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한·러 수교 31주년… 러시아는 한국에 어떤 의미인가 [한반도 인사이트]

입력 : 2021-07-07 06:00:00 수정 : 2021-07-07 14:11:57

인쇄 메일 url 공유 - +

북핵협상 메신저·경제협력 파트너로 전략적 가치 중대

러, 세계 절반의 비핵화 관리해본 경험
북한에 대해 어느 나라보다 이해도 높아
2019년 북·미 대화 때 한국 중재에 우호적
북핵협상서 러시아 가치 적극 활용해야

10위 교역국이지만 대형사업 실적 낮아
실질 협력보다 정치적 목적에 치중 경향
작은 사업부터 성사시켜 신뢰 구축해야
경협서 북한 과감하게 분리시킬 필요도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6월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역사적으로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쳤고, 한국과 교류도 많은 주변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흔히 우리는 ‘4강(强)’으로 부른다. 그중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한반도 정세와 경제 협력에 매우 중요한 나라였지만, 현재는 다른 세 국가에 비해 우리가 체감하는 무게감이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북핵 협력, 경제 협력 등에서 한반도에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는 전에도, 지금도 작지 않다.

2020∼2021년은 한·러 상호 수교의 해다. 2020년 9월30일이 한·소련이 수교를 맺은 지 30주년이 되는 해였고, 양국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해 교류를 계획대로 진행하지 못한 점을 고려해 올해까지 한 해 연장했다. 1990년 6월 노태우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지 31년, 러시아는 오늘날의 한국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북핵 문제에서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

 

한반도 입장에서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는 첫째 북핵 문제에서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주러대사관 정무참사관 등을 지내고 북핵 실무 경험을 가진 장호진 전 청와대 외교비서관은 6일 통화에서 “러시아가 오늘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크지는 않지만, 북한에 대해 어느 나라보다 잘 안다”며 “한국으로서는 북핵협상에서 메신저로서 러시아의 가치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시스템상 북한과 공유하는 점이 많은 만큼 북한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남·북·미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북한은 협상에서 한국과 미국에 직접 얘기하기 껄끄러운 내용들을 러시아를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게 협상 경험자들의 설명이다. 정부 내엔 러시아가 2018, 2019년 북·미 대화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중재 노력에 우호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장 전 비서관은 “북핵 폐기에 있어서도 중국보다 러시아가 좀 더 원칙적 입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 북한 핵문제가 발생했을 때 북한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도록 한 것이 러시아(소련)라는 것이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대사는 “러시아는 세계 절반의 비핵화를 관리해본 경험이 있는 나라”라며 “러시아가 북핵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 갈등 관계인 미·러 관계에도 운신의 폭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과거 비핵화 관리 경험을 활용해 러시아를 비핵화의 명분 자체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재는 북핵 문제가 미·러, 미·중 대립 관계의 틀에 묶여 있어 이 두 관계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러시아만은 여기서 벗어나도록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러시아는 북핵 문제의 최종 목표와 해결 방안에선 미국과는 추구하는 바가 다른 만큼 우리 정부로선 전략적 활용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북한의 핵개발이 미국의 위협 때문이라는 북한 주장에 동의하며, 점진적(incremental) 비핵화를 추구하는 북한의 입장에 동조한다.

◆한·러 경제 협력의 딜레마

 

북핵 등 정무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러시아의 관여가 줄어들면서 최근 한·러 협력의 주요 논의는 경제 분야에 집중된다. 이와 관련해서도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 외교가의 인식이다.

 

경제 분야에서도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는 역시 북한과 연계되는 경우가 많았다. 남북 협력에 관심이 많은 문재인정부는 신북방정책을 통해 남·북·러 경제 협력을 의제화했고, 여권 대권주자들도 저마다 이를 계승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지만 남·북·러 협력구상은 진보정권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박근혜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대륙과의 연결과 그 과정에서 북한의 개혁·개방 유도를 도모하려는 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정권마다 러시아와의 거창한 협력 구상을 내놓은 것에 비해 성과가 작다는 것이다. 한·러 교역은 2019년 기준 223억달러 규모로 러시아는 한국의 10위 교역 대상국(수출 대상국 15위, 수입 대상국 9위)이지만, 대형 프로젝트는 성사 실적이 낮다.

 

전문가들은 한·러 협력이 실질보다 정치적 목적과 구호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위 전 대사는 “한·러 협력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철도, 전력망, 가스망 등의 거대 프로젝트는 경제성이 낮아 기업도, 정부도 유인을 갖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작은 프로젝트라도 성공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찾아 성과를 쌓고, 신뢰를 구축해 나가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장 전 비서관은 러시아와의 협력에서 북한을 과감하게 분리시킬 것을 제안했다. 한·러 간의 협력이 남북관계나 북한 문제에 종속되면서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러시아 전문가인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은 “2014년 우크라이나 내전 이후 미국의 대러 제재로 국내 기업 사이에서 러시아 진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러시아 진출 한국 기업들의 성과는 오히려 높았다”며 지난달 미·러 정상회담 이후 분위기 반전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한·러 관계는 미·러 관계에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2018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은 러시아 월드컵을 참관하면서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난 바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3월 방한한 자리에서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푸틴 대통령이 방한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아직 양국 간에 구체적인 조율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차주영 '시크한 매력'
  • 차주영 '시크한 매력'
  • 수지 '청순 대명사'
  • 에스파 윈터 '완벽한 미모'
  • 한소희 '오늘도 예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