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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내부고발, 당신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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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07 22:41:04 수정 : 2022-10-07 22: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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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저를 공격하는 글들이 올라와요. ‘배신자’, 회사에서 주는 돈 잘 받아먹고 다니다 왜 그랬냐 등 비난뿐 아니라 ‘조심하라’는 협박성 글까지 있어요.”

한국마사회 제주본부에서 일하는 공익신고자 김정구(53)씨의 푸념이다. 마사회가 공공기관 고객만족도(PCSI) 조사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2019년 4월 언론에 제보한 이후 김씨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김씨를 공익신고자로 인정하고 신분보장조치를 결정했지만, 마사회는 이를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신고 후 3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김씨는 마사회와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 달 항소심 선고를 앞둔 김씨는 불안하기만 하다. 그는 자신의 회사생활을 ‘물 위의 기름 한 방울’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통화 말미에 김씨는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전 다행인 편이에요. 노무사들도 잘 해주고, 시민단체에서도 도와주고요”라고 말했다. 김씨처럼 공익신고자들이 겪는 ‘신고 이후의 삶’은 가시밭길 그 자체다. 어느 날 출근해보니 사무실 자리가 구석으로 바뀌어 있고, 아무 이유 없이 타 부서로 전보되는 일도 빈번하다. 배신자로 낙인찍힌 공익신고자들은 따돌림, 보복 등 부당조치를 겪으며 무력감을 체화한다.

이희진 사회부 기자

회사 내부의 부당행위를 감사원에 제보했다 부당 인사조치 등을 경험한 A씨는 “저에 대한 여러 보복성 불이익을 토대로 봤을 때 제가 자발적으로 퇴사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느낌”이라며 “당사자가 되어 봐야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알 수 있다”고 토로했다.

김씨나 A씨처럼 회사에 남아 있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 편이다. 현실엔 이런저런 이유로 징계를 받아 회사에서 사실상 ‘쫓겨나는’ 공익신고자도 많다. 통상 공익신고가 이뤄지고 제보자가 특정되면 회사는 여러 사유를 엮어 징계를 시도한다. 사소한 보복에 저항하다 보면 공익신고자는 어느새 징계사유에 해당되는 행위를 하고 있는 본인을 발견하기도 한다. 김범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공익신고자들은 사용자로부터 장기간에 걸쳐 집요한 보복조치를 당한다”며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일련의 보복조치에서 공익신고자가 취업규칙 등에 규정돼 있는 징계사유들을 모두 회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이런 사회에서 누가 내부고발을 자처할까. 회사를 나와 다른 회사에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평생직장이라고 믿고 젊음을 바친 일터를 갑자기 떠나는 건 쉽지 않다. 끝까지 싸울 것인가, 체념할 것인가. 공익신고자에게 선택지는 이 두 가지뿐이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누구든지 공익신고자에게 불이익 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를 어기더라도 처벌이 미미하다. 억제효과가 약한 셈이다. 최근 2년간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돼 확정판결을 받은 5건 중 무죄가 선고된 1건을 제외하면 4건 모두 벌금형이었다.

결국 사법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공익신고자를 억압하는 행위가 한 개인의 삶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다른 공익 제보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공익신고자가 법에 의지할 수 있어야, 또 회사가 법을 무서워해야 양심의 호루라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희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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