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청와대 이전 후보지로 국방부와 외교부 청사를 선정하면서 대통령 집무실의 최종 부지 선정이 임박했다.
18일 외교부와 국방부 청사를 둘러본 인수위는 추가 검토를 거쳐 빠른 시일 내 집무실 이전지를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국가안보의 핵심인 청와대와 국방부를 충분한 검토와 사전준비 없이 움직이게 되면, 안보태세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안보와 국방을 동시에 흔든다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 후 집무실 후보지로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군 내부도 뒤숭숭한 분위기다.
국방부 안팎에선 용산 이전안이 급부상했다는 점에서 국방에 미칠 영향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졸속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것은 단순한 사무공간 이전이 아니다. 수십년 동안 구축됐던 안보 시스템과 자산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청와대와 국방부는 각자의 공간에서 수십년간 안보체계를 구축했다.
국정의 최고 컨트롤타워인 청와대는 정치, 경제, 사회, 외교안보, 재난 등 모든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유지 발전시켜왔다.
대표적인 게 국가위기관리센터다. 자연재해나 안보위기, 사회혼란 등에 대한 초기 대응과 평시 위기 대비 체계를 점검하고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며 24시간 모니터링을 한다. 여기에 경호처와 국가안보실 등이 결합, 청와대를 국가 안전의 핵심 컨트롤타워로 기능하도록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컨트롤타워는 청와대 주변에 배치된 경찰과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병력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오랜 세월 자리잡아온,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국가 안전의 최후 보루다.
전체 면적이 약 27.6만㎡인 국방부 영내는 국방부 신청사 및 합참 청사를 중심으로 국방조사본부, 시설본부, 사이버사령부, 군사법원, 검찰단 등 직할부대들이 모여 있다. 4000여 명의 군인과 공무원, 군무원이 생활한다.
한반도 유사시 전국 규모의 군사작전을 지휘하는 국방부와 합참은 국방의 핵심이다. 전면전과 국지도발, 테러 대응과 더불어 해외 파병부대를 지휘한다. 작전계획의 수정보완 등을 위한 시뮬레이션 훈련, 주한미군과의 정보공유, 국방 데이터 관리 등도 이뤄진다.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청사 이전은 국가 안전 시스템이 국방 체계가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넘어온다는 의미다. 수십년간 구축됐던 국가 안전 시스템과 국방 체계가 모두 큰 폭의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국가안보는 약간의 빈틈만 생겨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지속되는 분단국가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떠받치는 두 기둥인 청와대와 국방부에 손을 대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일각에선 집무실 이전 후 합참 지휘통제실을 활용하면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위기관리센터와 합참 지휘통제실이 담당하는 위기는 차원이 다르다.
합참 지휘통제실은 군사적 문제를 다루는 곳이다. 국가위기관리센터는 군사를 포함해 경제, 사회, 재난관리 등 국정의 모든 분야에 대해 전국에서 발송되는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며 대응한다. 합참 지휘통제실이 센터의 기능을 단기간 내 100% 대체할 수는 없는 이유다.
두 체계는 서로 호환되지 않아 이를 결합하거나 이전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의 안보정책 사정에 밝은 정부 소식통은 동네 중국집과 호텔 식당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합참 지휘통제실이 동네 중국집이면 국가위기관리센터는 호텔 식당이다. 일부 중식만 만드는 중국집의 주방은 크기가 작고 조리기구와 근무인원도 적다. 다양한 메뉴를 요리하고 룸 서비스와 피로연도 준비하는 호텔 식당은 주방도 크고 장비와 근무인원이 많다.”
“그런 호텔 식당 주방 근무자에게 ‘내일부터 동네 중국집에서 요리하고, 룸 서비스와 피로연도 하라’고 하면 가능하겠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조리 공간을 넓히고, 옮겨오거나 새로 산 조리장비 점검과 작업 동선 설정 등의 복잡한 준비절차를 거쳐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이전은 호텔 식당을 중국집에 밀어넣는 것과 같다. 사전 준비가 철저해야 가능한 일이다.”
◆국가 안전 자산의 변화는 신중해야
윤 당선인의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증폭되면서 일각에서는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시간을 두고 경호 등 관련 인프라를 점검한 뒤 집무실 이전을 추진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5월 10일 취임식 시점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임태희 당선인 특별고문은 17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에 있지 않는 한은 국방부가 가장 적합한 대안일 것”이라면서도 “간단한 집 공사를 해도 보통 두 달 걸린다. 그런데 이거는 여러 가지 사전에 시스템도 테스트해야 되고 경호 경비 인프라도 점검해야 된다. 시한을 정해두고 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유럽의 사례를 들어 청와대를 집무 공간으로만 활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재임 시절 총리실 청사에 거주공간이 있었지만, 자택에서 출퇴근했다. 직접 동네 슈퍼에서 식재료를 사기도 했다. 메르켈 전 총리의 자택 창문을 방탄유리로 교체하고 경찰관을 배치했지만, 시민들은 자택 부근까지 왕래를 할 수 있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도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있는 엘리제궁을 집무공간으로만 사용했다.
메르켈 전 총리와 미테랑 전 대통령은 구중궁궐에 갇히는 위험을 회피하면서 국가 안전의 핵심 컨트롤타워를 유지, 차기 국가원수에게 집무 및 거주 스타일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국가 안전의 최후 보루인 청와대 시스템이 정치적 환경 변화와 관계 없이, 언제 어디서든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1세기에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대규모 전면전이 우크라이나에서 진행중인 상황은 한반도에서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운다.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자연재해는 그 빈도와 강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집무실 이전 과정에서 국가적 위기 상황을 종합적으로 다룰 국가 안전 체계, 북한 도발 시 대응할 군사대비태세가 24시간 동안 최고의 효율성을 갖고 가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고민되어야 하는 이유다. 작은 바늘구멍이 거대한 둑을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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