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자폐 수준 고립도 걸림돌
한국 외 돌파구 마련 주체 없어
북 유인할 프로젝트 개발 필요
김정은이 집권한 지 10년이 지났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28세에 북한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김정은은 지난 10년간 무엇을 얻고 잃었나. 집권 10년을 맞은 김정은 정권은 핵 무력과 체제 안정에는 성공했지만 경제와 대외관계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정은 10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사실상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처한 곤경을 흔히 ‘삼중고’(코로나·제재·홍수)라고 말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비슷하게 삼중고에 직면한 게 현재의 상황이다.
삼중고의 첫째는 북·미 비핵화 대화 중단이다. 2018년 짧았던 봄날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이 완전히 중단되면서 아련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정책 재검토를 거쳐 소위 ‘잘 조율된 실용적 접근’을 내놓았지만, 과거의 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실상의 ‘전략적 인내 2.0’이라는 평가다. 당연히 북한은 이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핵과 미사일 역량은 계속 진화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남북관계의 완전 정체다. 문재인정부는 한반도 문제의 ‘운전자’ 역할을 자임하면서 선한 중재자 역할에 매진했지만 남북관계는 김정일 시대보다 나아진 게 없다. 북한은 한국의 미진한 중재자 역할과 더불어 기존 남북 간 합의 이행 성과가 없는 점에 실망하고 문재인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으로 보인다. 임기말을 향해 가는 문재인정부는 종전선언으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유인하려 하지만 성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대선을 앞둔 임기말 정부가 과감한 대북정책 카드를 쓰기도 어렵다.
세 번째 애로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북한이 거의 ‘자폐’ 수준의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전세계를 휩쓴 팬데믹 상황 앞에서 북한은 열악한 보건위생 수준 때문에 아예 국경을 걸어 잠그는 극단적 대응을 택했다. 그에 따라 북·중 교역도 중단되면서 경제상황은 매우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시기 초기에는 다양한 경제개혁 조치를 시도했지만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중하다가 제재를 받고 다시 전통적인 고립 노선으로 복귀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백신 제공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한 채 전 주민을 동시에 접종할 수 있도록 5000만도스 이상을 국제기구에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재개되려면 우선 북한이 국제사회의 부름에 호응해 움직임을 시작해야 한다. 북한이 대외관계를 재개하려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돼 방역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거나, 미국이 북·미 간 대화 재개를 위한 전향적 제스처를 먼저 취해 북한이 호응하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북한 내부 사정이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 즉 코로나 확산, 경제 붕괴 등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를 위해서는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창의적 주도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종전선언만으로는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 어렵다. 종전선언이 입구인지 출구인지 우리 내부의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북한은 여기에다 적대시 정책 중단, 제재 완화, 이중기준 적용 중단 등 한·미 양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붙여놓았다.
한반도 평화의 삼중고를 극복하려면 결국 한국 외에는 돌파구를 마련할 주체가 없다. 치열한 전략경쟁에 손발이 묶인 미·중은 한반도를 돌아볼 여력이 없다. 결국 한국이 독자적으로 주도권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 첫걸음은 일관된 대북정책, 즉 우리 내부부터 단합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차기 정부가 이념과 진영을 떠나 초당적 입장에서 합리적이고 견실한 대북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또한 한반도 평화가 지금처럼 구조적으로 어려울 때는 너무 북한만 바라봐서는 해답이 안 나온다. 길이 막혔을 때는 무리하고 조급하게 서둘지 말고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 북한은 스웨덴을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들에게는 백신 제공 가능성을 타진하며 먼저 접촉을 시도했다. 미국과 중국만 바라보지 말고 유럽 및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들과 연대해 북한을 유인할 협력적 대북 프로젝트를 발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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