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세계 군사강국들이 운용하는 항공모함의 핵심 무기는 함재기다.
전투기와 헬기 등을 탑재한 채 바다를 누비는 항모는 함재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2033년 전력화를 목표로 3만t이 넘는 규모의 경항모를 건조하려는 한국 해군은 수직이착륙기 도입을 천명한 상태다. F-35B를 쓰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음달 일반에 공개될 한국형전투기(KF-X)를 개조한 ‘KF-X 네이비’ 개발 주장도 방산업계와 온라인 등을 중심으로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방사청 관계자는 지난달 24일 KF-X 미디어데이에서 관련 질문에 “현 상태에서 KF-X 네이비를 고려한 적은 없다”면서도 “경항모 크기에 따라 항공기가 어떻게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점진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지를 뒀다.
◆기술적 난제 많아…중국 실패 답습할 수도
항모에 사용할 함재기 개발은 기술적으로 난이도가 높고 고려 사항도 많다.
비행기가 착륙과정에서 ‘쿵’하며 거칠게 착륙하는 경우가 있다. 펌 랜딩(Firm Landing)이라 불리는 충격식 착륙기법이다.
활주로가 미끄럽거나 강한 뒷바람이 불 때, 활주로 길이가 짧은 상황에서 쓴다. 활주로와 타이어의 마찰 계수를 높여 활주 거리를 단축,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는다.
펌 랜딩은 항공기 기체 구조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짐을 싣고 착륙하는 화물기는 펌 랜딩에 따른 충격이 커서 화물기 제작사는 기골이나 랜딩기어를 사전에 보강한다.
엄청난 속도로 매우 짧은 비행갑판에 하강 및 착륙하는 항모 탑재 전투기는 화물기보다 더 강도 높은 충격식 착륙을 한다. 지상 전투기보다 충격이 훨씬 크다. 그만큼 전투기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망망대해에서 활동하는 함재기는 계기가 고장나면 속수무책이다. 이에 대비해 백업 시스템을 철저히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 소금기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방염처리도 해야 한다.
착함 실패 시 곧바로 최대 속도로 가속해 재이륙할 수 있도록 엔진과 비행제어시스템도 개량해야 한다.
이를 반영해서 기존 육상 전투기를 함재기로 개조하면, 함재기 중량은 기존 지상 전투기보다 5~10% 이상, 시스템은 25% 정도 증가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는 무장탑재량 등 주요 성능을 떨어뜨린다.
한 전문가는 “함재기 개발 경험이 있던 맥도널 더글러스(현 보잉)가 1970년대 F-16과의 경쟁에서 밀린 YF-17을 기반으로 F-18을 만들었을 때, F-18의 성능이 예상을 크게 밑돌아 고심했다”며 “디지털 기술이 없었다면 F-18 전력화는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전했다.
러시아 SU-33 함재기 기술을 이용해 J-11B를 항모 탑재형으로 개조한 J-15는 J-11B보다 무장탑재량이 1.5t 줄었다.
스키점프대를 사용하는 랴오닝함과 산둥함에서는 무장탑재량이 더 줄어든다. 동체 크기도 함재기 중에서는 큰 편이라 항모 격납고와 갑판에 충분한 수량을 배치하기도 쉽지 않다.
이같은 장애를 극복하려면 미국 F-4와 F-35, 프랑스 라팔처럼 지상 전투기와 함재기 개발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항모에 증기식 또는 전기 추진 사출기도 갖춰야 한다.
KF-X도 마찬가지다. 해군 경항모 탑재를 고려했다면, KF-X 네이비 개발을 함께 진행했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KF-X 시제1호기가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에사도 KF-X 네이비는 개발 절차도 수립되지 않았다.
KF-X 별도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기초 구조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므로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KF-X 개발과 맞먹는 예산과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KF-X를 함재기로 만들려면 주날개 접힘 구조와 랜딩기어, 어레스팅 후크, 기골 구조 강화 설계 등의 기술이 필요하다.
엔진 등 주요 구성품에 방염처리를 해야 하고, 엔진은 출력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 비행제어시스템도 대대적인 개량에 불가피하다. 현재까지 별다른 언급이 없는 공대함미사일 장착도 서둘러야 한다.
국내에서는 경험이 없으므로 외국과의 기술협력이 필요하다. 이들 기술을 보유한 선진국은 미국, 러시아, 프랑스. 이들 국가가 관련 기술을 해외에 공식 이전한 사례는 없다.
우여곡절 끝에 KF-X를 함재기로 개조해도 문제는 남는다. 3만t급 경항모에는 운용이 불가능하다. 대출력 사출기를 갖춘 대형 정규 항모가 필요하다.
이는 건조비와 운영유지비 폭등으로 이어진다. 군 관계자는 “KF-X 네이비를 쓰려면 핵항모나 미국이 냉전 시절 썼던 키티 호크(6만t급)와 유사한 수준의 재래식 항모가 필요할 텐데, 예산 소요가 경항모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을 확보해도 사출기 개발과정에서 난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F-35B처럼 KF-X를 수직이착륙기로 만드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카티아(CATIA:자동차나 항공기 설계 및 개발을 위한 3차원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로 그럴 듯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실전 효용성은 별개”라며 “구소련은 냉전 시절 야크-38 수직이착륙기를 만들었다가 기술적 문제 등으로 조기 퇴역시켰고, 중국도 개발과 시험은 지속하지만, 아직 전력화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F-35B 논란 “성능 부족” VS “게임체인저”
KF-X 네이비가 거론된 것은 F-35B의 성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부터다.
무장탑재량은 F-35A 8.1t, F-35B는 6.8t이다. 내부 무장도 F-35A는 공대공미사일 2발과 1t급 유도폭탄 2발이지만 F-35B는 공대공 미사일 2발에 0.5t급 유도폭탄을 탑재한다.
작전에 필요한 무장을 추가 탑재하려면 기체 외부에 장착해야 하는데, 이는 스텔스 성능을 크게 약화시킨다.
F-35B의 강력한 스텔스 성능도 스텔스 탐지 기술 발달로 우위를 장담하기 어렵다. 플랫폼인 경항모가 탐지되면 F-35B의 스텔스 성능도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항모 전투단을 지키는 방어 작전에는 쓸 수 있으나 공세 작전에는 쓰임새가 제한적이라는 관측도 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반 성능만 보면 F-35B는 문제가 많지만, 다른 장점으로 만회할 수 있는 게임체인저(어떤 일의 판도를 뒤바꾸는 중요한 역할)라는 것이다.
미군은 F-35를 일반적인 전투기가 아닌, 네트워크중심전(NCW)의 핵심 요소로 본다.
F-35가 적진을 직접 타격하는 대신 데이터 공유체계(Link-16, MADL)로 무인전투기를 비롯한 무인 전투체계를 원격제어, 중계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데이터 수집, 분석, 공유 능력은 전투기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도 있다.
데이터 공유체계로 기체 외부에서 수집된 정보는 F-35가 자체적으로 얻은 정보와 융합되는 ‘센서 퓨전’에 의해 디스플레이에 시현된다.
F-35는 수집된 정보 중 신뢰성 높은 데이터를 식별해 네트워크로 같은 편대의 F-35B에 전송하고 수신한다. 이를 반복하면서 정보의 신뢰성을 높인다. 향후에는 B-2를 비롯한 다른 기종은 물론 지상, 해상 무기체계에도 정보를 보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이같은 특성은 한 대의 유인기가 다수의 무인기를 통제하는 유·무인 복합체계에도 응용할 수 있다.
현재 경항모에 탑재될 전투기를 국외 도입할지, 국내 개발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군 당국은 비용과 기술 수준 등을 검토해 기종을 결정할 예정이다.
F-35B가 선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국내 연구개발을 우선 추진할 수 있는 ‘한국산 우선구매 제도’ 도입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어 군 당국의 향후 대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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