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기는 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병력과 물자를 보낼 때 가장 먼저 투입되는 장비다. 선박이나 트럭과 달리 대륙과 바다를 쉽게 넘나들며 지원병력과 군수품을 빠르게 옮길 수 있어 세계 각국에서 널리 쓰인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지닌 미국은 수송기를 군사적, 정치적으로 활용하는데 능하다. 지난 6일 미 연방 상원의원단은 미 공군 C-17 장거리 전략 수송기를 이용해 대만을 방문했다.
병력과 장비 수송이 목적인 C-17 수송기가 정치인들을 태운 채 대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놓고, 대만을 압박하는 중국에 미국이 ‘경고’를 보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최대 75t 화물 싣고 전 세계 누벼
1995년 미 공군에 실전배치된 C-17은 미군의 공중수송 체계를 혁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체 신뢰성이 높고 정비가 쉽다.
미군이 사용하는 군수품은 대부분 수송이 가능하며, 다수의 부상자를 싣고 후방의 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다. C-17이 서방 세계를 대표하는 수송기로 꼽히는 이유다.
실제로 C-17은 최대 75t의 병력과 화물을 싣고 4000~1만㎞를 비행하는 대형 수송기지만, 길이 1000m, 폭 28m짜리 활주로에서도 이륙이 가능하다. 화물을 가득 채운 상태에서도 800여m 거리만 확보되면 착륙할 수 있다.
전선 가까이에 있는 간이 비행장까지 병력과 군수품을 수송할 수 있어 전선에 있는 군대에 신속한 물자 보급을 보장한다. 수송하는 장비의 종류도 다양하다. 스트라이커 차륜형 장갑차와 M-2 보병전투차는 물론 M-1 전차와 AH-64 공격헬기까지 수송할 수 있다.
미국이 자국 상원의원들의 대만 방문에 C-17을 공개적으로 투입한 것에 대해 예사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C-17의 성능에 기인한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미군이 최단 시간 내 병력과 무기를 분쟁지역에 투입하는데 필수적인 C-17이 대만에 등장했다.
대만해협을 둘러싸고 양안 간 긴장이 고조되면 미군이 언제든 대만에 전개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대만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중국에 맞서려는 조치라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대만 입장에서도 미군의 신속 대응 능력을 상징하는 C-17 수송기가 나타나면 중국의 침공이 현실로 나타날 때, 미국이 실제로 대만을 도울 것인지를 둘러싼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C-17은 2003년 이라크전쟁 당시 공정부대원 1000여 명을 싣고 공수작전을 실시했다. 아프간 전쟁을 비롯한 대테러전에서도 미군 특수부대와 공정부대가 반나절 만에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와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면, 공정부대나 무기, 군수품 등을 실은 C-17이 곧바로 날아와 대만군을 도울 수 있다. 대만군으로서는 C-17의 공개적 등장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중국 입장에서는 C-17의 대만 투입이 반갑지 않다. 미군의 전략수송기사 대만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7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의원들이 대만을 방문해 대만 지도자를 만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중히 위반했다”며 “중미 관계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더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C-17 수송기가 대만 공항에 3시간 정도 머문 것을 두고 군수품 수송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공급할 때는 의회나 정부 기관의 승인 절차가 공개됐다는 점에서 실제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많다.
C-17 수송기에 맞서는 중국의 카드는 Y-20 수송기다. C-17과 매우 유사한 특성을 지닌 Y-20은 국제안보와 해적 소탕, 대(對) 테러 등에서 중국군을 지원하는 핵심 전력이다.
2016년 중국군애 처음 인도된 Y-20은 이미 검증된 기술을 토대로 제작돼 시행착오 가능성을 최대한 낮췄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국면에서 파키스탄, 미얀마, 라오스에 구호물자를 실어날랐다.
Y-20의 단점은 엔진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Y-20은 러시아산 D-30 엔진을 사용한다. 이 엔진을 장착한 Y-20 비행거리는 7500㎞, 적재중량은 55t이다. 58t에 달하는 중국 육군 99A 전차를 운반할 수 없다.
따라서 중국은 D-30엔진보다 적재중량을 20% 높인 자국산 WS-20 엔진을 개발해 시험 중이다. WS-20엔진은 적재중량을 66t으로 향상시켰으며, 중간 급유 필요없이 무거운 장비를 장거리 수송할 수 있도록 비행거리도 일정부분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군 ‘손발’ 역할 맡을 대형수송기는
유엔평화유지군(PKO)을 비롯한 해외 파병 소요가 늘어나고 있는 한국군도 장거리 수송에 쓰일 대형수송기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미국은 C-17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C-17은 의약품 등을 미국으로 운반하는데 쓰였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자 미국은 C-17을 투입해 이탈리아로부터 코로나19 진단키트에 쓰이는 길이 20㎝짜리 의학용 면봉 수백만개를 들여왔다.
미국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할 때도 C-17은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현지에서 사용할 대통령 전용차량 ‘비스트’와 전용헬기 ‘마린 원’, 경호에 필요한 장비를 운반한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에도 C-17이 투입돼 ‘마린 원’과 경호장비를 실어날랐다.
C-17은 한국군에도 친숙한 기종이다. 지난달 대구 공군기지에서 실시된 제4회 한미 연합 공수화물 적하역 훈련에서 미 공군은 C-17을 투입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날아온 C-17은 우리 군이 운용 중인 C-130 수송기 4대가 할 수 있는 작전을 혼자서 수행할 수 있다.
C-130과 CN-235 전술수송기를 보유한 한국 공군은 해외 파병 등 장거리 수송에 KC-330 공중급유수송기를 활용하고 있다.
2019년 1월 전력화된 KC-330은 민간 상업용 여객기 A330-200을 기반으로 한 기종이다. 처음에는 공중급유 능력이 주목을 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화물, 병력 수송 능력이 각광받았다.
지난해 6월 미국 하와이에서 6.25 전쟁 전사자 유해를 송환했던 KC-330은 지난 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제공하기로 약속한 얀센 백신 101만여회 분을 미국에서 수송해왔다.
미국 본토를 재급유 없이 비행하면서 물자를 실어나를 수 있는 공군 내 유일한 기종이라는 장점이 주목을 받은 결과였다는 평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KC-330의 주 임무는 한반도 유사시 공중급유를 통해 공군 전투기의 체공시간을 늘려주는 역할이라는 점에서 물자 및 병력 수송을 담당할 대형수송기가 따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방위사업청은 지난 4월 제135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대형수송기 2차 사업을 국외 구매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2026년까지 4800억 원이 투입된다.
후보기종으로는 미국 록히드마틴 C-130J-30과 유럽 에어버스 A400M, 브라질 엠브리어 KC-390이 거론된다.
방위사업청측은 사업 방식과 관련, “국외 구매로 사업을 추진하되, 국내 방산업체 육성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국내 업체가 부품 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컨소시엄 구성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포함했다”고 밝힘에 따라 국내 업체의 사업 참여도 이뤄질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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