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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값만 있으면 돈 벌어요”… ‘스니커테크’ 시대 [이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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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10 08:00:00 수정 : 2021-04-10 11: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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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재테크 수단 된 ‘리셀’

하이 리턴, 로우 리스크
한정판 신발 웬만하면 가격 안 떨어져
시드머니도 10만~20만원이면 충분해
12만원짜리가 210만원 거래 ‘대박’도
가격 떨어져도 버티다 보면 다시 올라

수익률 보장에 구매 경쟁 치열 ‘단점’
8000족에 응모자 500만명 몰리기도

어떤 제품이 뜨나
유명 디자이너·브랜드 컬래버레이션
명품 이미지에 발매 동시에 가격 급등
연예인들과 협업한 상품도 인기몰이
숨겨진 스토리 있을 땐 시세 요동쳐

리셀시장 2025년 60억弗 규모 예측
국내서도 온라인 플랫폼 잇따라 출시
나이키 피스마이너스원

경기도 화성에 사는 직장인 이모(36)씨의 부업은 ‘리셀러’(상품을 웃돈을 받고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사람)다. 중학교 때부터 신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한정판 신발을 사 모으는 ‘컬렉터’를 넘어서서 이제는 신발을 되팔아 이익을 남기는 리셀러가 됐다. 이씨의 창고에는 운동화 마니아들이라면 군침을 흘릴 만한 한정판 신발들이 가득하다. 이씨는 “최근 신발을 정리하면서 세어보니 각종 신발을 합쳐 120족은 있는 것 같다. 이를 최근 시세로 계산하면 8000만원 정도 된다”면서 “매달 출시되는 신발의 시세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수입의 편차가 좀 있지만, 한 달 평균으로 보면 약 200만원씩은 수익을 내고 있다. 주식 투자도 하고, 가상화폐 투자도 하고 있지만, 신발 리셀이 가장 안정적인 재테크 수단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과거 신발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스니커테크’(스니커즈+재테크)가 MZ(밀레니얼 세대+Z세대)세대의 대세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소수 마니아들만 한정판 운동화에 열광했다면, 이제는 10대는 물론 마이클 조던의 전성기를 눈으로 직접 보며 ‘에어 조던’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40~50대 남성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웃돈을 얹어서라도 한정판 운동화를 구입해 신으려 한다. 이에 더해 이를 재판매해 시세차익을 얻는 ‘리셀’(re-sell)까지 확산하는 모양새다. 기업들도 리셀 시장의 급성장을 포착해 리셀 거래 온라인 플랫폼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스니커테크가 매력적인 이유? ‘하이 리턴, 로우 리스크’

스니커테크가 10대들에게까지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는 것은 가격부담이 다른 투자에 비해 덜하기 때문이다. 주식이나 가상화폐를 통해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는 종잣돈이 100만원 이상이 필요하지만 스니커테크는 10만~20만원의 신발값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고등학생 전모(17)군은 “요즘 값이 오를 만한 한정판 신발의 발매 정보가 뜨면 반 전체가 온라인 응모에 참가하기 위해 들썩인다”면서 “응모에 당첨된 친구가 리셀을 통해 돈을 벌면 햄버거를 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한정판 신발은 ‘하이 리턴, 로우 리스크’의 특징을 갖고 있다. 실패할 확률이 적고 투자금에 비해 수익이 크다. 실례로 지난해 5월 나이키가 미국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앤제리스와 함께 출시한 스니커즈 ‘나이키 X 벤앤제리스 SB 덩크 청키 덩키’는 발매가가 12만9000원이지만 발매한 지 사흘 만에 1530% 급등한 210만원에 거래됐다.

나이키 밴엔제리스 덩크

이처럼 급등하는 신발은 소수이지만 대부분의 한정판 신발들은 웬만하면 발매가 이하로는 가격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구매만 한다면 대부분 이익을 남길 수 있다.

이씨는 “현재 보유한 신발 중 대다수는 발매 당시 응모를 통해 구입한 신발보다는 리셀로 구입한 것이다. 웃돈을 주고라도 신발을 산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산 가격보다 더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식은 호재에는 가격이 올랐다가도 악재엔 가격이 떨어지기도 해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지만 한정판 신발은 못해도 ‘본전’”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운동화도 유행이 돌고 돌기 때문에 발매가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기다리면 언젠가는 다시 시세가 오르기 때문에 반드시 차익을 남길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대로라면 너무나 완벽한 재테크 수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남의 돈 버는 게 어디 쉽겠는가. 주식이나 코인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는 반면 한정판 신발은 돈이 있어도 구입 경쟁이 너무 치열해 상품을 얻기 쉽지 않다는 게 단점이다.

지난해 7월 나이키와 명품 브랜드 디올이 협업해 내놓은 ‘에어 조던1 디올’은 전 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8000족이 풀렸는데 응모자는 무려 500만명에 달했다. 무려 625대1의 경쟁률이다. 270만~300만원에 발매된 이 신발은 리셀가가 1500만~2000만원까지 뛰었다. 경쟁을 뚫고 살 수만 한다면 엄청난 수익률은 보장하는 게 스니커테크다.

한정판 신발을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입하는 것이다. 선착순으로 구입한다는 방침이 내려지면, 이를 사기 위해 3박4일 동안 매장 앞에 줄을 서는 ‘캠핑’이 이뤄지기도 했다. 대게 1인 1족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줄서기 아르바이트가 등장하기도 한다. 리셀러 장모(33)씨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장 이후 캠핑을 유발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 발매는 거의 사라진 상태”라고 전했다.

오프라인 매장 발매가 거의 사라지긴 했어도 여전히 한정판 신발이 오프라인 매장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소수의 마니아들은 주요 나이키 매장 개점 전에 줄섰다가 개점과 동시에 매장을 둘러보는 경우가 있다는 게 리셀러들의 설명이다.

오프라인 발매는 온라인 발매로 대체되는 분위기다. 온라인 발매는 선착순과 무작위 추첨을 통해 구매자격을 부여하는 ‘래플’로 나눌 수 있다. 선착순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통해 특정인들이 독식할 수 있다는 단점 때문에 그 비율이 적어지고 있다. 래플이 대세가 되면서 리셀러들은 주변 지인들의 명의를 빌려 수십개의 ID를 돌려 응모하는 방식으로 한정판 신발을 구입하기도 한다. 온라인 발매가 대세가 되면서 일부 리셀러들이 온라인 사이트의 구조를 뚫고 침투해 발매하기도 전에 구입하는 등의 다양한 편법까지 등장한다. 이렇게 편법까지 등장하는 이유는 역시 돈이 되기 때문이다.

나이키 사카이

◆어떤 신발이 돈 되나

모든 신발이 스니커테크의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정판 신발이라 해도 수익률이 천차만별인 것은 스니커테크 역시 주식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명 디자이너나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한 신발들은 예외없이 가격이 급등한다고 보면 된다. 디올과 에어조던1의 ‘콜라보’는 디올이라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유명세가 가격 급등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 치토세 아베의 브랜드 ‘사카이’와 나이키가 협업한 나이키-사카이 LD 와플도 사카이의 독특한 디자인이 반영되며 발매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발매가가 17만9900원이었던 이 신발은 발매하자마자 재판매가가 80만~90만원에 형성됐다.

디자이너가 아닌 연예인 등 유명인과 협업한 상품 역시 발매와 동시 가격이 폭등하기도 한다. 국내에 스니커즈 리셀 문화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 역시 유명인이 연관되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힙합그룹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으로, 그가 만든 브랜드인 ‘피스마이너스원’과 나이키의 에어포스1이 협업해 출시한 한정판 운동화 ‘파라노이즈’ 덕분에 리셀 문화가 주목받게 됐다는 게 리셀 업계의 정설로 통한다.

파라노이즈의 블랙 앤 레드 컬러는 지드래곤의 생일이 8월18일인 것에서 착안해 818족만 한정판으로 발매됐다. 21만9000원에 출시된 이 신발은 재판매가가 350만~400만원대에 형성되기도 했다. 10만켤레가 발매된 블랙 앤 화이트 컬러 중 지드래곤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100켤레는 중고가가 1300만원까지 뛰어오르기도 했다.

나이키 디올

이처럼 신발 가격이 비싼 이유는 지드래곤이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패션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리셀러 이씨는 “가요계에서의 위상이 이제 빅뱅보다 BTS가 더 높을지 몰라도, 패션 그중에서도 스니커즈 세계에서는 지드래곤의 위상이 독보적이다. 그가 협업해 만든 신발은 물론이고, 그가 신은 사진만 노출돼도 그 신발은 곧바로 시세가 확 뛴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밸런타인데이를 맞이해 나이키가 핑크-레드 컬러로 발매한 에어포스1은 선착순으로 발매된 뒤 리셀시장에서 그리 큰 인기가 없었지만, 지드래곤이 인스타그램에 이 신발의 사진을 올린 직후 곧바로 리셀시장에서 15만원 이상 가격이 뛰어오르기도 했다.

에어조던 운동화 열풍을 이끈 것도 지드래곤이었다. 방송에 그가 신고 나온 에어조던은 ‘지디조던’이라고 불리며 리셀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때문에 에어조던 운동화를 오랜 기간 수집해온 것으로 유명한 래퍼 데프콘은 한 방송에서 지드래곤을 향해 “지용아, 넌 돈 많잖아. 다른 종목 좀 신어. 너 때문에 신발을 못 구하겠어”라고 농담섞인 푸념을 하기도 했다.

신발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거나 스타의 움직임에 따라서도 가격은 오른다.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카와이 레너드가 지난해 나이키와 계약을 종료하고 뉴발란스의 모델이 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자 레너드와 나이키가 마지막 협업한 에어조던33의 가격이 발매가 20만원대에서 150만원 이상까지 뛰어오르기도 했다.

크림 리셀

◆리셀 시장을 잡아라

이처럼 한정판 운동화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리셀 시장도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코웬앤코’는 2019년 전 세계 스니커즈 리셀 시장을 20억달러 규모로 추산했는데, 2025년에는 6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국내 스니커즈 리셀 시장은 전 세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5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한국은 MZ세대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패션을 뽐내는 인증샷 문화가 활발한 데다 저축보다는 소비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어 국내 스니커즈 리셀 시장은 세계 시장보다 더욱 급속한 성장이 예상된다.

기업들도 리셀 시장이 돈이 된다는 것을 파악하고 뛰어들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온라인 리셀 플랫폼은 네이버의 자회사 ‘스노우’가 만든 ‘크림’이다. 크림 이전에도 아웃오브스탁이나 서울옥션블루가 운영하는 ‘엑스엑스블루’ 등이 있었지만, 크림은 지난 3월 출격한 뒤 빠르게 리셀 시장을 점령했다. 네이버라는 모회사를 둔 덕분에 파격적인 수수료 할인과 네이버포인트 환급이 가능하고, 회원수 80만명을 넘기며 스니커즈 대표 카페로 자리 잡은 ‘나이키마니아’에 대한 협찬 등 대대적인 마케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크림은 매월 전월 대비 평균 121%의 높은 거래 성장률을 기록하며 출시 1년 만에 누적 거래액 2700억원을 돌파했다. 리셀러 박모(35)씨는 “크림에서 거래되는 신발량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크림에서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스니커즈 리셀 시장도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패션 플랫폼 업체 무신사도 지난해 7월 스니커즈 중개서비스 플랫폼 ‘솔드아웃’을 문열며, 크림이 독주하던 리셀 시장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KT도 지난해 10월 자회사 엠하우스를 통해 한정판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 ‘리플’ 서비스를 시작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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