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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삶의 은유, 숭고한 노동으로 피어나

입력 : 2021-06-24 19:30:00 수정 : 2021-06-24 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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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조 추상화의 대가’ 정상화 개인전

천에 고령토 바르고 말리는데만 일주일
고령토 뜯겨진 자리를 물감으로 메워
적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걸리는 작업
아흔 앞두고 60년 화업 돌아보는 전시

고향 마산 앞바다 그린듯한 푸른격자화
무수한 백색들이 요동치는 백색격자화
치열한 모더니즘, 반복되는 삶과 같아
‘2019-10-15’(2019).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고무 골무를 낀 손가락이 캔버스에 붙어버린 물감 딱지를 고집스럽게 떼어낸다. 바들바들 떨리는 89세 노화백의 손은 그렇게 캔버스 위에서 물감의 접착력과 겨룬다. 늙은 손가락의 움직임은 비록 느리지만 오랜 시간을 버티며 산 인간의 집념이 담겼다. 굽은 등과 어깨는 얼핏 캔버스의 무게를 버티기에도 힘에 부쳐 보이나 손가락 끝에 모든 의지를 집중한 증거로도 보인다. 인간의 문명도 결국은 엄지와 검지가 이룩한 것이다. 화가 정상화의 끈질긴 손가락은 끝내 무엇보다 단단하게 다져진 평면을 만들어내 모더니즘의 탄생을 시현한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는 정상화 화백의 개인전 ‘정상화’전이 한창이다. 그의 이름 석 자가 곧 제목인 이번 전시는 아흔을 앞둔 그의 60년 화업을 돌아보는 전시다. 그는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군으로 자리 잡고 있는 ‘단색화’의 대표주자로 불린다.

전시의 정점에는 단연 그의 상징인 단색조 추상 ‘격자화’들이 내걸렸다. 격자화는 정상화 화백이 이룬 독특한 방법의 결정판이다. 정 화백은 제작된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천에 흰 고령토부터 바른다. 공사 현장의 미장이처럼, 그는 3~5㎜ 두께로 고령토를 바르고 말리는 데만 약 일주일을 쓴다. 이제 천을 뒤집어 뒷면을 마주한 그는 자와 연필을 든 설계자가 된다.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선을 긋는다. 손톱만한 크기의 격자무늬가 생기며 바둑판 모양의 스케치가 그려진다. 선을 따라 미장용 칼의 모서리로 꾹꾹 눌러나간다. 고령토가 말라붙어 있던 캔버스 천 앞면이 선을 따라 쩍쩍 갈라진다. 그는 그제서야 나무 틀에 천을 대고 캔버스를 만든다. 커다란 천을 익숙하게 다루는 그는 유능한 재단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캔버스 앞에 선 화가는 다시 문구용 칼과 손으로 갈라진 틈을 따라 고령토를 뜯어낸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는 다시 미장이가 돼 고령토가 뜯겨진 자리를 아크릴 물감으로 칠하며 메운다. 물감이 마르면 다시 뜯어내고 또 덧칠하기를 이어간다.

‘무제 95-9-10’(1995)

열 번쯤 반복했을 때, 비로소 한 작품이 완성된다. 적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이 걸린다. 그는 조수도 쓰지 않는다. 완강하고 꼬장꼬장하게, 혼자서 스스로 화면을 뜯어내고 메운다. 완성된 화면은 하나의 톤이면서 복합적이고 깊은 색채를 갖는다. 하나의 톤으로 펼쳐지는 화면은 완전한 평면임을 강조하는데, 동시에 뜯어내고 메운 흔적이 미세하게 입체적인 화면을 만든다. 결국 단순하게 규정하기 어려워진 단색의 화면은 문장으로 표현된다. 가령 푸른 격자화는 ‘정 화백의 고향 마산 앞바다를 보는 듯한 색’으로, 미색의 격자화는 ‘땀에 전 세월이 녹아 있는 삼베옷의 회색빛’으로 불린다. 정 화백은 백색 격자화 작품을 두고 “무수한 백색들이 춤추고, 장난하고, 요동치고 있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탄생한 그의 작품은 노동 집약의 산물, 고도의 정신적 인내의 상징, 반복되는 삶의 은유 등으로 해석돼 왔다. 정상화만의 콜라주(붙이기)와 데콜라주(떼어내기)의 반복 기법에 대해 영국 출신 평론가 사이먼 몰리는 “정상화의 표면은 훼손과 보수가 이중으로 함께 일어나는 장소”, “(전후세대가 가진) 분노와 좌절을 표출하는 곳이자 동시에 화해와 보상을 찾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참을성 있고 애정어리게 수리되고 복원되지만 이 또한 성공적일 수 없어서 끊임없이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정 화백이 스스로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밝힌 에피소드는 격자화에 담긴 치열한 모더니즘 정신과 닮은 면이 많다. 그는 1967년 상파울루비엔날레 참석차 브라질에 갔을 때, 노동자들이 일정한 크기의 작은 사각형 돌로 대로를 메우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정상화 화백

“석공들이 돌을 잘게 잘라. 왜 저러고 있나 한참을 서서 구경을 했지. 그 돌을 전부 넓은 바닥에 꽂고 위에 모래를 덮어 길을 만드는 거야. 이야 참 대단하다. 저게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거구나. 그 느낌이 참 좋다 싶었어. 격자를 논리화와 현대화의 결과로 인식하고, 변화와 실험성을 (실선을 따라 고령토가 갈라지도록 캔버스를) 접고 꺾는 행위에 연결했지.”

이번 전시 현장에서 눈에 띄는 건 거장의 작품 뒷면을 노출시킨 독특한 배치 아이디어다. 작품이 걸린 벽면의 뒤쪽으로 가면 벽면 일부가 뚫려 있다. 보통은 벽에 가려져 있을 수밖에 없던 캔버스 뒷면이 그대로 보이게 된다. 이때 관람객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작가가 자를 대고 질서 있게 그어놓은 실선들. 바로 캔버스 뒷면에 그려진 격자화의 밑그림이다. 정상화 화백은 자신의 그림이 완성품의 화면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라고 하곤 한다. 관람객이 격자화 제작의 정체를 눈치채게 하는 것은, 어쩌면 작가가 강조해온 ‘과정’으로서의 작품을 온전히 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관람법이다.

‘무제 07-09-15’(2007)

이외에도 구상화를 그리던 대학을 마치고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초기 작품을 보는 것도 흔치 않은 기회다. 초기 추상화는 납작하게 물감을 누른 모습에서 격자화의 전조를 발견할 수 있다. 전후세대가 봤던 폐허가 된 삶의 터전들을, 그는 그렇게 납작하게 눌린 물감, 물감이 꺼져내려 바닥이 드러난 캔버스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의 가장 주요한 의미는 단색화를 넘어 정상화의 독보적 위상을 분명히 조명하는 것이다. 흔히 서구 추상화 운동을 한국적으로 받아들인 움직임으로서 단색화 작품군으로 거칠게 분류되지만, 그는 ‘단색화’ 화가로 불리길 거부한다. 이번 전시 설명에서 그의 대표작들을 굳이 ‘단색조 추상’이라고 표현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광수 평론가는 “그의 단색은 오랜 시간 발효된 독자의 방법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이념의 공유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며 “외부에서 오는 어떤 영향보다 내면의 숙성에 집중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9월26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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