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세상에서 독서를 가장 많이 강조한 사람을 들라면 정약용은 빠지지 않을 것이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여럿 살펴보면 독서할 것을 권유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폐족(廢族)으로서 살길은 오직 독서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약용의 집안이 천주교로 인해 큰 박해를 받은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정약용의 누이가 조선 최초 영세자 이승훈에게 시집을 갔고, 천주교 백서 사건으로 유명한 황사영이 조카사위였다. 둘째 형 정약종이 신유사옥으로 옥사했고, 셋째 형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유배 중 사망했으며, 정약용 자신은 강진으로 유배를 갔다. 한마디로 집안이 천주교 문제로 명문세가에서 완전히 폐족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렇게 집안이 몰락하고 자신이 유배 중임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독서할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빠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 폐족이 되었기 때문에 진정한 독서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집안이 망해서 참다운 독서의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정약용이 말한 독서의 근원은 다른 목적이나 가식적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한 것이다. 벼슬을 위해, 부귀영화를 위해 공부하지 말고 사물의 참된 이치를 깨닫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정약용 자신은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공부했으니 관각체(館閣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홍문관이나 규장각의 문사들이 주로 쓰던 격식의 문체를 따랐던 것이다. 그는 아들들에게 이제 벼슬길이 막혔기에 격식을 벗어나 자유롭게 독서를 하면서 참다운 지식과 이치에 통달하라고 권유한다.
이와 함께 또 다른 독서의 근원은 결핍과 절박함이다. 가난하고 곤궁하면 오히려 지혜와 생각은 깊어지고 이를 통해 사물의 진실과 거짓을 옳게 판단할 수 있다. 정약용은 명문가 고관의 자제들이 과거를 위해 공부하면서 뜻도 의미도 모르면서 그냥 글자만 읽는 것을 독서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은 관직에 있을 때보다 귀양살이를 하면서 오히려 이전에 보지 못한 문장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욕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을 비우고 온몸을 다해 문장의 참뜻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독서의 정수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책이 꿈꾸는 것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과연 지금 우리 시대는 독서를 통해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정희모 연세대 교수·국문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