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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금 입금하면 채팅방 닫고 잠적… 막을 법 없어 피해 확산 [심층기획 - 6070 노린 리딩방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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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3-30 06:00:00 수정 : 2021-03-30 07: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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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수익보장” “합법 투자” 문자 홍보
경력·인맥 내세워 암호화폐·금 투자 권유
투자금 인출 수수료 요구… 거액 뜯기기도

2020년 4분기 피해상담 80% 늘어 5659건
현행법은 ‘피싱 범죄’ 국한… 제재 어려워
금융당국 “암행점검 확대 등 단속 강화”

“노후 자금 좀 만들어보려고 한 건데… 모아둔 돈까지 싹 날려버렸어요.”

 

60대 청소노동자 정모씨는 하루 10시간씩 일을 해서 월 200만원을 번다. 아픈 남편의 치료비를 빼면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얼마 없지만, 생활비를 아껴 힘들게 노후 자금을 모으고 있다. 그런 정씨에게 원금을 조금이라도 불릴 수 있는 ‘투자’는 노후를 위한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투자로 대박 날 수 있다.’ 어느 날 전송된 문자는 정씨의 마음을 흔들었다. 문자에 적힌 링크를 클릭하니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연결됐다. 그곳에는 자신을 ‘투자 전문가’라고 소개하는 A씨와 A씨의 조언을 듣고 투자를 한다는 투자자들이 모여 있었다. A씨는 ‘금 투자’를 권유했다. 이미 주식에서 쓴맛을 경험한 정씨는 “2주면 주식에서 본 손해를 만회할 수 있다”는 A씨의 말에 솔깃했다. 반신반의하며 100만원을 입금하고 A씨가 알려준 사이트에 들어가니 자신의 계정에 투자금이 3배로 불어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픈채팅방의 다른 투자자들은 ‘A씨의 능력이 뛰어나다’며 앞다퉈 투자금을 늘리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투자자들과 ‘언니 동생’처럼 지낼 만큼 친해진 정씨도 점점 마음이 열렸다. 그는 “1000만원 이상 투자할 생각은 없었지만 다른 투자자들이 ‘우리는 한 팀인데 너 때문에 투자를 못 한다’고 하자 주저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정씨는 대출까지 받아 5000만원을 마련해 A씨가 알려준 사이트에 입금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

 

사이트는 이튿날 먹통이 됐고, 다른 투자자들과 있던 단체대화방도 닫혔다.

 

A씨에게 “부모 같은 사람에게 이러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애원했지만 더 이상 답장은 오지 않았다. 정씨는 “사기라는 것을 알고 실신했다. 한강 물에 뛰어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괴롭다”며 울먹였다.정씨의 사례는 최근 오픈채팅방을 통해 퍼지는 ‘리딩방(투자자문) 사기’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사기의 주된 표적은 60·70대다. 이들 세대가 투자 경험이 부족하고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악용해 노후자금을 노리고 접근하는 것이다.

◆경력·인맥 내세워 투자자 현혹

 

2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리딩방 사기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 익명채팅방을 통해 투자 회원을 모집하고, 자문료를 받은 뒤 매매종목이나 매매시점 등을 안내하는 형태의 유사투자자문 사기를 말한다. 수법은 대동소이하다. 화려한 경력이나 유명인과의 인맥을 내세워 투자자를 모집한 뒤 거액의 투자금이나 수수료를 챙기면 잠적해버리는 식이다.익명채팅방은 채팅방에서 나가면 연락할 방법이 없어 피해자들이 뒤늦게 사기를 인지하고도 대처하기 힘들다.

 

이모씨도 지난달 오픈채팅방에서 알게 된 투자 전문가 B씨로부터 암호화폐 투자를 권유받았다. B씨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유명 연예인과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고, ‘연예인 OOO과 함께하는 재테크’라는 문구도 보였다. B씨 권유대로 10만원을 먼저 입금한 뒤 사이트에서 투자금을 확인하자 불과 수 분 만에 투자금이 2배로 늘어나 있었다. 이어 3000만원을 입금하자 투자금은 20여분 만에 1억6300만원으로 불었다. 이씨가 인출을 하겠다고 하자 B씨는 수수료 명목으로 추가 입금을 요구했다. 인출 수수료는 무려 40%였다. 이씨는 거액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생각에 ‘홀린 듯’ 수수료를 입금했다. 사기라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 때에는 이미 B씨와의 연락이 끊긴 뒤였다. 부랴부랴 경찰서를 찾았지만, 경찰은 한 달이 넘도록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사기는 최근 급증 추세다. 전국 소비자상담 통합콜센터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리딩방 피해 관련 상담 건수는 지난해 4분기 기준 5659건으로, 전년 동기(3122건) 대비 80% 이상 늘었다. 올해 1월에만 2025건이 접수됐다. 특히 50∼70대의 상담이 많았다.

 

◆투자·디지털 낯선 60·70세대 피해↑

 

유독 노년층 피해가 많은 것은 이들 세대의 금융지식과 디지털환경 이용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8년 성인 2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금융이해력 조사에서 60대와 70대의 금융이해력은 각 56.9점, 54.2점으로 전체 평균(62.2점)보다 낮았다. 특히 70대의 금융지식 점수는 50.2점으로 평균(65.7점)보다 15점이나 떨어졌다.

오픈채팅방이나 온라인 사이트 등의 이용이 익숙하지 않다는 점도 피해를 늘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경찰 관계자는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세대라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지점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이트가 있으니 신뢰했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이런 것이 가짜라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익명채팅방을 통한 투자 사기가 반복되고 있지만 사전에 제재할 조치는 없다. 실제 취재진이 카카오톡에서 ‘투자’와 관련한 키워드가 있는 오픈채팅방에 접속하자 투자전문가라며 사업자등록증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주소(URL)를 보내며 투자를 권유하는 곳이 많았다. 한 오픈채팅방에서는 “최근 50∼60대 주부들이 이런 투자 대화방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며 “합법적인 투자 정보를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카카오는 오픈채팅방에서 사기가 의심되는 금칙어 사용을 제한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한다는 방침이지만, 대화 내용이나 특정 사용자에 대한 관리 감독을 하기가 어렵다. 카카오 관계자는 “오픈채팅방을 통한 재테크 관련 사기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통신비밀보호법상 대화방 내용을 들여다볼 수 없다”며 “이용자의 신고가 들어오면 운영정책에 따라 조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투자 사기의 행태가 모바일 환경에서 다양해지는 만큼 관련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성훈 금융감독원 불법금융대응단 수석조사역은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대한 특별법’은 당시 성행하던 보이스피싱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법안이어서 투자정보방 사기는 해당 법망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익명 채팅방을 통한 사기는 투자자에게 실체가 있다고 믿게 만들 정도로 치밀하다”며 “투자와 관련해 문자로 홍보하거나, 100% 수익을 보장한다는 식의 과장광고는 경계하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최근 리딩방 사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응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과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는 이날 “리딩방에서의 일대일 상담 등 개별적 조언 행위도 형사처벌 대상”이라며 “리딩방 암행 점검을 확대하고 위법 사항은 신속히 수사 의뢰하는 등 단속·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권구성·이종민·강석현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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