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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예술이 현실을 넘어서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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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10 23:30:08 수정 : 2023-03-10 23: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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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선언’에서 촉발된 미술사조 초현실주의는 1차 세계대전 후의 절망적인 현실을 배경으로 했다. 거리엔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더미들이 즐비했고,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자가 넘쳐났으며, 전사자로 인한 가족 파괴나 상실감도 극에 달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절망감과 반항심만을 갖게 됐고, 그 어느 것에서도 감흥을 갖지 못했다. 초현실주의는 이렇게 폐허가 되어 버린 상황 속에서 나타났다. 비참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넘어서는 또 다른 현실이라는 의미의 ‘초현실’ 세계를 예술을 통해서 제시하려고 했다.

막스 에른스트, ‘박물지-빛의 바퀴’(1926).

이런 세계가 어떤 것이고,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초현실주의자들은 일상세계를 지배하는 논리나 합리적인 사고를 벗어난 곳에서 찾으려 했다. 그래서 우연한 사건이나 행동, 꿈 또는 무의식의 세계와 같이 비합리적이며 낯설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들에 주목했다.

초현실주의 화가이며 조각가인 막스 에른스트는 독일출신으로 대학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했고, 다다이즘 운동을 이끌기도 했으며, 초현실주의의 여러 창작 방법도 만들어냈다. 그중 하나가 프로타주 방법이다. 종이나 천 아래에 나뭇잎이나 동전 등을 놓고 긁고 비벼서 우연적이고 자동발생적인 이미지를 창조하는 방법이다.

이 작품이 에른스트가 프로타주 방법을 사용해서 만든 작품이다. 나뭇잎과 둥근 물체를 아래에 놓고 긁고 비벼서 이미지가 아래로부터 배어 나오게 했다. 그 후 선을 덧붙여 눈의 윤곽과 속눈썹을 그려 넣고, 제목은 ‘빛의 바퀴’라 붙였다.

눈이 하나라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크게 부릅뜨고 정면을 응시하는 모양이 강렬하면서 조금은 섬뜩해 보인다. 현실을 증언하는 눈으로 보이기도 하고, 스쳐 보내는 현실을 주시하자는 다짐이 읽히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초현실을 의도하고 우연성을 이용해서 만든 이미지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느낌이나 의미는 현실 그 이상으로 다가오며 충격적이다. 예술이 현실을 넘어서는 순간이고, 이게 바로 예술의 힘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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