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문명의 흔적을 보며 인간의 위대함을 떠올릴 때가 있다. 상상조차 버거운 까마득한 그 옛날에 이런 게 가능했다고, 싶어지는 문화유산들 앞에서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위대한 종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인류의 발전을 선도했던 4대 문명의 그것 앞에 서면 특별히 그렇다. 신성성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한 이집트의 신상, 미의 원형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어지는 그리스·로마의 조각, 원초적 집단노동의 압도적 결과라 해도 좋을 콜로세움과 같은 건축물 등.
국립중앙박물관의 ‘중국 고대 청동기’ 특별전에 출품된 중국의 청동기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고대중국의 청동기는 3000년 전 즈음에 전성기에 이른다. 67점의 전시품 중 올빼미, 소 모양의 술통과 세발솥 등이 특히 눈길을 끈다. 전체적인 모양, 무늬는 너무 세련되어서 인간은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유전자에 새긴 채 탄생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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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이 만든 역사의 흔적인 청동기들을 보면서 느낄 중국인들의 뿌듯함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고대문명뿐이겠는가. 19세기 무렵까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중심으로서 인류의 발전을 한걸음 앞서 이끌었던 여정이 중국의 역사라 해도 크게 틀린 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중국사의 위대함은 부정하기 힘들고 인정할 수밖에 없기는 한데 영 흔쾌하지가 않다. 중국 정부가 정치적인 의도에 따라 역사 왜곡, 혹은 역사 만들기를 줄기차게 시도하고, 많은 중국인들이 여기에 경도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최근 동북아역사재단이 펴낸 책 ‘중국 애국주의와 고대사 만들기’는 가장 아름다운 청동기를 만들던 시절의 그 역사에 중국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중국 정부는 운명을 다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신해 ‘애국주의’를 내세운다. 고대사는 애국주의 역사 프로젝트의 핵심 주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국임을 증명해 애국심을 고취하겠다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정권의 유지와 통치기반 강화를 노린다.
이를 위해 문헌에 신화로 전해지는 시대와 인물을 실제로 존재했던 사실로 만드는 작업이 꾸준히 진행 중이라고 한다. 조작의 방식은 단순하다. 문헌에 전하는 내용을 연상시키는 유물, 유적이 발견되면 누구의 도읍지, 누구의 출생지 등으로 결론을 내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어떤 근거도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대중국의 전설 속 군주인 염제, 황제다. 우스운 것은 이런 작업의 결과 염제의 고향임을 주장하는 곳이 중국 전역에 분포하고, 황제는 무려 3600년을 생존한 인물이 되었다는 점이다. ‘만들어진 중국사’가 이렇게 지질하다.
자기네 역사로 뭔 짓을 하든 뭔 상관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런 시도가 남의 나라 역사까지 맘대로 하려 드는 데까지 이르니 보고만 있을 수가 없다. 중국 정부의 역사 왜곡 혹은 만들기가 중국을 정점에 놓고 그 아래로 주변국을 줄세우는 수직적 국제질서를 그리고 있어 불쾌하기 짝이 없기도 하다. 혹여 우리도 역사를 두고 이런 지질한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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