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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자신의 걸작 ‘신곡’을 1308년 출간했다. ‘신곡’이 특별한 것은 당시 지식인의 언어였던 라틴어를 버리고 자신의 고향인 피렌체 지방의 방언으로 썼다는 점 때문이다. 단테는 지식인만 보는 라틴어보다 피렌체의 일상어가 더 가치 있다고 보았고 그래야 생생하고 풍부한 어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예술계나 학술계에서는 라틴어가 지배적이었고, 단테 역시 라틴어로 인문교육을 받아서 키케로와 세네카, 베르길리우스와 같은 고전 작가들의 작품을 즐겨 읽기도 했다.

‘신곡’이 피렌체 지방의 언어로 출간되자 당연히 학식 있는 많은 지식인들은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당대의 시인 페트라트카는 단테의 글이 광장과 선술집의 무식한 사람들이 내뱉는 말로 타락했다고 비난했고, 비르질리오는 단테가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 주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지식인들은 단테가 일상어를 사용해 저술이 지닌 권위와 품격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판단했다. 고상한 작품을 거리의 언어를 써서 만들었다고 비난한 것이다.

그러나 단테의 생각은 달랐다. 일상어야말로 삶의 현장 속에서 살아있는 언어로서 풍부하고 다양한 어휘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곡’이 출간되기 3년 전 이미 ‘속어론’이란 책을 써서 지식인의 공용어인 라틴어보다는 각 지역의 일상어로 시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망명 중에 각 지역의 방언들을 살펴보았고, 민중어로서 방언의 귀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수백년이 지나 단테가 말한 ‘속어론’의 지역 방언은 오늘날 근대 이탈리아어의 모체가 되었다. 지역적 방언이었던 피렌체의 일상어가 지금은 모든 사람이 사용하는 공식적인 이탈리아 교양 언어가 된 것이다.

‘속어론(De Vulgari Eloguentia)’에 나오는 라틴어 단어 ‘Vulgar’는 ‘민중의’이나 ‘일상의’의 뜻을 갖지만 오늘날에는 ‘저속한’, ‘천박한’이란 뜻으로 바뀌었다. 미국 언어학자 피터 엘보는 라틴어의 고상한 뜻이 어쩌다가 상스러운 의미로 전락했는지 그 의미를 짚어 보라고 말했다. 언어는 변화하고 그 의미나 가치도 바뀐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공식 언어나 교양 언어도 앞으로 바뀔 것이다. 메일이나 트위트 같은 인터넷 글쓰기가 보편화되면서 이런 변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단테가 ‘신곡’을 통해 근대어의 세계를 열었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또 어떤 변화를 거쳐,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기만 하다.


정희모 연세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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