를 남용할 때 침묵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든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분명하게 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르 방문에 앞서 교황은 이라크 남부 시아파 성지 나자프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이슬람 시아파 최고 지도자인 알리 알시스타니와 회동했다. 가톨릭 교황이 시아파 고위 성직자와 만난 것도 사상 최초다. 올해 90세인 알시스타니는 이라크 시아파 신자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앉아서 방문객을 맞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날만큼은 방문 앞에 서서 교황을 맞이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약 50분간 비공개로 진행된 회동에서 교황은 알시스타니에게 이라크 내 소수파인 기독교인을 무슬림들이 포용할 것을 촉구했다. 교황과 회동 후 알시스타니는 “이라크의 기독교인은 다른 이라크인과 같이 평화와 공존 속에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7일에는 모술을 찾아 수천명의 전쟁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공동체 가운데 하나인 이곳은 2014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장악해 패퇴할 때까지 약 3년간 심각한 피해를 봤다. 교황은 폐허가 되다시피 한 4곳 교회가 인접한 ‘교회 광장’에서 “기독교인들이 이라크와 다른 중동 지역에서 비극적으로 추방된 것은 해당 개인과 공동체뿐 아니라 그들이 뒤로한 지역에도 헤아릴 수 없는 피해를 줬다”고 말했다. 이어 IS의 대량 학살과 납치, 성노예 대상이 됐던 소수민족 야지디족의 고난을 특별히 언급하면서 “하지만 오늘 우리는 형제애가 형제살해죄보다 더 오래가고, 희망이 증오보다 강력하며, 평화가 전쟁보다 위력적임을 재확인한다”고 강조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이라크 내 기독교 신자는 150만명(인구의 3.8%)에 달했다. 그러나 알카에다와 IS의 종교 박해가 이어져 현재는 25만∼40만명밖에 남지 않은 상태다.

교황의 이번 방문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을 굽히지 않은 이라크 교인을 응원하고,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의 대화를 확대하기 위해 이뤄졌다. 2013년 즉위 후 수차례 이라크 방문 의사를 밝혔던 교황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첫 순방지로 마침내 이라크를 찾게 됐다. 교황은 그간 방글라데시, 아랍에미리트(UAE) 등 여러 이슬람 국가를 방문한 바 있다.
현지 코로나19 상황과 치안 불안으로 일정을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교황은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며 방문 의지를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8일까지 이라크 일정을 예정대로 모두 소화하면 이동 거리는 총 1400㎞에 달한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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