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군이 도입한 최신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를 둘러싸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지금까지 개발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중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기술적 결함과 높은 비용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록히드마틴 F-35는 개발 기간이 지나치게 길었고 값이 비싸며 기술적 문제가 있다. 향후 60년간 유지비로 1조 달러(약 1130조 원)가 소요될 것”이라며 “미 의회와 국방부 간에 F-35 작전 운용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고 최근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도 지난 1월 “F-35의 결함이 여전히 871건에 달하고 심각한 문제도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스텔스 성능 만으로는 변화한 공중 작전 개념을 충족할 수 없다는 지적도 많다.
세계 각국이 F-35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체 기종 찾기에 나서는 이유다.
◆미국은 ‘역주행’ 유럽은 ‘미래 투자’
F-35의 본고장인 미국은 스텔스 성능이 낮은 기존 전투기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저렴한 기종을 단기간 내 실전배치, F-35의 작전 투입 비중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작전투입이 줄어들면 F-35의 운영유지 부담도 덜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찰스 브라운 미 공군참모총장은 최근 F-35를 값비싼 슈퍼카에 비유하면서 “출퇴근용으로 페라리를 타지는 않는다. 최고 사양의 전투기를 낮은 수준의 전투에 투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근 미 공군이 보잉으로부터 1호기를 인수한 F-15EX는 이같은 기류가 반영된 기종이다. 미 공군은 228억 달러(약 26조 원)를 투입해 F-15EX 144대를 도입할 예정이다.
F-15EX는 무장탑재량이 F-35A보다 50% 많은 13.4t에 달한다. 미사일이나 폭탄을 최대 24발까지 장착할 수 있다.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비롯한 각종 첨단 전자장비도 갖췄다.
스텔스 성능은 없지만, F-35보다 운영유지비가 저렴하다. F-15는 한번 출격할 때마다 운영유지비가 2만2000 달러(약 2490만원)지만 F-35는 3만6000 달러(약 4071만원)가 소요된다.
비용 부담이 적은 F-16 대체 기종 논의도 본격화할 조짐이다. 첨단 가상환경 프로그램을 사용해 설계 기간을 대폭 단축하고, 기존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면 F-15EX와 유사한 4.5세대 전투기를 단기간 내 개발·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은 전투기 기술을 기존의 4세대에서 6세대로 급속하게 발전시키는 ‘퀀텀 점프’(대약진)를 구상 중이다.
영국은 최근 새로운 국방백서를 발표하면서 에어버스가 제작한 타이푼 전투기 초기형 24대의 퇴역을 결정했다. 실전배치된 지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전투기가 일선에서 물러나는 셈이다.
퀸 엘리자베스급 항모 2척에 탑재되는 F-35B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도 60~80대로 당초 계획보다 축소될 전망이다.
대신 영국은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장착하는 등 타이푼 전투기 후기형 기체를 성능개량한다.
스피어-3 공대지 미사일도 새로 투입된다. 유럽 방산업체 MBDA가 만든 스피어-3 미사일은 길이가 1.8m에 불과할 정도로 작지만, 사거리는 140㎞가 넘는다.
공격력이 부족한 F-35B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영국은 퀸 엘리자베스 항모에 탑재할 F-35B를 중심으로 스피어-3 운용능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영국은 BAE 시스템스를 중심으로 롤스로이스 등이 추진중인 템페스트 6세대 전투기 개발에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2030년대 중반에 실전배치될 템페스트는 음속의 5배가 넘는 속도로 날아가는 극초음속미사일과 레이저 등을 장착할 수 있다. 비행중인 군집 드론 통제 능력도 갖췄다.
프랑스와 독일은 2040년 배치를 목표로 6세대 전투기 제작을 본격화하고 있다. 다만 일감 배분과 일자리 유지 등을 둘러싸고 양국이 이견을 보이고 있어 독자적인 6세대 전투기 개발로 프로그램이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
◆자국 실정에 맞는 대안 수립…한국은
F-35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계획들은 자국 실정에 부합 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은 수백건의 결함을 안고 있는 F-35를 스텔스 기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작전에만 투입이 가능한 상황이다. F-16, FA-18, A-10의 임무를 모두 수행하려면 천문학적인 운영유지비가 필요하다.
F-35 개발에 매달리는 동안 F-15, F-16 노후화는 심해졌고, 6세대 전투기는 등장 시점조차 가능하기 어렵다. 미국으로서는 기존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전투기를 빠르게 만드는 방안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문제 등으로 5세대 전투기를 만들지 않았던 유럽은 5세대 전투기 개발에 역량을 쓰지 않은 덕분에 미국보다 한발 앞서 6세대 전투기 개발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2030년대 6세대 기종 개발이 성공하면 F-35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부족한 공격력은 영국처럼 기존 타이푼 전투기 일부를 개량, 장거리 타격 능력을 갖춰 보완하면 된다.
2020년대부터 F-35A 40대를 운용할 한국은 미국의 F-35와 유사한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공군은 F-15K 성능개량을 추진중이다. 2021~2025 국방중기계획에도 반영된 F-15K 성능개량 사업은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등을 장착, ‘먼저 보고 먼저 쏘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이를 통해 F-15K를 4.5세대 전투기로 성능을 향상시켜 F-35A와 함께 전략적 억제능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보잉 등이 추산한 F-15K 성능개량비는 경항모 탑재 F-35B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와 헬기 등 함재기 20여대 도입 추정비용(3조원)보다 50% 이상 비싼 수준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공군 내 반발 기류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방산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방산업체의 제안은 군 요구성능(ROC)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자동차 살 때 풀옵션을 요구하면 가격이 껑충 뛰는 것처럼 ROC가 높으면 비용도 상승하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고성능을 지닌 F-15EX의 미 공군 도입 가격은 대당 8000만 달러(약 875억 원)로 알려져 있다. F-35A와 별 차이가 없다.
일각에서는 한국형전투기(KF-X)와 현재 운용중인 FA-50을 대안으로 지목한다.
단기간 내 장거리 정밀타격능력을 갖춘 항공무기를 KF-X에 다수 탑재, 강력한 공격력을 조기에 확보하면 적은 비용으로 전력 공백을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F-35A는 공중전처럼 스텔스 기능을 극대화하는 작전에 투입하고, 장거리 공격용 무장을 다수 탑재한 KF-X는 지상공격이나 성능이 낮은 전투기를 상대하는 작전을 맡으면 공군 작전 효율성 극대화도 가능하다.
KF-X의 공격력 강화를 추진하면서, 장기적으로는 6세대 전투기 개발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 시장에 신제품을 출시하는 동시에 다음 세대를 위한 상품 개발에 뛰어드는 민간 기업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상군 근접지원에 국한된 FA-50에도 중거리 공대지미사일을 탑재하면 낮은 비용으로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해 독일의 타우러스 시스템즈는 FA-50에 탑재 가능한 타우러스 350K-2(사거리 600㎞ 이상)를 한국과 공동개발할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KF-X 등의 무장을 조기에 강화해 F-35의 문제점에 대비하면서 장기적으로는 6세대 전투기 확보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