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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검수 안 하고 원가도 안 따져 수백억 예산 날려… 주먹구구식 경제성 평가 [심층기획 - 재무위험 빠진 공공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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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02 06:00:00 수정 : 2022-08-02 08: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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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감사보고서에 드러난 실태

한전, 신재생에너지사업 연구비 집행
업체대표 68억 편취사실 파악도 못해

납품사 제품가격 인터넷 검색도 안 해
남부발전, 재료비 22억 과다 계상 적발

코레일, 역사 내 입점사 재계약 과정서
업체 편의 봐줘 임대료 60억 허공으로

전문가 “임직원 도덕적 해이 통제 시급”

업무 태만과 부당계약, 유착 의혹까지….

 

한국전력공사 등 14개 재무위험 공공기관의 감사원 감사보고서에는 예산이 줄줄 새고 있는 사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경제성 평가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 일상화된 듯한 비효율적인 업무 체계로 수억원에서 수백억원의 예산이 낭비되기 일쑤였다. 이들 기관의 임직원들은 감사원의 지적에 대해 “관행적인 방식”, “업무가 바빠서”라고 해명했다.

 

1일 세계일보가 2019년부터 지난달까지 감사원이 14개 재무위험기관을 대상으로 한 감사 145건(중복 제외)을 전수조사한 결과, 예산 낭비나 수익 상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방만 경영 사례는 총 39건으로 파악됐다. 방만 경영 사례를 유형별로 보면 업무 태만이 20건으로 가장 많았고, 입찰을 경쟁에 부치지 않고 수의 계약을 진행해 특정 업체에 수익을 안기는 등의 부당계약이 12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어 미래 자산을 과다하게 부풀리는 등 제대로 회계를 하지 않은 기관도 5곳으로 조사돼 전체의 35%에 달했다. 그 외 규정에 맞지 않게 자녀 학자금을 주거나 기부금을 임의대로 쓴 경우도 포착됐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의 특성상 시장논리에 기반한 경제성만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내세울 순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서류만 보고 수십억 사업비 집행… 경제성 평가는 ‘실종’

 

감사보고서를 보면 업무 태만은 주로 서류만 검토하고 연구비 집행을 승인하는 등 소극적인 업무처리와 관련이 많았다. 2016년 한전전력연구원이 한 신재생에너지 업체와 진행한 ‘차세대 이산화탄소 분리막 상용기술 개발 공동 연구개발과제’가 대표적이다. 이 과제는 관련 예산이 187억8300만원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이었지만, 업체 대표가 연구개발비 68억원을 편취하다 적발됐다. 막대한 돈이 새는데도 한전의 감시기능은 마비된 상태였다.

 

연구개발비 산정 업무를 담당한 이들은 업체 관계자의 연구실적 등 참여자격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았고, 재직증명서 제출 여부만 본 뒤 12억3000만원의 현물사업비를 집행했다. 또 현장검수 없이 증빙서류만 첨부돼 112억여원의 연구개발비가 지급됐음에도 책임자는 “관행적인 방식”이라는 이유로 결재하기도 했다.

2018년 2월 마무리된 ‘수출용 전력설비관리 GIS 솔루션 개발’ 연구과제의 경우, 한전의 전력기술이 공개될 우려가 있는 공개 소프트웨어가 실수로 적용되는 바람에 당초 개발 목표인 수출이 막히는 황당한 결과가 초래되기도 했다. 이 연구과제 책임자는 “바쁜 와중에 핵심 참여인원 변경 등으로 사업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용역 계약한) 업체가 제대로 할 것으로 믿었다”고 해명했다.

 

한전은 또 배전선로 공사비를 고객에게 부과할 때 책정하는 표준시설부담금을 적게 책정해 특정 고객이 발생시킨 공사비를 전체 이용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경제성 평가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남부발전이 2018년 실시한 석탄 실외저장소의 방진펜스 관련 사업은 재료 선정부터 원가 계산까지 적절한 비용 추계 과정 없이 진행됐다. 섬유밴드와 효과가 비슷하지만 저렴한 방진망이 재료 선정 과정에서 제외되면서 63억원가량의 사업비가 절감되지 못했다. 또 업무 담당자들이 업체가 제시한 제품의 가격보다 인터넷에 더 싼 제품이 있는 걸 보고도 가격 적정성을 검증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재료비 22억원이 과다 계상되는 등 117억원이 낭비됐다.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연합뉴스

◆특정 업체와 은밀하게 유착까지… 부당 수의 계약 성행

 

부당 계약으로 분류된 감사 건들은 대부분 특정 업체에 수의 계약을 몰아줘 예산이 낭비되는 경우였다. 2016년에 진행된 40억3800만원 규모의 LH의 양주사업본부 사옥 신축공사는 국가계약법상 수의 계약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LH는 사옥 위치가 택지개발사업 조성공사 현장에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특정 토목업체와 수의계약을 해 이 업체에 10억800만~14억여원의 추가 이득을 안겼다.

사진=뉴시스

공공기관 직원이 업체와 유착해 은밀하게 계약이 체결된 사례도 있었다. 한국남동발전 영흥발전본부가 ‘발전소 주변 대기오염 측정소 설치가 필요하다’는 옹진군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할 목적으로 설치한 대기오염 측정장비 구매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구매업무를 담당한 남동발전 직원은 2018년 3월 특정 업체 대표이사에게 계약 입찰에 사용할 자재규격서를 작성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해당 업체는 자신들이 보유한 장비를 계약 조건으로 하는 내용의 자재규격서를 보냈는데도 남동발전 직원은 이를 입찰공고에 그대로 적용했다. 이 직원은 업체 대표이사에게 “곧 계약 공고가 나갈 예정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등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본사 전경. 뉴스1

한국철도공사의 임직원들은 2015년 9월 일평균 매출액이 1500만원에 달하는 제과업체와 역사 내 입점 관련 재계약을 할 때 수익 측면에서 공사에 유리한 ‘영업료 방식’이 아닌 기존의 ‘자산임대료 방식’을 유지시켜주기로 약속했다. 또 이 업체를 입주시키기 위해 이듬해 3월 공개경쟁입찰 일정을 공고하면서도 입찰일정을 단 3일만 부여했다. 이 업체 측은 경쟁 입찰 유찰을 방지하기 위해 회삿돈을 이용, 내부직원을 통해 들러리 입찰에 나서기도 했다. 철도공사 측은 입찰 담합 여부에 대한 검토 없이 계약해 2017년 9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임대료로 5억5000만원만 받았다. 감사원은 “영업료 방식이었다면 코레일 유통이 66억4000만원을 징수할 수 있었을 것으로 계산된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한국석유공사는 규정을 어기고 영어권 국가 파견 직원의 자녀에게 2014년부터 5년간 11억5000만여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오성호 상명대 행정학부 교수는 “공기업은 민간과 달리 경제성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는 만큼)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공적 가치나 사명감을 갖고 업무에 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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