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억압’ 위헌 소지에도 與 밀어붙이기 나서
정부와 여당이 언론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언론관련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대표적인 내용이 언론보도를 대상으로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다. 작년 6월 더불어민주당의 정청래 의원이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이어 9월 법무부가 징벌적 손해배상을 확대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언론사를 제외하지 않아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단체가 이에 강력히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는 어제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을 포함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3건을 전체회의에 상정했다.
여론은 언론을 상대로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우호적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허위·조작 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에 응답자의 80%가 찬성했다고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여론은 이해할 수 있다. 일반인은 언론의 자유라는 추상적 가치보다 가짜뉴스에서 발생하는 구체적 폐해를 더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법학자를 대상으로 조사할 경우 동일한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다. 지난 5월 7일 한국언론법학회가 ‘언론법학자, 저널리즘의 길을 묻다’란 주제로 연 학술대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상당히 많이 나왔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과잉규제이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크고, 바람직하지 않다. 비교법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허위의 언론보도로 발생하는 피해에 대하여 다양한 구제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언론사의 오보로 타인의 명예가 훼손되면 민사상뿐만 아니라 형사상 책임을 묻는다. 형사 명예훼손제도는 전 세계적으로 폐지되는 추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경우(형법 제307조 제2항)뿐만 아니라 사실을 적시한 경우(동법 제1항)에도 명예훼손죄가 성립된다. 정보통신망법도 유사한 형사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기자가 명예훼손죄로 구속되기도 하고, 처벌받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2014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불구속기소는 외교문제가 되기도 했다. 명예훼손죄에 대한 위헌 여부가 문제되자, 헌법재판소는 3월 25일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취지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만약 언론을 대상으로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할 경우 형사처벌조항은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 형사처벌이 유지되고 있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것은 언론에 대한 과잉규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보화 사회에서 허위·조작 가짜뉴스의 확산은 큰 문제이다. 이로 인해 명예가 훼손되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나오고, 허위정보를 믿고 사회생활을 한 간접적인 피해자도 많다.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허위의 언론보도가 인터넷에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정정보도를 활성화하는 것은 좋은 방향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추진하는 정정보도 강제는 올바른 방안이 아니다.
언론사가 적극적으로 정정하도록 유도하는 일이 필요하다. 언론보도의 피해자는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거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해당 언론사에 정정보도를 요청하도록 의무화하고, 해당 언론사가 정정하면 민·형사상 명예훼손 책임을 경감하는 입법도 고려할 만하다. 정정보도는 눈에 띄게 이루어져야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공론장이 건전하게 형성된다. 정정보도 칼럼을 고정시키고, 심각한 오보에 대한 정정보도는 1면에 안내 기사를 내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처럼 모든 정정보도를 1면에 게재하도록 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해 위헌이다.
정부·여당이 언론관련법 개정을 추진하는 진정한 목적이 가짜뉴스의 폐해를 줄이고 악의적인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최적의 수단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전문가협의와 여야 합의는 필수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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