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기습남침 쏙 뺀 ‘가짜 역사’ 근거
영화로 6·25전쟁 역사를 다시 쓰려는 중국의 뻔뻔한 의도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 남침으로 한국이 낙동강 방어선까지 내몰려 고초를 겪은 대목은 쏙 빼놓고 그해 10월 중공군 참전 이후만을 부각하려는 그릇된 시도다. 6·25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라고 부르는 중국의 입장에 맞춰 한국은 제외하고 중국·북한·미국 3자만을 6·25전쟁 주체로 인정하려는 것이다.
앞서 중국 정부는 한국 문재인정부가 제안한 6·25전쟁 종전선언을 지지한다고 했으나, 한국을 6·25전쟁 주체로 아예 인정하지 않는 중국이 한국과 나란히 종전선언에 동참한다는 것 자체가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의문시된다.
◆중국에서 6·25 다룬 영화 잇따라 개봉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영화 ‘압록강을 건너다’가 17일 중국 전역에서 개봉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장진호’에 이어 또 6·25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가 대중에 선을 보이는 것이다.
‘압록강을 건너다’는 중국 관영 중앙TV(CCTV)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방송한 같은 제목의 40부작 드라마를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다. 6·25전쟁 당시 북한 편에서 한국군 및 미군과 싸운 중국 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펑더화이의 시선으로 전쟁을 묘사했다. 현지 매체들은 “6·25전쟁 당시 중국 공산당 중앙의 전략, 인민지원군 지휘관들의 지략, 전선에서 싸운 병사들의 노고 등을 다각적으로 그려냈다”고 소개했다.
요즘 중국은 6·25전쟁을 다룬 영화들이 말 그대로 ‘대세’다. 9월 말 개봉한 ‘장진호’는 16일까지 57억6000만위안(약 1조686억원)의 수입을 올리며 종전 중국의 역대 흥행 영화 1위였던 ‘특수부대 전랑 2’(56억9000만위안·2017년 개봉)를 제치고 신기록을 세웠다. 지난해에는 6·25전쟁 중 금강산에서 벌어진 전투를 그린 영화 ‘금강천’이 상영됐다. 이 영화는 국내 한 수입사가 들여와 IPTV나 OTT 시장을 통해 유통하려 시도했으나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행태를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 끝에 결국 없던 일이 됐다.
내년에도 6·25전쟁 관련 영화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장진호’의 속편에 해당하는 ‘장진호: 수문교’와 제법 유명한 장이머우 감독이 딸 장머 감독과 공동으로 연출한 ‘저격수’가 그렇다.
◆북한의 기습남침 제외한 ‘가짜 역사’
‘장진호’도 그렇고 ‘금강천’도 그렇고 6·25전쟁을 중공군 대 미군의 대결인 것처럼 그렸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주 많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됐다. 전쟁 준비가 돼 있지 않던 한국 정부는 임시수도 부산으로 피난을 가고, 한국군은 미군 등 유엔군과 더불어 한동안 낙동안 방어선 안에 갇혀 북한군의 거센 압박을 가까스로 견뎌냈다. 그해 9월 더글러스 맥아더 미군 원수가 이끄는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면서 비로소 낙동강 방어선을 뚫고 북진에 나섰다. 10월에는 한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이 38선을 넘었고 남북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듯했다.
바로 그때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진입했다. 그리고 인해전술을 앞세워 한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그때부터 38선 부근에서 밀고 밀리는 접전이 이어지다가 결국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로 전쟁은 일단락됐다.
오늘날 중국은 6·25전쟁 기간을 자국이 참전한 1950년 10월부터 1953년 7월까지로 규정한다. 1950년 6월부터 10월 사이에 벌어진 전쟁은 쏙 빼 버렸다. 중국의 입장에선 한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이 38선을 넘은 것이 곧 전쟁 개시인 셈이다. 전쟁이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점을 감추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런 엉터리 역사관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보니 세계 각국에서 이들 작품을 대하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중국계 국민이 많은 말레이시아의 경우 ‘장진호’를 수입해 개봉하려던 업자에게 당국이 ‘상영 불허’라는 철퇴를 가했다. “공산주의 선전물”이란 이유를 들었다. 제대로 된 영화가 아니고 중국 정권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광고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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