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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20주년 맞는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동에 ‘뮤지엄한미’로 재탄생

입력 : 2022-12-29 19:32:31 수정 : 2022-12-29 19: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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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관 기념 ‘한국사진사’ 전시회

20년 동안 수집한 소장품 2만여점 보존
역사적 사진 작품 수명 500년 보장하는
첨단 항온·항습시스템 냉장수장고 갖춰
작품별 적정 장소 보관 기능 저온수장고도
일반 전시장선 우리나라 사진 역사 조망
정해창·임응식 등 현대 사진사 연보 한눈에

육중한 문이 열리자 서늘한 공기가 밀려온다. 저 높이 층고 7 천장까지, 매끈한 스테인리스스틸 선반이 층층이 쌓여 올라가 있다. 부식이 일어나는 철 성분 없이 100% 스테인리스로 된 선반, 섭씨 5도, 상대습도 35%가 항시 유지된다. 가장 치명적인 ‘열화(劣化) 현상’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한민국 사진사 100년의 시간 동안 쌓인 역사적 사진예술 작품들의 새 둥지, 국내 최초 사진 전용 냉장수장고다. 곰팡이가 피고, 색이 바래고, 얼룩덜룩 희미해지고 마는 사진의 숙명에서 벗어나, 작품 수명을 500년까지 연장하는 ‘꿈의 수장고’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들어선 뮤지엄한미삼청 전경. 뮤지엄한미삼청 제공

2003년 개관 이래 우리나라 대표 사진 전문 미술관이었던 한미사진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즈음해 ‘뮤지엄한미삼청’으로 거듭났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새 미술관을 지어 지난 21일 개관했다. 20년 동안 수집한 작품 수는 2만여점에 이른다. 미술관이 개관하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이 2만여점 작품들을 제대로 보관할 수장고였다. 새 뮤지엄 개관을 계기로, 역사적 사진 소장품 수명을 최대 500년까지 보장할 수 있는 최첨단 항온, 항습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핵심 목표였다. 그 결과 세계 10곳 있을까 말까 하다는 사진 전용 냉장수장고와 저온수장고를 완성했다. 국내 국공립 뮤지엄도 아직 갖추지 못한 시설이라고 한다. 층고 7m, 면적은 317.4㎡(약 96평)에 달한다.

 

냉장수장고 외에 저온수장고도 있어 작품별로 가장 적정한 장소에서 보관된다. 저온수장고는 섭씨 15도에 상대습도 35%를 항시 유지하게 설계됐다. 수장고 내에서 사진 작품과 접촉하는 포장지 등은 모두 중성 아카이벌 재료를 사용한다. 수장고 외장재까지 사진 보존력을 위해 100% 스테인리스스틸로 특수 제작한 것도 뮤지엄의 자부심이다. 내부에는 컴퓨터 모니터상에서 조정해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특정 서랍을 이동시켜 해당 칸 작품을 꺼내 볼 수 있는 특별한 시스템도 마련돼 있는데, 한미약품이 약품 관리에 사용하는 공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냉장수장고 내부. 김예진 기자

최봉림 부관장은 “지류는 예술작품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작품이다. 이번에 갖추게 된 저온·냉장 수장고는 사진 보존에 관한 모든 규정을 준수한 것이다. 국공립 수장고보다 더 엄격하게 보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소 관계자 외에는 철저히 통제되는 곳이지만 개관을 맞아 언론에 공개된 수장고 안에는 그간 한미사진미술관 시절부터 수집한 귀중한 작품들의 격조 높은 수준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미국 뉴욕 클래식 사진 작품을 거래하는 한스 갤러리를 통해 입수한, 회화주의 사진 선구자인 영국 여성 작가 줄리아 마거릿 캐머런의 1867년 알부민 프린트 초상 작품이나 크리스티 프라이빗 옥션에서 구한 앤설 애덤스의 작품 ‘문나이트’ 등이 걸려 있었다. ‘문나이트’는 폴라로이드재단의 소장품이었던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토록 섬세하게 보관해야 할 사진을 어떻게 꺼내 일반 관람객에게 보여주어야 할까. 뮤지엄은 이 고민을 개방형 수장고로 해결했다. 저온수장고 한쪽에 유리벽을 만들었다. 작품이 수장고 안에 걸려 있어 외부 공기에 노출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관람객이 작품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임인식 ‘6·25전쟁 군번없는 학도병’(1950)

이번 개관 기념전시에 맞춰 걸린 작품들은 1929년 이전에 찍힌, 우리나라 초기 사진들이다. 국내에 처음으로 사진을 도입한 사진가 황철(1864∼1930)이 촬영한 1880년대 사진, 대한제국 황실 사진가 김규진(1868∼1933)이 1907년 서울에 문을 연 천연당 사진관 작품, 우리나라 최초 여성 사진가로 알려진 경성사진관 이홍경이 촬영한 사진 등의 원본도 나와 있다. 고종황제의 초상 사진, 흥선대원군의 초상 사진 등 그간 교과서 속에서나 보던 귀한 작품의 원본이 관람객 눈앞에 펼쳐진다. 손바닥만 한 크기 작은 사진들이지만, 100년 넘는 시간을 살아남은 끝에 이제 저온수장고 안에 안착해 역사성에서 나오는 힘과 아우라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육명심 ‘사별’(1974)

최 부관장은 “개방수장고 영역은 역사적 소장품을 일반 대중의 시선이 닿을 수 없는 미술관 수장고 속에 유폐하기보다는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뮤지엄한미를 보여주는 상징적 전시 장치”라고 했다.

 

개방형 수장고에서 보여주는 1929년 이전 사진들이 우리나라 사진 역사의 기원을 드러낸다면, 일반 전시장에 펼쳐진 전시는 사진사의 본격적인 시작과 1980년대까지 역동적 역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란 제목으로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서 20년간 쌓은 역량을 보여주겠다는 포부가 읽힌다. 1929년 정해창의 ‘예술사진 개인 전람회’를 시작으로 1982년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석조전 서관에서 열렸던 임응식 회고전까지, 한국 사진사 연보를 샅샅이 훑는다. 전시작품 약 200점, 아카이브 자료 약 100점이 나온다. 특히 신기술이자 실용적 기능품이기도 했던 사진을 어떻게 예술의 영역 안에 선별해 받아들이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어떻게 예술가, 사진가로서 받아들였는지 제도의 역사를 중심에 놓은 점도 흥미롭다. 사진가 개인 전람회의 시작, 국전이라는 국가 권력이 인증하는 제도의 도입, 신문사들이 운영한 인증제도로서의 민전, 국전과 민전이라는 대회를 놓고 벌어진 국내 파벌 싸움, 이를 돌파하려는 사진가들이 택한 수단으로서 해외 공모전 진출 등 우리 사진 역사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홍순태 ‘갈치’(1971)

최 부관장은 “향후 사진이 기원이 된 예술이나 미디어아트 등으로 폭을 넓혀 다양한 예술을 다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4월16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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