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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 미술여행] 금전적 가치보다 예술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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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6-16 22:52:43 수정 : 2023-06-16 22: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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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 자바체프와 그의 부인 잔 클로드는 공공장소나 자연 공간을 거대한 크기로 포장하는 작업을 주로 했다. 퐁네프다리를 천으로 감싸기도 했고, 플로리다의 작은 섬들 주변을 분홍색 천으로 두르기도 했다. 이번에는 콜로라도의 한 계곡에 천으로 커튼을 친 작품을 선보였다. 제목은 ‘밸리 커튼’. 1970년대에 유행한 대지미술 작품이다. 미술작품을 삶의 현장이나 자연 속에 설치해서 환경과 작품의 관계에서 의미를 읽어내도록 하는 양식이다.

대지미술은 똑같은 작품이라도 그것을 어느 장소에 놓느냐에 따라 의미나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작품 규모가 커지면서 미술가의 작업은 특정 장소를 노출하는 것이며, 그 자체가 작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크리스토 자바체프·잔 클로드, ‘밸리 커튼’(1970∼1972)

무슨 효과가 있을까? 작품이 설치된 뒤 어느 날 이 계곡 길로 자주 다니던 사람이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계곡을 사이에 둔 두 산의 능선을 볼 수 있고, 커튼 위로 펼쳐진 하늘도 보게 된다. 그뿐일까. 계곡 아래 땅과 작은 나무들과 굴러다니는 돌들도 볼 수 있고, 바람에 불룩해진 커튼을 통해 계곡을 관통하는 바람의 존재도 느낄 수 있다.

밸리 커튼이 쳐진 후, 이 사람은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하늘과 땅과 바람과 나무들의 존재와 예술적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진 자연의 흐름에 대한 생각도 갖게 된다. 그렇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미술작품은 우리가 미처 생각도 관심도 갖지 않았던 것들의 시각적 경험을 주어 우리 삶에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 점에서 대지미술은 하늘과 땅과 바람 등을 작품 구성요소로 끌어들이고, 자연 자체를 예술적 가치가 풍부한 거대한 화폭처럼 사용하면서 환경파괴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또 화랑이나 미술관이 전위적인 작품들마저 상품처럼 구입하고 예술적 가치보다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는 것에 대한 저항의 제스처가 되기도 했다. 이런 작품은 현장에서 보아야 하고, 일시적으로만 존재하며, 단지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구입해서 소유할 수 없다는 점에서였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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