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1일 집권 22일 만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여소야대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를 마련했다. 국민의힘은 선거 결과를 통해 윤석열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확인됐다고 보고, 정국 주도권 확보에 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출구조사를 지켜보며 환호성을 내지르고 박수를 치는 등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일찌감치 이번 지선의 성격을 ‘윤석열정부 초기 동력을 좌우할 선거’로 규정하고 선거 승리에 사활을 건 바 있다. 지선 압승으로 윤석열정부에 우호적인 여론 흐름을 확인하는 것 외에는 더불어민주당의 거대 의석을 극복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선거기간 내내 “윤석열정부의 성공을 위해 힘을 실어달라”는 ‘국정안정론’을 펼치며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의힘은 ‘지방권력 싹쓸이’에 가까운 성적을 거둔 이번 선거 결과를 내세워 향후 정국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국회 후반기 원구성 협상에서 ‘법사위원장직 확보’라는 기존 입장을 관철할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열릴 것으로 예정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자신감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정부의 국정과제 추진을 뒷받침하기 위한 입법 작업도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
대선에 이어 지선에서 연거푸 승리를 거두고, 최근 당 지지율도 50%대를 기록하기도 한 만큼 이준석 당대표 체제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당 윤리위가 지선 이후 이 대표의 성상납 의혹에 대한 징계 절차를 예고한 점이 변수로 꼽힌다. 국회의원 보궐 선거 결과 안철수 의원이 원내에 입성하며 당내 역학관계가 복잡해질 가능성 또한 있다.
이날 지선 투표율이 저조하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국민의힘은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 발표 후 축제 분위기로 급반전됐다. 당 지도부 및 소속 의원들은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 모여 출구조사를 지켜봤다. 참석자들 사이에서 “자, (발표) 1분 전”이라는 외침이 나오자 나란히 앉아있던 이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 정진석 의원, 성일종 정책위의장 등은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광역단체장 10곳을 석권할 것이라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장내는 기쁨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참석자들은 “와” 하는 탄성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를 부른 후 박수를 쳤다. 김은혜 경기지사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다고 나오자 김기현 공동선대위원장은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발표되자 이번엔 이준석 대표가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성을 토해냈다. 참석자들은 각 지역 후보들에 대한 출구조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이름을 연호하며 한바탕 잔치 분위기를 연출했다.
국민의힘은 오후 11시 45분쯤 다시 상황실에 모여 당선이 확실시된 후보들의 이름에 ‘당선’ 스티커를 부착하는 퍼포먼스를 하며 승리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 대표와 권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는 돌아가며 상황실 벽에 걸린 대형 현수막의 오세훈, 안철수 등 10명의 후보 이름 옆에 스티커를 붙인 후 박수를 쳤다. 이 대표는 이후 “국민들께 감사드리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윤석열정부의 성공을 위해 다 같이 뛰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초상집’
더불어민주당이 6·1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놓고 격랑에 휩쓸릴 모양새다. 그동안 지방선거가 급하다는 이유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대선 평가와 당 쇄신과 개혁을 모두 미뤄와서다. 당장 선거를 지휘한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이 혼자 생환한 모양새가 됐다. 당의 혼란을 정리할 수 있는 권력 공백이 발생한 가운데 지방선거와 대선 패배 원인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갈등이 생길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1일 세계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지난 대선 이후 당내 가장 큰 권력을 갖고 있던 이 위원장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며 “일종의 권력 공백이 발생한 상황에서 그동안 억눌러 왔던 불만이 표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은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선 평가를 미뤄왔다. 대선 패배에 대한 당 차원의 원인 진단이 없던 탓에 반성과 쇄신도 없었다. 중앙당 차원에서 지방선거를 위한 전략도 부재했다. 이 위원장이 김포공항 이전, 인천공항 민영화 등을 꺼내 들었지만, 김포공항 이전 문제는 다른 지역 후보들과 엇박자를 초래했고, 인천공항 민영화 반대 공세는 도리어 설득력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장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시도당 측은 중앙당이 전략을 세우기보다 쇄신안을 놓고 갈등만 키운다며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지난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무효표 처리를 놓고 ‘사사오입’ 논란이 불거진 뒤 발생한 친문(친문재인)계·친이재명계의 당내 앙금도 해결하지 못했다. 대선·지선 패배 원인을 규정하는 과정에서 상호 책임공방이 불거진다면 계파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당장 패배 책임을 논하는 과정에서부터 갈등이 불거질 조짐이 보인다. 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대선·지선 패배 원인을 진단하기 위한 끝장토론을 준비 중인데, 참석자 범위를 놓고 당장에 견해차가 나온다.
한 초선 비례대표 의원은 “초선 의원들 모두 터놓고 그동안의 성적표에 대해 논의를 하는 자리를 곧 가질 예정”이라며 “패배 원인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개혁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다른 초선 의원은 “당 전체가 참여하는 가운데 쇄신안을 논의해야 맞다”며 “특정 층만 경계를 지어 논의를 진행한다면 다시 갈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차기 전당대회까지 임시 비대위를 편성, 차기 리더십이 완성될 때까지 당을 추스를 새로운 비대위를 구성하자는 요구도 있다. 비대위원장감으로는 이낙연 전 대표나 정세균 전 의장 등이 꼽힌다.
한편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개표 방송을 보던 민주당은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17중 13곳에서 밀리는 출구 조사결과가 나오자 곳곳에서 한숨이 나왔다.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광재 강원지사 후보가 출구조사에서 국민의힘 김진태 후보에게 10%포인트 이상 뒤지는 결과가 나오자 고개를 뒤로 떨구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 위원장은 계양을에서 승리했지만, 당의 참패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10여분간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민주당 선대위는 하나하나 자리를 빠져나갔다. 이 위원장을 향해 “선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전당대회 출마 계획이 있는가” 등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별다른 대답은 없었다. 박 위원장은 이번 선거에서 사실상 전략의 실패를 시인했다. 그는 KBS와 인터뷰에서 “대선에 이어 두 번째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한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국민이 민주당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존재감 사라진 정의당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한 정의당은 1일 ‘초상집’ 분위기였다. 전·현직 당대표가 광역단체장 후보로 직접 뛰어들면서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고군분투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2일부터 당 혁신과 쇄신을 놓고 신구 세력 간 치열한 토론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가 발표되는 순간 정의당 개표상황실에는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당 관계자들은 조사 결과를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배진교 상임선대위원장은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의당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고 계셨겠지만, 거기에 당이 잘 부응하지 못한 게 이번 지방선거”라며 “오늘 발표된 평가를 근거로 해서 국민에게 더 다가가는 진보정당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이번 선거에서 이정미 전 대표와 여영국 대표가 각각 인천시장·경남지사에 도전했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받는 기준점인 15% 득표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특히 총선 때 인천 연수을에서 3자 구도 속에서도 18.35% 득표율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보였던 이 전 대표에게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정의당은 서울(권수정)과, 부산(김영진), 대구(한민정), 경기(황순식), 광주(장연주)까지 총 7개 광역단체장에 후보를 냈으나 본인뿐 아니라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당선까지 크게 견인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내 제3당으로서 작게나마 있던 존재감마저 대선과 지선을 치르며 더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당 안팎에서 맴돌고 있다.
정의당에서는 지난달 불거진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의 ‘성폭력 폭로’ 논란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지방선거를 치렀다. 선거 유세 중이어서 이 문제를 일시 봉합하고 넘겼으나 대선과 지방선거 평가를 하면서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대선과 지방선거 평가가 동시에 이뤄지고 난 뒤에는 장혜영·류호정 등 청년 여성 의원 중심으로 당이 재편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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