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 브리튼과 그의 동료들은 학생들이 어떤 담화에 익숙한지를 실험한 적이 있다. 이들은 학생들이 먹지 위에 글을 쓰게 해서 글의 전후 맥락을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설득적인 글과 서사적인 글을 쓰도록 했다. 학생들은 설득적인 글을 쓰는 것에 큰 어려움을 느꼈지만 상대적으로 이야기에 가까운 서사적인 글을 쓰는 것은 쉽게 처리했다.
심리학자 리드와 그의 동료는 서사적, 묘사적, 설득적 글쓰기 과제에 들어가는 인지적 노력을 비교하는 연구를 했다. 학생들에게 동일한 주제를 부과해서 일정한 시간에 글을 쓰게 했다. 여러 실험도구를 사용해 글을 쓰는 데 들어가는 인지적인 노력을 측정한 결과 다른 글보다 서사적인 글을 쓰는 데 훨씬 적은 인지적 노력이 들어갔다.
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근원적인 담화는 ‘이야기 구조’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야기 구조가 발생과 성장, 절정과 결말의 형식을 가진 인간 삶의 원형적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야기 구조에는 시간 흐름에 순응하고 인과법칙을 따르는 자연의 섭리가 담겨 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삶의 경험에 빗대어 그럴듯한 인과적 스토리에 호응을 하고 감탄한다. 영화나 TV드라마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도 삶의 과정에 따라 변화하는 이야기 구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구조는 인간이 가장 빠르게 습득하는 근원적 사고 중의 하나이다. 피아제 학파의 이론에 따르면 아동들은 출생 후 1년도 되지 않아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습득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살이 되면 인과 논리에 바탕을 둔 이야기 개념을 이해했다. 초등학교 2학년 아동들은 이야기에 생명 있는 주인공과 사건의 인과관계에 기반한 순서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이런 점은 이야기 형식의 사고가 우리 생각의 밑바탕에 선천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편의 글을 쓰는 것도 이런 이야기 구조가 그대로 반영된다. 서두와 전개, 절정과 결말 속에 이야기 구조가 갖는 시간성과 인과성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글의 목적과 대상을 암시하는 서두에서부터 내용이 전개되는 과정, 그리고 절정을 거쳐 마무리에 이어지는 과정은 이야기의 구조와 흡사하다. 글을 쓰는 사람이나 글을 읽는 독자도 이런 이야기 리듬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인간은 논리를 이해하는 데 취약하고,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더 적합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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