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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모의창의적글쓰기] 글의 진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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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16 23:19:39 수정 : 2022-06-30 23: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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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학생이 이런 요지의 글을 썼다. “돈을 버는 일은 인생에서 가치 없는 일이다. 돈을 많이 벌고, 소유하는 것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불행을 던져 준다.” 여러분이라면 이 글을 어떻게 평가할까? 미국의 학자 스튜어드는 돈 버는 일을 가치 없다고 말한 학생의 글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혹평을 했다. 그는 이 학생이 자신이 말한 것을 믿지 않거나, 아니면 자신이 그 말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고 보았다. 이 학생의 문제는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도덕적 이상주의를 앵무새처럼 읊고 있다는 점이다. 스튜어드는 그 글을 쓴 학생에게 무엇보다 자신에게 솔직하라고 권유했다.

글의 진실성을 좋은 글의 판단 기준으로 삼았던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하게 있던 일이다. 마음을 속이지 않고 생각 그대로 글을 써야 좋은 글이 된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주장한 사람들도 너무나 많다. 조선시대 실학자 최한기는 글을 마음속에 쌓아 둔 거짓과 진실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닦아야 할 필요가 있다. 문장에 관한 글을 많이 썼던 서양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작가의 문장은 그 사람의 정신과 신념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았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 사람의 순수한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글의 진실성이 글을 쓴 사람의 성품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비판한 경우도 많다.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작품이 작가의 인간성을 대변한다는 말을 거부하고 비평을 할 때 텍스트를 작가와 분리하려는 작업을 했다. 그는 작가가 텍스트를 쓰는 순간 텍스트의 주인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라고 보았다. 텍스트는 텍스트이고 사람은 사람이란 것이다. 그래서 저자와 텍스트를 완전히 분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잘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작품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일은 역사에서 수없이 많았다. 좋은 작품을 남긴 시인 정지용이나 소설가 이태준도 월북 작가라는 정치성 때문에 오랫동안 우리 문학사에서 다루지 못했다. 북한에서도 정치적 이유로 순수문학 작가들이나 숙청당한 작가들의 작품은 다루지 않았다.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작가에 따라 작품이 이렇게 저렇게 평가되는 일은 없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심성이 원래 그러한 것이다. “그 사람의 글을 읽고 나서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하겠는가?”라는 맹자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정희모 연세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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