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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돌 속에 잠재된 형태에 생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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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8-11 23:04:46 수정 : 2023-08-11 23: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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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 덩어리 위로 얼굴만 삐죽 올라온 이 작품은 오귀스트 로댕이 제작한 카미유 클로델의 초상 조각이다. 빼어난 미모와 강한 자부심에 조각에도 타고난 재능을 갖고 있었던 카미유. 그녀는 나이 19살에 24살 많은 로댕을 만나 모델이면서 제자, 연인이자 동료 예술가가 되면서 본격적인 조각의 길로 들어섰다.

이 작품은 로댕이 열렬히 사랑한 카미유를 위해 제작한 것인데, 그는 이 초상 조각에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했다. 미완성처럼 보이지만 이 자체로 완성된 것이니 더 이상 깎고 다듬지도 말라는 당부였다. 로댕은 그토록 사랑한 카미유의 초상 조각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무슨 의도가 있었을까.

로댕, ‘사색’(1886-1889)

인상주의자인 모네가 그림을 주제로부터 해방시켜 새로운 길을 열어 놓은 것처럼 조각에서는 로댕이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로댕은 새로운 조각을 위해 전통적인 원리들을 부정했는데, 때로는 작품 표면에 매끄러운 처리 대신 자국을 남기거나 주름을 잡기도 하고, 거칠고 다듬지 않은 형태로 미완성처럼 보이는 상태를 드러내기도 했다. 조각 작품이 예술가의 영감을 통해서 무한히 변화할 수 있는 돌 속의 잠재적인 형태들을 깨어나게 하는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조각 작품의 창조란 죽은 물체가 미술가의 손을 통해서 생명을 얻고 생성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미의 본질은 생명이라는 그의 생각에서 비롯된 예술관이다.

이 작품이 대리석 덩어리에서 생명체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만든 것은 그런 의도에서였다. 죽은 돌덩어리에서 얼굴이 솟아오른 것처럼 나타내서 여러 가지 사색으로 깨어 있는 머리를 나타내고, 얼굴을 감싸고 있는 돌덩어리로는 세상 속에 갇혀 있는 몸을 비유해서 머리와 대조적인 의미를 띠게 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세상의 답답하고 거친 현실이 우리를 묶어 두려 하더라도 거기에 휩쓸리지 말고 깨어 있는 생각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자는 뜻으로 읽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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