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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침공에 EU 분열하나… 폴란드, 독일 맹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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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4-03 13:40:00 수정 : 2022-04-03 15: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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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러시아와 너무 가깝다… 진실 앞에 눈 가려"
에너지 대란 걱정에 독일, 대응 수위 ‘고심 또 고심’
150년 전 ‘비스마르크 외교’까지 끄집어낸 폴란드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폴란드 부총리. SNS 캡처

“폴란드는 유럽에서 독일이 하고 있는 역할에 만족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폴란드와 독일의 해묵은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나치 독일에 의한 폴란드 침공 등 과거사를 사과하고 배상했으나 폴란드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한 피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는 폴란드는 ‘경제대국’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충분히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도 크나큰 불만이다.

 

◆"독일, 러시아와 너무 가깝다… 진실 앞에 눈 가려"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폴란드 부총리 겸 집권 여당 법과정의당(PiS) 대표는 3일(현지시간) 독일 일간지 ‘디벨트’(Die Welt)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러시아와 너무 가깝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처음엔 프랑스까지 거론했던 카친스키 부총리는 이내 비판 대상을 독일 하나로만 좁혀 “프랑스와 비슷하게 독일도 러시아의 ‘호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난 수년간 독일 정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는 그 결과를 오늘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 시절 러시아와 아주 가깝게 지냈다. 천연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원의 상당 부분을 러시아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는 독일은 미국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자국을 직접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건설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에 독일은 미국·영국 등의 강경한 대응보다 수위가 훨씬 더 낮은 조치들을 내놓아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2018년 5월 러시아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오른쪽)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로부터 꽃다발을 건네받고 웃는 모습. AP연합뉴스

◆에너지 대란 걱정에 독일, 대응 수위 ‘고심 또 고심’

 

지난해 말 올라프 숄츠 총리로의 정권교체 이후 러시아를 대하는 독일의 태도가 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러시아와의 관계 단절이 가져올 에너지 대란을 떠올리면 독일로선 조심스러운 행보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AFP통신은 “지난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독일은 천연가스의 55%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했으며, 석탄의 절반과 석유의 약 35%도 러시아에서 사들였다”고 보도해 독일의 러시아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카친스키 부총리는 독일을 겨냥해 “러시아가 석유 판매로 가스 판매보다 4, 5배 더 많은 수익을 얻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는 뜻에서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 보조를 맞춰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한 독일이 정작 러시아산 석유 수입은 아직까지 금지하지 않고 있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그는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충분히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독일은 애초 “우크라이나에 군인용 방탄헬멧을 제공하겠다”고 했다가 국제적 조롱이 이어지자 마지못해 장갑차 등 무기도 보내고는 있으나, “EU 역내 경제규모 1위 국가에 걸맞은 수준이 아니다”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4년 8월 독일 점령지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일어난 반(反)독일 민중봉기가 독일군에 의해 진압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150년 전 ‘비스마르크 외교’까지 끄집어낸 폴란드

 

눈길을 끄는 건 카친스키 부총리가 독일을 비판하며 ‘철혈재상’ 비스마르크(1815∼1898)를 언급한 점이다. 비스마르크가 총리로 있던 시절 프랑스를 격파하고 유럽 대륙의 패권국이 된 독일은 자연히 유럽의 현상유지를 위해 당시 제정 러시아와 아주 친하게 지냈다. 같은 시기 지금의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가 사이좋게 분할하고 있었다. “베를린 정부가 과거 비스마르크를 따라하려 한다”는 카친스키 부총리의 발언은 독일이 러시아와 대충 타협하면서 유럽의 지배자 노릇에 만족하려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폴란드는 오랫동안 독일, 러시아 등 이웃 강대국에 의해 분할돼 식민지와 비슷한 고통을 겪었다. 1차대전 후 가까스로 독립국 지위를 되찾았지만 1939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2차대전이 터지면서 또다시 암흑시대를 경험한다. 2차대전 이후로는 소련(현 러시아) 영향권에 편입돼 전혀 원치 않았던 공산주의 국가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이런 쓰라린 역사 때문에 폴란드는 여전히 독일 및 러시아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전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난 독일은 폴란드에 사과하고 배상도 했지만 폴란드는 아직 분이 덜 풀린 모습이다. 특히 우파 민족주의 성향이 짙은 법과정의당(PiS)이 집권한 2015년 이후로는 “독일의 과거사 사죄는 충분하지 못했다”며 “더 많은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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