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의 도래로 전자 상거래의 이용이 일상화되면서 택배·물류업계의 근로 환경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커지게 되었다. 이를 반영한 듯 최근 언론에는 택배 기사가 과로로 숨졌다는 내용의 기사가 유독 많이 나와 안타까움을 더하게 된다.
택배 이외 다른 직역에서도 많은 분이 여러 다양한 원인으로 생을 달리하는 현실을 날마다 접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택배업계의 모든 사망을 과로사로 단정하는 것이 과연 의학적으로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탄광 근무자에게 진폐증의 위험이 큰 것과 같이 택배 근로자들의 직업환경이 뇌심혈관계 질환의 발병 또는 악화 요인이 되고 있는지, 나아가 그 사망률과도 관계가 있는지에 대하여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쿠팡에서 3명이 심혈관계 질병으로 숨졌다. 성별, 연령별 구성을 고려하더라도 작년 말 기준 직원이 5만1000명에 달하는 쿠팡에서 허혈성 심장 및 뇌혈관 질환으로 숨진 기사의 비율은 일반 국민 대비 낮다. 2019년 기준 총인구 5171만명의 대한민국에서 허혈성 심장 및 뇌혈관 질환으로 3만5000명이나 숨졌다.
쿠팡 기사의 심혈관계 사망자 수가 적어서 통계학적 의미가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심장 질환과 뇌혈관 질환은 사망 원인 1위인 암에 이어 각각 2위, 4위에 올라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심장 및 뇌혈관 질환은 고혈압과 당뇨, 이상지질혈증, 비만, 흡연 등이 주요 원인이 돼 발병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과로를 부른다’고 지적된 근로환경 그 자체는 심장 및 뇌혈관 질환의 직접적인 발병 원인이 아니고, 나아가 사망과의 관련성은 어느 문헌에서도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 근로자의 사망 원인이 뇌심혈관계 질환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기업이 제공한 근무환경이 과로사를 유발했으며 이로 인하여 뇌심혈 관계 사망 위험이 크다는 일련의 설명은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고 사료된다.
만약 쿠팡의 근로환경에 뇌심혈관 관련 발병 요인이 있거나 과로가 일상화되어 있다면 그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일반 국민보다 높아야 한다. 하지만 통계는 정반대를 가리키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택배물류업계의 최근 사망 사례를 살펴보면 그 원인은 대부분 심혈관계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택배 노동조합 측에서는 심장 질환은 과로사의 전형적 결과이며, 숨진 이들은 뚜렷한 기저질환이 없었으므로 과로로 사망한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고인이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였고 특별히 업무가 과다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숨진 기사의 기저질환 여부 및 정확한 사인은 부검 결과를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을 것이고, 업무와의 관련성은 근로복지공단에서 판단할 문제이다. 다만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과로사로 단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직업환경의학적으로 신중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는 전문가의 심층적인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다만 택배업계의 근로환경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쿠팡은 택배물류업계에서 유일하게 직고용, 주52 시간 근무, 전담 분류인력 채용 등을 준수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택배를 맡는 근로자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있으며, 그 업무도 회사나 부서, 지역은 물론이고 배송되는 물건의 종류에 따라 직업환경이 다르다. 이런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근로환경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택배 업무는 과로를 부르고, 이는 뇌심혈관계 질환을 일으켜 사망에 이른다는 극단적인 가설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는 것은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의 관점에서 볼 때 근로자나 사업주 모두에게 불필요한 불안감을 줄 수 있다. 나아가 택배 근로자만을 위한 별도의 뇌심혈관 질환 사망 대책을 수립해야 할 웃지 못할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는 상상까지 해본다.
먼저 택배가 일반 근로자보다 과로한 업무인지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근무시간이 길고 강도가 세 그런 위험이 크다면 높다면 뇌심혈관계 질환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그러한 위험 요인은 사망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의 자료도 찾아 평가해봐야 할 것이다. 개개인이 회사에서 수행한 근무시간이나 업무 강도가 어떠한지, 기저질환은 없었는지, 건강검진 및 사후 관리는 잘 되고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김동일 한국특수건강진단협회 부회장(직업환경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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