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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에 화마 목격 ‘상황 부정’ 심리도…상담사 찾는 이재민들

입력 : 2022-03-08 21:20:23 수정 : 2022-03-08 2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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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등 이재민 심리 상담 진행 / 불안감에 우울감 등 호소…‘상황 부정’도 / 가족·이웃의 위로에 힘 얻어…‘자기 일’처럼 여긴 지역민들도 온정
경북 울진군 울진읍의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 김동환 기자

 

“산림 당국과 소방 당국의 총력 대응에도 진화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빨리 산불이 진압되기를 바랍니다.”

 

경북 울진군 산불 나흘째인 지난 7일, 울진읍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한 노인이 TV에서 나오는 산불 관련 뉴스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마스크를 쓴 노인은 힘없이 자기 손만 만지작거렸을 뿐, 뉴스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산불 닷새째인 이튿날 8일에도 이곳에 머무는 이재민들의 표정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일부 구호텐트에서 이재민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기는 했으나, 대부분 텐트는 적막했다.

 

텐트에 가만히 있는 게 갑갑해 체육관 관중석 의자에 홀로 앉아 있던 이모(82) 할아버지는 농사짓던 일상의 평범한 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산불로 집이 전소했다며 말문을 연 할아버지는 “작년 이 시기에는 농사 준비가 한창이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집을 다시 짓는 것부터 생각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일단 집부터 있어야 농사를 짓든 뭘 하든 삶을 살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일부러 뉴스도 잘 보지 않는다고 한다. TV에서 산불 소식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착잡해서다.

 

경북 울진군 울진국민체육센터에 심리안정화 물품이 배치돼 있다. 울진=뉴시스

 

이재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자 경상북도재난정신건강지원단과 경북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직원들이 이곳에서 심리 상담을 진행 중이다.

 

이날도 경상북도재난정신건강지원단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재민이 눈에 띄었는데, 복잡한 속내를 털어놓듯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갔다.

 

경북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를 운영 중인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에 따르면, 상담에 참여한 이재민들은 불안함과 우울감 등을 호소한다.

 

덮친 화마에 날아드는 불씨를 목격한 데다가 집이 전소되는 과정을 모두 본 탓에 이러한 일들을 부정하려는 이른바 ‘상황 부정’ 심리가 강하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수면 장애도 동반한다.

 

울진군으로 귀촌한 이들 중에서는 갑갑함과 후회감도 밝힌 사례도 있다고 경북지사 측은 설명했다. 과거 수해에 이번 산불까지 자연재해로 자기만 피해를 보는 것 같아 하늘을 원망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실의에 빠진 것만은 아니다.

 

이웃 주민의 격려와 수시로 연락해오는 가족들의 전화에 조금이나마 힘을 얻어 산불 피해를 이겨내려는 이재민도 적지 않다.

 

자신이 사는 집은 산불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다른 이재민들을 가만히 볼 수만은 없어 이웃들과 대피소에 나와 배식 등을 돕는 주민들도 온정을 보태는 소중한 힘이 된다.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관계자는 “가족, 이웃 주민에게서 위로를 받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시는 분들도 계시다”며 “화마가 휩쓸고 간 피해를 이겨내고자 하는 분들도 많다”고 밝혔다.


울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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