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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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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1-06 22:09:29 수정 : 2023-01-06 2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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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존스가 브론즈로 맥주 캔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색을 칠해 판 위에 올려놓았다. 제목도 ‘채색된 브론즈 에일 맥주 캔’이라고 붙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술을 마실 때는 주목하지 않고 무심히 대했던 맥주 캔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원기둥 모양의 캔, 그 위에 칠해진 색채, 여러 겹의 타원형 바탕과 그 사이를 메운 글자 등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울려 만드는 조화와 균형이란 것도 우리는 생각한다. 기존의 조각 작품을 대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재스퍼 존스, ‘채색된 브론즈 에일 맥주 캔’(1960)

존스가 이 작품을 통해 노린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이란 그렇게 멀리 있지도 않고, 그렇게 고상한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하려는 의도였다. 예술가의 개성을 앞세워 어렵고 색다른 이미지 창작에 매달리기보다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공동체적 이미지를 통해 작품을 창작하려 했다. 이른바 ‘사회 속의 미술’이다.

그래서 그는 맥주 캔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미국 국기, 표적, 숫자 등을 끌어들여 제작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럴 때, 국기나 숫자나 표적은 일상적 의미를 갖는 기호나 상징물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하나의 이미지가 되며 미술 작품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미지에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아니 애써 보려 하지 않았던 조형적 특색들을 보게 된다.

예술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우리가 그냥 지나치고 주목하지 않았던 것들을 새롭게 주목하게 한다. 구불구불하게 뒤틀린 선과 거친 물감 자국으로 그린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고통과 갈등에 찬 마음 상태에서 본 세상의 모습을 연상하고 공감한다. 미술 작품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또 다른 눈을 갖게 한다. 그러면 우리 주변에 예술적 소재들은 얼마든지 있고, 그것들로도 미적 감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재스퍼 존스의 생각이다.

이런 일이 예술을 통해서만 일어날까. 새해 시작을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은 없었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새해 독자 여러분 모두의 건강과 행운을 빌며.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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