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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면으로 만나는 NFT 아트, 잠든 오감을 깨우다

입력 : 2021-09-02 19:48:12 수정 : 2021-09-03 14: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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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화폐의 혼인동맹’ 전시

파일 형태 작품, 다양한 얘기 담아
음악·모션 그래픽 등 기술 더해져
고정적이지 않고 움직여 생동감

김경아·김대성 등 작가 10명 참여
피지컬작품·온라인 관람 동시 가능
김한기 ‘Hommage-LN N0.1’

사기인가 혁명인가. 진보인가 퇴보인가. 헷갈리는 질문을 던지는 NFT(대체불가능토큰)는 미술계에 닥친 태풍급 변화다. 최근 NFT 예술작품이 뜬다는 얘기에 검증되지 않은 NFT 예술 사업이 우후죽순 시도되며 옥석을 가리기 쉽지 않던 차에, NFT판에서 활발하게 작업을 벌여온 작가들이 NFT 아트 작품을 선보이고 NFT 아트의 의미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서초구 사평대로에 위치한 갤러리마크에서 ‘예술과 화폐의 혼인 동맹’ 전시가 한창이다. 김경아, 김대성, 김보슬, 김지현, 김한기, 정선주, 엠마팍, 요요진, 현지원 등 작가 10명이 참여했다.

환경조각을 전공한 김경아 작가의 ‘웨이브(wave)2021’은 물리적 조각 형태에 실제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효과를 그래픽으로 실현해 현실과 비현실의 조화를 표현한 작품이다. 김보슬 작가의 ‘플루이드 라이프(Fluid Life)’는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연결성을 주제로 영상미디어를 중점으로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 특유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요요진 작가는 ‘요요 쉐입(yoyo shape)24’에서 경쾌한 두들링을 보여준다. 두들링이란 마치 낙서하듯 스케치 없이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선을 그어 화면을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요요진 ‘yoyo shape 24’

김지현 작가는 꽃과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숲속의 편안함을 전달하는 ‘숲 속의 작은 집’을 선보인다. 엠마 팍 작가의 ‘21세기 정물화’는 익살스러운 작품뿐 아니라 제작 뒷얘기도 흥미롭다. NFT마켓을 활용하는 탈중앙화된 자율조직(DAO)에서 작가 등 참여자들이 각자 피자의 일부 구성요소를 그려나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이때 피클을 그리면서 ‘피클스’ 캐릭터를 만들어내 개인 작업에 활용했다. 탈중앙화된 자율조직은 특정 리더, 리더의 지휘 없이 각자 맡은 역할을 하는 블록체인 기반 조직이다. 현지원 작가의 작품들은 서낭당에서 각자의 소원을 빌며 돌탑을 쌓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돌탑을 배려하는 풍경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해와 배려의 문제를 제기한다. 모두 휴대전화나 컴퓨터 속 대체 불가능한 토큰을 가진 파일형태인 작품들이지만 저마다 다양한 이야기와 주제를 담고 있다.

NFT 작품의 피지컬 작품과 온라인상 관람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된 전시다. 전시장에는 블루캔버스를 통해 오프라인상에서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꾸며졌고, 작품 아래 마련된 큐알(QR)코드 앞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서 갖다 대면, 해당 작품이 업로드돼 있는 오픈시사이트로 연결된다. 오픈시는 가상화폐 이더리움으로 NFT 작품을 거래하는 플랫폼이다. 작품들은 디지털 작품 특유의 기술들이 결합돼 고정적이지 않고 움직이며 오감을 자극한다.

정선주 ‘Pop heart candy, sky candy’

생존작가 중 세계 최고가 작품 작가인 영국 데이비드 호크니가 NFT 아트 작품을 두고 “국제적 사기”라고 일갈했음에도, NFT 작품은 최근 꾸준히 생산되며 생명력을 키워가는 모습이다. 전시를 통해 미술 작품은 예술을 경험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미술 작품의 존재 형태는 시대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돈이 된다’는 말에 여기저기서 NFT 작품을 시도하지만 그 의미와 사유를 제시하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려운 세태 속에, 이번 전시를 두고 쓴 송진협 미술평론가의 지적이 인상적이다.

송 평론가는 최근 간송재단이 낡아가는 종이류 문화재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NFT로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을 두고, 미술 소유권의 근원적 변화가 시작됐음을 의미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짚었다.

‘원본이 상실될 경우 이 국보 자산의 가치가 일개 복사본에 불과한 NFT로 전이될 것이다. NFT는 미술 소유권의 근원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김보슬 ‘Fluid life’

심지어 최근에는 한 영국 예술가 뱅크시의 프린트 작품 소장가가 NFT 가치를 올리고자 원본을 일부러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일도 상기시킨다. 이 사건들은 블록체인이라는 공증을 통해 디지털 복사본에 압도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원본의 가치를 이전시킬 수 있기에 가능한 광경이다.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로 거래되는 블록체인 기반 미술작품. 이 둘이 뗄 수 없이 결합돼 있음을 지목하는 송 평론가는 다소 비관적으로도, 냉정하게도 읽히는 비평을 내놨다.

‘가상화폐와 결합한 NFT는 탈국가적, 탈지구적 시대를 맞아 예술품과 투자자 모두의 자산가치를 보존하고 이전하는 가장 탁월한 도구가 됐다. 이는 금보다도 더 안정적이며, 미국 달러보다도 통화량 리스크 부담이 덜한, 탁월한 예술-화폐다. 이제 NFT는 순수예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화폐 도안(currency design)으로서 민팅(minting)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설프게 새겨졌던 로마 금화의 황제 초상은, 기술복제 시대에 달러화 지폐에 정교하게 그려진 미국대통령 초상화로 진일보한 바 있다. 오늘날 전 지구적 자본의 상속자로서 가상화폐들은 이제 그 지위에 걸맞은 새로운 예술적 초상화를 당연하게 요구하고 있다. 음악이 울리고 모션 그래픽으로 치장된 NFT 들이 이 새로운 화폐-예술의 시대를 찬양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 발전은 원본과 똑같은 복사를 가능하게 했다. 배타적 소유가 아닌 무한한 공유의 꿈이 가능하도록 사회를 진일보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기술발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단계 더 발전했다. 이번엔 소멸하지도 않는, 영구적인 배타적 소유를 가능케 만들었다.

25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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