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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청년세대 어릴적 IMF 경험
‘교육지옥’ 속 계층 세습도 공고화
가족은 ‘성공·생존위한 공동체’로
다양한 사건·변화 저출산 영향 미쳐

사회발전에 따라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만 극단적 저출산 수준을 지나 출산율 추락이 계속되고 있다. 이 저출산 구조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사(史)가 쌓여 만들어졌다.

1990년대 후반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동안 수많은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쓰러지고, 일자리 안정성과 근로여건은 크게 악화되었다. 아이들이 동네에서 어울려 놀다가 아빠가 퇴근하는 저녁 7시에 집으로 들어가던 ‘저녁이 있는 삶’도 이 시기부터 사라진다. 많은 중산층 가족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면서 학교 반마다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 친구들이 생겨났는데, 이러한 어린 시절 경험은 청년세대에게 ‘불안함’의 트라우마로 남겨져 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보건대학원 객원교수

높은 학력 덕분으로 대기업에 입사해 경제위기에도 살아남은 세대들은 학벌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자녀의 생존전략으로 교육에 경쟁적으로 투자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사교육비가 급등하는데, 지금의 청년들은 이 ‘교육지옥’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한편 산업 구조조정으로 지방의 중견기업들이 사라지는데, 이와 함께 지방에서 괜찮은 일자리도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로써 수도권 대학에 대한 사회적 선망은 더 강해지고, 교육을 통한 계층세습 구조도 공고해진다.

IMF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우리 사회는 체면을 벗고 경제적 성공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시작한다. 너무 노골적이었던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는 이 시기 등장했다. 정보기술(IT) 열풍과 함께 전에 없던 대박 성공신화가 나타나고, 부동산 가격이 요동쳤다. 이러한 가운데 가족은 ‘성공을 위한 공동체’가 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생존을 위한 공동체’가 된다. 이사이 가족의 심리적 친밀감은 점차 옅어진다. 지금 청년들이 가족을 만들려 하지 않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행복한 가족의 경험 부재에 기인할지도 모른다.

2000년대부터는 산업 구조조정과 맞물려 고학력화한 여성들이 대거 노동시장에 진입한다. 과거와는 달리 전문직종 여성들이 등장하고, 여성들은 평생 직장생활을 추구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좋은 일자리를 갖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짧은 시기 동안 기업, 가족, 사회가 여성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 것은 매우 부당하지만 또한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이로써 보통의 여성이 추구하는 삶과 변화에 지체된 사회와의 충돌이 전면적으로 나타난다.

2010년대 등장한 스마트폰은 우리의 문화, 특히 소비주의를 바꾸는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타인과 일상을 공유하면서 소비의 준거집단이 새롭게 형성된다. 이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것인가의 문제를 소비생활을 계속할 것인가와 비교한다. 한편으로는 전에 없던 새로운 사회문화적 담론공간이 만들어지고 일상 속 갈등들이 담론화한다. 이것은 젠더갈등 배양의 토대가 된다. 특히 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 사건에서 여성들은 집단적으로 분노를 나누었고, 곧이어 일어난 ‘출산지도’(가임기 여성 수를 나타낸 지도) 사건을 계기로 ‘여성을 출산 도구화한다’는 저출산 정책에 대한 반감도 확산된다.

이렇게 다양한 층위의 사건과 변화들이 청년세대의 생애경험을 거치면서 지금의 저출산 구조가 만들어졌다. 기성세대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며 청년들을 타박하는 것은 너무 염치없는 짓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저출산 원인을 몇몇 특정 요인으로 단정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으며, 청년들의 세대적 생애를 짚어 보면서 현재 저출산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저출산 구조에 영향을 준 다양한 사건사 속에서 우리는 피해자, 생존자, 수동적 참여자가 되기도 하고, 때론 적극적 행위자가 되기도 했다. 저출산 문제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우리들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의 가족은 행복한가? 저출산이 우리 모두의 문제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저출산 구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보건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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